(*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때로 어떤 표정은 가까운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한 달을 하루 같이 붙어 지내는 단짝 친구가 지난 몇 달간 약 10kg쯤 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듯이, 어떤 변화는 년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더 잘 알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나그네가 십대 째 한 곳서 살아온 이보다 마을 사정을 더 잘 알아보는 것도 그래서다. 세상 가장 위대한 역사서는 낯선 이의 손에서 쓰이게 마련이다. 낯선 시선을 담는 일의 이로움이 여기에 있다.
대다수 한국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있다.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그런 광경이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알려 하지도 않는 그런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이 오래도록 간직한 어느 풍경을 사진 바깥의 세상이 자꾸만 앞으로만 내달리다가 마침내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세상 안 사람들도 그를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기록의 매체라고 불리는 이 사진의 힘은 모두가 잊고 잃은 그 순간 최대로 발현된다. 영화 <사진의 얼굴>이 2026년 오늘 한국에 전할 힘이 바로 그렇다.
사진에도 얼굴이랄 게 있을까. 만약 있다면 일본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표정과 닮았을 테다.
▲사진의 얼굴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일본 보도사진계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
구와바라 시세이는 아흔을 넘긴 노령의 일본 보도사진가다. 이제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수은중독으로 인한 공해병 미나마타병을 최초로 취재하여 세상에 알린 인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열기도 하였는데, 그건 그가 그저 사진계에서 거장으로 꼽힐 만큼 유명해서만은 아니다.
미나마타병 이후 그가 천착한 작업 상당수가 한반도에서 이뤄졌고, 지난 반세기 한국의 역사를 그만큼 특별한 시선으로 기록한 작가가 몇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의 사진작가가 가진 낯선 시선은 당대 한국이 갖추지 못하였던 날카로움으로 한국이 돌보지 않던 진실의 단면들을 포착해 냈다. <사진의 얼굴>은 구와바라 시세이의 삶을 다룬 고희영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지난 생애 전반을 다룬 영화다. 그가 누운 작은 방 안을 부감쇼트로 찍어낸 첫 장면은 곧 마지막 장면과 이어진다. 이 작은 방 안에 든 노인의 작은 몸이 이뤄낸 결코 작지 않은 업들을 차근히 따르는 것, 그리하여 처음과 끝을 전혀 달리 보도록 하는 것이 이 영화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거장. 인스타그램만 열어도 쏟아지는 많고 흔한 사진들의 홍수는 이 매체의 가치를 전과는 완전히 달리 보도록 한다. 그럼에도 어떤 사진을 가리켜 사람들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경지에 닿았다고 말한다. 기계가 자동으로 초점을 잡고, 보정과 수정을 통해 현장에서 얻지 못한 성취를 구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은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수많은 사진들 사이에 두어도 '이건 그 사람이 찍었군' 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작가의 인장이 찍힌 작품을 그는 내놓을 수 있는 이다. 그는 사진계의 거장이다.
▲사진의 얼굴스틸컷
트리플픽쳐스
거장의 작품세계를 연대기적으로
그러나 구와바라 시세이를 그저 사진계의 거장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매그넘과 같은 집단이 열어젖힌 소위 포토저널리즘에 있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미나마타병을 그는 어떻게 최초로 취재했던가. 그건 가난한 어촌마을까지 가서 함께 생활하며 진실을 파헤치려는 수고를 전혀 감당하려 하지 않은 당시의 언론들과 달리, 카메라 하나 들고 그와 같은 고된 작업을 해낸 직업의식이 있었던 덕분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자세를 그는 평생에 걸쳐 이어왔다. 그리고 그 주된 무대가 된 곳이 바로 한반도였다.
영화는 구와바라 시세이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펼쳐낸다. 필요할 때마다 사이사이 작가의 작품을 삽입해 화면 위에 띄운다. 말하자면 작가의 삶과 작품을 교차편집하여 엮어낸 한 편의 영상 사진집이자 코멘터리 필름이다. 관객은 마치 사진전에 가서 작가의 삶과 함께 개별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다분히 평면적인 영화는 오로지 작가의 삶을 충실히 펼쳐내는 데만 전념하므로, 구와바라 시세이의 삶과 작품이 곧 영화의 승부수가 된다.
영화엔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세계를 알 수 있는 일화가 몇 담겼다. 이를테면 서두에 적은 한국인이 알지 못하는 한국의 순간들이 그의 사진에 담기기까지의 이야기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서울 도심 청계천 양편엔 빈민 아파트촌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말이 아파트지 천변을 따라 얼기설기 쌓아 올린 무허가 판자촌 건물들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2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빈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 시기 취재 차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구와바라 시세이를 사로잡은 건 청계천 일대 빈민촌과 같은 광경이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나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럴 때면 한국 보도사진가들이 그에게 그런 건 찍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사진의 얼굴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청계천 빈민촌 담은 사진, 진짜로 담으려 한 건
구와바라 시세이는 당시 한국 사진가들이 한국의 가난한 사정이 외국, 그것도 일본인의 사진에 담겨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고 설명한다. 왜 아니었을까. 급격한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년대 한국은 극심한 빈부격차에 더해 이촌향도를 통한 농민들의 도시 유입이 겹치며 도시빈민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라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왔으나 집을 구할 수 없어 빈 땅에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정착하는 사람들이 매해 수십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청계천을 찍던 때는 국가가 나서서 수도권 이주정책을 펼치기 이전이니, 그 많은 사람들이 치안과 소방, 교육과 의료는 물론, 전기나 상하수도 같은 기간시설 없이 뒤엉켜 살아가던 사정이 고스란히 그의 렌즈에 담길 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그가 찍는 사진을 반기지 않았다. 동료 사진가들뿐 아니라 그 사진에 담기는 시민들조차 "왜 일본 놈이 한국을 찍는가!"하며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그는 어느 아줌마가 면전에다 구정물을 끼얹은 일부터, 군중에 둘러싸여 해명해야 했던 아찔한 순간을 회상한다. 그럼에도 그가 사진작업을 계속한 건 한국의 가난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의 가난은 건물을 통해 보이는 것일 뿐, 그 작품 안에는 언제나 어떻게든 살길을 터내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삶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러해서 영화가 제시하는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엔 티 없이 맑은, 즐겁고 유쾌한, 젊음과 힘이 분출하는 모습들이 잔뜩 담겨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진짜 사는 모습이 있다. 오늘의 점잖고 부유하지만 낡고 늙어버린 모습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급변하고 팽창하던 한국의 지난 시절이 분명히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 또한 소중히 했어야 할 한국의 일면이란 걸 인제와 실감하게 되는 건, 그의 사진 말고는 그와 같은 정취를 가진 기록을 얼마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설고 품격 있는 시선이란 그토록 귀하다.
▲사진의 얼굴포스터트리플픽쳐스
전형적이고 안이하지만, 탁월하고 매력적인
영화는 구와바라 시세이가 걸어온 길을 둔하지만 성실하게 뒤따른다. 민주화운동과 북한에서 마주한 분단의 비극,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참전한 한국군, 한국 도공들의 장인적 모습,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 이후의 순간들이 그 렌즈를 거쳐 오늘의 관객 앞에 제시된다. 그 표정 하나하나가 낯설게 살아 있어서 오늘의 한국인이 그보다 한국의 일면을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작가로서 피사체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하면서도 천진한데, 어느 순간 관객은 그야말로 사진의 얼굴이란 걸 수긍하게 되고 만다.
다만 구와바라 시세이와는 별개로 <사진의 얼굴>이 훌륭한 다큐인지에 대하여선 다른 의견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작가의 삶을 펼쳐내는 방식 가운데 구와바라 시세이가 제 사진 안에 작가의 인장을 새기듯 고심하는 장면이 거의 읽히지 않는 것부터가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과연 횡으로 펼치며 나아가는 평이한 연출이, 뭉툭한 질문과 응답들로 이어지는 인터뷰가 그 삶을 내보이는 최선의 방식이었을까. 수시로 깔리는 음악이며 다분히 인위적으로 마련된 에피소드들의 연속은 또한 영화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가.
평범한 기수가 탄 명마의 질주를 보는 답답함으로 이 다큐를 보게 되는 것은 고희영 감독이 제 주인공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초점이 바로 그 분야에서 특별함을 이룬 구와바라 시세이의 것과 너무나 큰 격차를 보여서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작품세계를 빚어낸 작가적 고뇌와 심상을 이 영화는 더 현재적이며 깊이 있게 담아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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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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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찍냐 욕먹었던 일본인의 청계천 사진, 이토록 귀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