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이 개봉보다 나은 영화가 있다. 처음 개봉할 당시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 작품이 새로운 가치를 갖고서 재개봉을 맞이할 때다. 이를테면 올해 '씨네만세'서도 추천한 바 있는 <콜럼버스>는 재개봉에서 적은 상영관에도 불구하고 첫 개봉보다 많은 관객과 만났다. 2018년 첫 개봉 당시엔 무명이던 감독 코고나다가 이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진 작가 반열에 올라 있기에 작품 또한 전과는 다른 무게를 가지게 된 것일 테다. 그저 지나간 작품을 때맞춰 다시 개봉하게 하는 것을 지나, 전과는 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새로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 흘러간 영화를 다시 집어와 개봉하는 일의 의미가 또한 여기에 있다.
8월 26일 재개봉한 <델마>는 한국서는 2018년 8월 한 차례 개봉해 관객과 만난 작품이다. 개봉당시 든 관객이 채 7000명이 되지 않았는데, 코로나19 이전 독립예술영화 관객수를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이 영화가 8년 만에 한국서 다시 개봉하는 데는 감독인 요아킴 트리에의 달라진 위상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테다. 이제는 세계적 작가 반열에 들었다 해도 좋은 요아킴 트리에는 한국에서도 2022년 개봉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부터 올해 초 개봉한 <센티멘탈 밸류>의 성공으로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감독이 됐다. 개봉관 뿐 아니라 OTT 등을 통해서도 꾸준히 찾는 이가 있는 요아킴 트리에의 작품이란 점에서 스리슬쩍 흘러간 전작을 캐내어 다시 거는 일에도 상당한 관심이 쏠린다.
그렇다면 이제 <델마>는 어떤 영화인가를 따져볼 때다. 그저 감독이 유명해져서 그 초기작 또한 관심을 받기를 기대하는 걸까. 아니면 이 영화 자체로 오늘의 관객에게 유효한 파문을 던질 힘이 있는 것일까. 작품이 가진 시대적 유효함이란 때로 일시적이며, 또 때로는 반영구적인 가치로써 발휘된다.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서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가 10년 전 이미 완성돼 멈춰 있는 이 영화와 어떤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까를 읽어내는 작업은 곧 이번 재개봉이 갖는 의미와도 통할 밖에 없다.
▲델마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초현실적인 힘과 델마의 병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의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 델마(에일리 하보 분)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델마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랐는데, 경건한 기독교 가정 출신이란 점 말고는 뚜렷한 특색이랄 게 없어 보이는 평범한 여성이다. 생애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한 그녀는 수업에 가고 남는 시간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며 지낸다. 다만 친구를 사귀는 데 영 익숙하지 못한 듯 늘 혼자 지내는 모습이 눈에 띄는 정도랄까.
영화는 평범해보이는 델마에게 남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단 걸 내보인다. 바로 병이다. 어느날인가. 델마는 수업 도중 급작스러운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경련을 일으킨다. 흔히 간질이라 알려진 뇌전증 증상처럼 보이는데, 그녀가 꽤 오래 겪어온 지병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이 증상을 그저 흔한 뇌전증처럼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발작을 일으키는 순간, 마치 염력처럼 보이는 무언가 초현실적인 힘이 은근히 작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델마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알아채지 못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안다. 그것이 델마와 깊이 관련돼 있단 걸.
이야기는 델마가 친구 아냐(카야 윌킨스 분)를 만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아냐는 단조롭던 델마의 일상이 커다란 자극이 된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아냐는 델마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친구들과 클럽에도 다니며 술도 마시는 모습이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지만, 별다른 자극 없는 델마에겐 모든 것이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그녀를 삶 가운데 받아들이는 건 그 모든 자극 또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델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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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에서 읽히는 마녀 이야기
처음 <델마>는 제가 이제껏 살아온 터전과 관계,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도시, 낯선 관계 가운데 놓인 청년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저 그뿐 만은 아닌 것은, 발작과 그 순간 일어나는 초현실적 현상, 그와 얽혀 있는 델마의 능력과 비밀의 존재다. 요아킴 트리에는 델마가 마주한, 그녀 스스로도 온전히 알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심리적 불안과 미묘한 관계 위에 조금씩 풀어내며 미스터리적 드라마로의 극을 빚어간다. 자칫 초능력을 활용한 공포나 미스터리의 장르적 서사로 치우치기 쉬웠을 이야기는 도리어 유럽의 역사 가운데 자리했던 외면하고픈 폭력과 인간이 지닌 근원적 결함으로까지 파고든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성의 이야기가 중세 유럽의 마녀와 마주 닿는다. 통상 마녀의 존재는 동화나 만화 속 주인공에게 위협이 되는 사악한 무리로 여겨지기 쉽지만, 역사는 그것이 여성 뿐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다뤄내기 어려운 것에 대한 폭력과 학살이었음을 증명한다.
▲델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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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세상과 맞닿는 방식
델마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에 어떤 일을 불러왔는가. 델마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또 무엇인가. 그 사실들을 감춘 건 또 누구인가. 세상엔 델마와 같은 존재가 얼마나 더 있을까. 델마가 이제껏 저질러 온 일들과 델마의 부모가 감춰온 일들, 그리고 델마가 일으켰고 앞으로 일으킬 사건들이 그저 델마를 넘어 델마와 같은 존재, 나아가 그와 같은 존재가 살아온 인류의 그것과 그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게 델마는 마녀가 된다. 인류와 문명이 저질러 온 폭력이며 폭거와 닿는다.
한 편의 초현실적 미스터리가 그저 장르적으로 다뤄지는 걸 넘어 드라마와 세상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없지 않다. 그로부터 <델마>로부터 시대적 유효함을, 의미를 찾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영화가 세상과 맺는 관계가 또한 이러하다.
영화의 도입, 당혹스럽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단 하나의 이미지는 영화가 끝난 뒤 완전히 새롭게 읽힌다.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결코 가볍게 해소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델마라면, 델마를 사랑한 아버지라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
우리가 구성한 세상은 과연 모든 인간을 품어내고 있는가. 그는 또한 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모르는 새,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이에 사회가 품지 않는 사람들은 억압의 굴레 안에서 움츠러들고 울타리 바깥으로 몰려 추방당하며 나무에 묶여 화형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묻게 된다. 더는 마녀가 없는 세상인가. 한국에는 또한 그와 같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억눌린 이가 없는가를 묻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감추고 속이며 실패할까 두려워 뒤통수에 총을 가져다 대는 일이 아닌지를 나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델마포스터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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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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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시간엔 수영장... 그녀가 발작하면 생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