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체호프의 계절'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5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국립극단의 <반야 아재>,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이 공연된 데 이어 지금은 <갈매기>가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배우 우현주가 이끄는 극단 맨씨어터의 연극 <갈매기>가 지난 9일부터 서울 광진구 티켓링크 1975 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지난 7월 국립극단과 충북도립극단이 공동기획하고 김낙형이 연출한 <갈매기>에 이어 다른 버전의 체호프 희곡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셈이다.
맨씨어터는 2011년 <갈매기>를 선보인 이후 무려 15년 만에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2011년 공연 당시 1층 객석을 완전히 걷어낸 실험적인 연출로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차세대 연출가로 거론되는 김정과 손잡고 새로운 버전을 선보이게 됐다. 15년 전에도 여자 주인공 '니나'를 연기한 전미도가 이번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합류했으며 이동하, 박호산 등 인기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2007년 설립된 극단 맨씨어터가 20주년을 목전에 둔 시기에 <갈매기>를 다시 공연하게 된 데에는 전미도의 공이 크다. 배우이자 극단 대표인 우현주는 전미도의 니나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15년 만의 <갈매기> 공연을 기획했고, 이를 제안받은 전미도도 고향 같은 극단의 작품이라는 점에 출연을 결심했다. 개인 커리어에서는 8년 만의 연극 복귀작이다.
▲연극 <갈매기> 공연 사진
극단 맨씨어터, NHN링크
'갈매기'의 의미
지난 12일 관람한 연극 <갈매기>, 연극을 보다 보면 왜 제목을 <갈매기>라고 지었는지 알게 된다. 연극에는 실제로 갈매기가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 '뜨라쁠레프(애칭 꼬스쟈)'는 갈매기를 총으로 쏴죽인 뒤, 니나 앞에 내려놓는다. 뜨레쁠레프는 연극의 새 유형을 주장하는 젊은 예술가이지만 배우이자 어머니인 아르까지나로부터 무시당하고, 연인이었던 니나가 뜨리고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좌절한다.
갈매기를 쏴죽이고 이를 니나 앞에 가져간 것은 좌절의 반영이다. 뜨라쁠레프는 언젠가 자신도 갈매기처럼 될 것이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을 통해 뜨라쁠레프의 이 말은 일종의 예언적 성격을 띠게 된다.
갈매기가 뜨라쁠레프만을 상징하는 건 아니다. 뜨라쁠레프의 연인이자, 훗날 유명 작가 뜨리고린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니나 역시 스스로를 갈매기에 비유한다. 그는 뜨라쁠레프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호수에 갈매기처럼 끌린다"라는 대사를 통해 스스로를 갈매기와 등치해왔다. 또 뜨리고린 역시 죽은 갈매기를 보고 니나의 파멸을 암시하는 글을 쓰며, 갈매기와 니나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이처럼 극의 제목이자 주요 소재인 '갈매기'는 뜨라쁠레프와 니나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물론 그 의미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여러 연출가와 프로덕션의 손을 거치며 <갈매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왔다. 동일한 텍스트에 다양한 의미와 해석이 덧대어졌다. 혹은 표현 방식을 달리하여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크게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앞서 체호프의 <갈매기>를 수차례 즐겨온 관객이라면, 이번 맨씨어터 버전의 <갈매기>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연극 <갈매기> 공연 사진
극단 맨씨어터, NHN링크
극작가 안톤 체호프와 <갈매기>의 주인공 뜨라쁠레프
한편 뜨라쁠레프를 보면서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가 연상되기도 했다. 체호프는 현대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극작가로 꼽히는데, 그의 방식에는 기존의 연극들과 다른 독특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아니 체호프가 살던 19세기까지도 연극의 중심에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체호프의 연극에는 극적인 사건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 때론 끊어지는 발화, 말해지지 않는 속마음이 연극에 드러날 뿐이다. 그가 관심을 둔 건 생활인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갈매기>는 더 독특한 측면이 있었다. 체호프는 집필을 마치고 "드라마의 규칙과 반대로 포르테(강하게)로 시작해 피아니시모(매우 약하게)로 끝났다"라고 회고했다.
독특한 체호프의 방식이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갈매기>도 초연 당시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의 초연은 엄청난 혹평에 직면하는 바람에, 체호프가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훗날 초연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때, (<갈매기> 속 뜨라쁠레프가 그러했듯이) 당대 예술가들이 이 연극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곤 한다.
이후 1898년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 하에 모스크바에서 재공연이 이뤄졌고, 초연 때와 달리 흥행하며 작품에 대한 재평가를 이끌어냈다. 기성 예술가들의 창작 방식에서 어긋나고, 기존 연극을 향유하는 관객의 방식으로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은 반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극 중 뜨라쁠레프는 초반부에 니나와 함께 새로운 연극을 선보이는데, 어머니이자 기성 배우인 아르까지나로부터 대차게 무시당한다. 그럼에도 뜨라쁠레프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지만, 훗날 뜨리고린에게도 혹평을 받는다. 체호프의 전사를 알고 <갈매기>를 보면, 뜨라쁠레프에게서 일면 체호프의 모습이 보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 <갈매기> 공연 사진
극단 맨씨어터, NHN링크
세대 갈등부터 사랑의 엇갈림까지
여기서 드러나는 건 '세대 갈등'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정답이라 여기는 이들과 기존 방식을 적대시하고 새로운 시도에 도덕적·지적 우월감마저 부여하려 하는 이들 사이에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건 체호프의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극 중 '도른' 같은 인물이다. 중년 의사이자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도른은 진심으로 뜨라쁠레프의 예술을 응원해주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굳이 세대로 분류하자면 '기성 세대'이고, 의사라는 직업과 사회적 명성에 비추어봤을 때 '기득권'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젊은 세대와 신진 예술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 역시 뜨라쁠레프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를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세대 갈등과 함께 <갈매기>가 가져가는 주요한 주제는 '사랑의 엇갈림'이다. 마샤는 뜨라쁠레프를 사랑하지만, 뜨라쁠레프는 니나를 사랑한다. 니나는 뜨라쁠레프에게 마음을 주기도 했지만, 끝내 뜨리고린에게 빠져든다. 뜨리고린 역시 니나에게 마음을 내어주지만, 결국에는 니나를 버린다. 아르까지나 역시 뜨리고린을 사랑하고 연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뜨리고린의 변덕 탓에 이 관계는 늘 위태롭다. 도른은 마을 여성들의 관심을 사로잡지만, 정작 그 자신은 사랑에 무관심하다.
결핍은 쉽게 채워지지 않고, 그래서 극에는 좌절과 회한의 감정이 흐른다. 이건 체호프 연극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감정은 후반부에 이르러 니나의 독백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하게 전해진다. 니나를 연기하는 전미도는 한층 더 원숙해진 연기로 관객의 감정마저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후반부의 무대 연출도 놓쳐서는 안 된다. 니나가 자신을 갈매기에 비유하며 끌린다고 말했던 호수처럼, 무대에 물이 차기 시작하며 일종의 호수가 만들어진다. 니나의 독백부터 뜨라쁠레프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물이 차오르는 무대의 의미도 생각해보시길 권한다.
▲연극 <갈매기> 공연 사진극단 맨씨어터, NHN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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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계절' 대미 장식할, 15년 만에 돌아온 전미도의 '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