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이는 것이 좋지 않을 수 있고, 나빠 보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익숙함에 속아 가벼이 하기 쉬운 진실들을 이 영화 <코렐라인>이 돌아보도록 한다. -'씨네만세 1198' 중에서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은 특별하다. 일상의 흔한 믿음을 뒤흔들고 그 아래 깔린 가치 있는 것을 일깨운다. 가끔은 허둥대며 잘못 짚기도 하겠으나, 때때로 파묻힌 진실에 가 닿는다면 어찌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가 꼭 그러해서 나는 이들이 만드는 애니를 반드시 챙겨봐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라이카 스튜디오는 제 인장을 가진 근래 보기 드문 애니 제작사다. 특히 애니 업계에선 스튜디오별로 내놓는 작품에 담긴 세계관이며 작풍에 일관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는 하는데, 애니 스튜디오 가운데 저만의 인장을 가진 곳이 몇 된다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겠다.
▲파라노만스틸컷
로커스
라이카 스튜디오엔 저만의 인장이 있다
라이카 스튜디오는 제 인장을 가진 흔치 않은 제작사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즉 점토 등의 재료로 형상을 빚은 뒤 그를 찍어 이어 붙인 영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애니 분야에서 아드만 스튜디오와 함께 최고라 불리는 곳이다. 2009년 작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 그 대표작으로, 이 한 편 영화로써 스톱모션 분야에서 가장 기대 받는 회사란 평가를 얻었다.
<코렐라인>과 함께 라이카가 낳은 두 명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 <파라노만>이다. 이 영화는 라이카 스튜디오의 인장이 무엇인지를 확인케 한다. 눈 있는 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곧장 라이카 것이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이야기란 뜻이다. 그를 만들어내는 건 특유의 분위기에 더하여 담겨 있는 메시지, 무엇보다 그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 <파라노만> 가운데 두드러지는 건 진짜로 두려운 것과 두렵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다. 수많은 애니 제작자들이 세상에서 두렵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두려움을 자아내는 재료로 쓰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라이카 스튜디오가 걷는 길은 지극히 피로하고 동시에 가치 있는 길이다.
<파라노만>의 주인공은 노만이다. 눈치 빠른 이라면 공포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 '파라노말 Paranormal'에다 주인공 이름인 노만을 합쳐서 영화 제목인 '파라노만'을 이뤘음을 예상할 수 있겠다. 파라노말은 영어로 초자연적인 것을 뜻하는 말인데, 흔히 심령과 관계된 것에 이 표현을 붙이곤 한다. 이를테면 빈 집에서 물건들이 날아다니는 '폴터 가이스트' 현상이라거나 특정한 곳에만 가면 환청이나 환영이 보이는 '하운팅', 어떤 심령이 인간의 몸에 깃드는 '빙의', 손을 대면 물건의 이력을 읽어내는 '사이코메트리', 물리법칙을 초월해 물건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염력' 같은 것이 모두 유명한 파라노말 사례다.
▲파라노만스틸컷
로커스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가 마을을 구한다
이 영화의 경우엔 심령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이다. 노만이 바로 그 능력을 가진 소년으로, 어려서부터 죽은 이들을 보고 대화를 해왔다고 전한다. 영화 <식스 센스>가 그와 같은 설정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이겠는데, 이제는 심령과 대화하는 설정을 가진 작품군에 <파라노만>을 올려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무튼 노만은 귀신을 보고 그와 대화한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를, 그것도 어딘지 꺼림칙한 귀신을 보는 소년이라니 환대받기 어려운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없다고 치부하게 마련이 아니던가.
<파라노만> 속 이야기가 꼭 그러해서 노만은 제 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집 안에는 언제나 뜨개질 하는 할머니가 있지만, 그 자식인 아버지조차 노만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어린애가 또 헛소리를 하는 구나하고 넘길 뿐이다. 아빠는 물론, 엄마와 누나까지 그러하니 피 안 섞인 사람이야 오죽할까. 학교에서도 노만은 외톨이에 가깝고 심지어 왕따가 되어 괴롭힘까지 받는다. 단 하나 뿐인 친구 닐 말고는 대화를 나눌 친구조차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노만은 마을의 소문난 괴짜 삼촌으로부터 300년 된 저주가 깨어날 것이란 경고를 받는다. 마녀의 저주를 막을 유일한 존재가 노만으로, 마녀가 묻힌 곳에 가서 그를 봉인하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파라노만>은 그 저주가 실현되며 무덤에서 깨어난 좀비들의 출몰과 그에 대응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파국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노만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파라노만스틸컷
로커스
그렇고 그런 아동용 애니가 아냐
얼핏 줄거리만 보자면 <파라노만>은 그렇고 그런 아동용 애니처럼 보인다. 마녀와 저주, 좀비가 나오고 결국 그를 막아내며 인간세상의 평화를 되찾는 얼개가 이미 수십, 수백 번쯤 보아온 그렇고 그런 이야기와 얼마 다르지 않아 보이는 때문이다. 앞서 <코렐라인>에서도 문 하나를 건너 현실로부터 환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던 라이카 스튜디오의 선택은 <파라노만>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쓰기보다는 전형에 갇힌 서사를 구출하여 찐과 짭을 새로이 가려내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 과제가 된다.
처음 영화를 보는 관객은 노만이 마주하는 심령, 그러니까 죽은 이들의 혼백과 마주한다. 관객은 아마도 귀신이라 하면 무섭고 끔찍한 것이라 여기겠으나 영화 속 노만 곁에 있는 혼백들은 꼭 그렇지 않다. 산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을 나다니고 생각하며 대화할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노만은 그들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일상 가운데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우리네 이웃들을 대하듯 꼭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보통 사람들에겐 기괴하고 낯설게 비칠 뿐이다.
도리어 정말로 기괴하고 두려운 것은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노만이 학교에서 마주하는 광경들이 하나하나 그렇다. 학교에서 방구 깨나 뀌는 녀석인 알빈은 또래보다 큰 몸집을 자랑삼아 내세우며 주변 아이들을 괴롭힌다. 그중에서도 노만은 주요한 타깃인데, 알빈은 마치 제가 무슨 어벤져스 멤버라도 된 것처럼 노만을 교실에서 쫓아내려 드는 것이다. 알빈의 집요한 괴롭힘을 피해 도망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도저히 못해먹겠는 일상이 지속되는 데도 탈출구는 따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를 돕는 사람도 전혀 없어서 노만의 학교생활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파라노만포스터로커스
진짜로 무서운 게 뭐냐면 말이지
교사 또한 마찬가지다. 뚱뚱한 여자 교사는 강력한 에너지로 아이들을 휘어잡고 마을의 역사성이 깃든 연극을 준비하도록 하는데, 이 광경이 그야말로 기괴하고 폭력적이다. 노만 곁의 망가져 있는 혼백들보다도 살아 있는 교사나 알빈 같은 이들의 태도가 훨씬 더 기괴하고 병들어 있지 않은가를 돌아보게 된다.
<파라노만>이 관객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가는 서사는 이처럼 진짜 두렵고 못났으며 무서운 것과 그렇다고 믿어져온 것을 마침내 대면하도록 한다. 마을 광장에서 이뤄지는 좀비와 마을사람들의 대결이 꼭 그러해서, 이 장면의 영리한 연출을 통하여 관객은 진짜 우리가 경계해 마땅한 것이 우리 바깥의 귀신과 같은 외부적 존재가 아님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 관객은 비로소 우리가 보고픈 것만 보고 듣기 싫은 것은 외면하며 진실보다는 거짓을 가까이 해왔음을 자성할 기회를 얻는다. 이것이 영화 <파라노만>이 열어내고픈 장인 것이다.
라이카 스튜디오 세 번째 영화인 <파라노만>은 지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회사가 다른 여러 애니 제작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내보인다. 완성도 높은 연출과 기술적 성취를 넘어서 영화를 보다 어느 순간, '이건 정말이지 라이카가 할 것 같은 이야기야'하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면 그건 그대로 성공을 이루었단 뜻이겠다. 나는 <파라노만>이 성공에 다가선 영화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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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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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아이의 마을 구하기, 진짜 무서운 게 뭐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