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도 극찬한 10여억짜리 공포영화

[하성태의 사이드뷰] 전 세계 흥행작 영화 <옵세션>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소원을 빈다. 누구는 일확천금을, 또 누구는 환상의 로맨스를 꿈꿀지어다. 목적도, 대상도 갖가지일 것이다. 휘영청 보름달이든, 지니의 램프든 빌고 또 빈다.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은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소원을 빌었다 화를 자처했다. 옛날 옛적에도 그랬고, 인간의 욕망이 소멸하지 않는 한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소원 성취 서사는 반복 또 반복된다. 앞서 소개한 <알라딘>이 시대와 매체를 바꿔가며 소환됨에도 매번 환영받는 걸 보라. 누구나 꿈꿔 봤기에 더 친숙하고 익숙하고 심지어 인간의 내재한 욕망을 건드리는 이 서사는 보편의 콘텐츠로 그 위용을 과시해 왔다. 특히, 그 욕망의 주체가 청년일 때 그 공감은 극대화된다.

인생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생경한 경험을 마주했을 때 오는 반응이나 혼란도 격할 수밖에. 반대로 그 욕망의 실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이를 이겨내려는 쟁투의 과정 역시 훨씬 역동적으로 묘사하기 안성맞춤일 거다. 관건은 장르와 연출력이다. 이 '소원을 빌어봐' 서사는 판타지나 코미니, 호러 장르에서 끊임없이 변주해 왔다. 그 변주의 차이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다.

고백하려던 찰나

 영화 <옵세션>의 한 장면.
영화 <옵세션>의 한 장면.유니버셜 픽처스

"항상 네 생각만 하고, 안 그러려고 하는데, 내가 듣는 모든 노래에 네가 있어, 넌 너무 과분한데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자, 여기 "제발 하지마!"라 말해주고 싶은, 짝사랑 고백을 준비 중인 한 청춘이 있다. 주변머리도, 경험도 없어 절친의 닦달에 식당 여직원을 앞에 두고 예행연습 할 정도인 이 남자의 이름은 '베어'. 그리고 이 '너드' 분위기가 물씬한 베어의 짝사랑 상대는 같은 음반 매장 동료 직원으로 일하며 베어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니키'다. 이윽고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전화로 연습했던 고백을 힘들게 꺼내려던 찰나, 니키가 2주 후 직장을 그만둔다고 한다. 이를 어째야 하나. 고백은 개뿔, 통화 말미 스마트폰 너머로 수정 목걸이가 배수구에 빠져 화난 음성을 들려주는 니키. 점수를 따기 위해 베어는 골동품 가게로 향하고, 목걸이를 고르다 발견한 '원 위시 윌로우'라는 장난감에 시선을 뺏긴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호러 팬들을 열광시킨 영화 <옵세션>이 시작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꺼내든 강력한 설정이 이 정도다.

"저는 공포라는 장르는 개념적인 관점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옵세션> 같은 영화는 (욕설을 섞어) 정말 끝내주는 아이디어입니다."

<오디세이> 홍보를 위한 외신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후배 감독 칭찬에 열을 올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공포영화를 만들 생각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는 기술보다 스토리가 중요하고, 그래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며 이 <옵세션>의 놀라운 아이디어를 극찬했다. 뭐가 그리 놀라웠을까.

소원을 비는 영화들은 많다. '청년 시절' 톰 행크스의 <빅>은 '졸타 기계'에, <일곱가지 유혹>은 악마에게, 급기야 올해 넷플릭스 한국 공포 시리즈 중 수작이라 평가받는 <기리고>는 스마트폰 앱에 소원을 빈다. <옵세션>의 놀라운 아이디어이자 차별화된 전략은 '단지 소원을 빌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으세요, '원 위시 윌로우'를요'라고 써진 매개가 아니라 소원 성취 이후의 양상이다.

"니키 프리먼이 날 사랑하게 해 주세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친구 커플과의 술자리에서도 베어의 갈팡질팡이 계속되고, '난 널 좋아해', '사귀자'는 고백의 순간은 자의 반 타의 반 지연된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던 차 안, 니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베어는 그녀와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라도 들었는지 임무 완수하듯 재빨리 소원을 빈다. 그러고는 직진이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니키는 바로 딴사람처럼 변한다.

놀랍게 살갑게 군다. 니키가 먼저 베어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자 제안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니키의 키스. 입맞춤 와중에 혼자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지르긴 해도, 니키는 니키다. 잠자리 직전까지 간 둘은 완벽한 연인 사이로 거듭난다. 무언가 찜찜하지만 그래도 내 사랑 그녀 니키 아닌가. 사랑을 고백한 적도 없는 베어에게 무차별적으로 사랑한다 말하는 니키를 보니 소원이 확실히 통한 게 맞는 것 같다. 세상 달달함도 잠시 그런데도 어딘가 이상하다.

그리고 시작되는 기행. 얼마 전 죽은 베어의 고양이를 샌드위치에 넣은 것은 니키인가 아닌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소원을 빌기 전과 완전히 다르게 말하는 니키는 이전과 같은 사람일까 아닐까.

"너 없인 못 살아"라며 달달한 말을 건네던 것도 잠시 "왜 날 사랑하지 않아"라며 식당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선 괴성을 지른다. 불 꺼진 방 안에서 같이 잠을 자다 일어나선 "나만큼 너는 왜 날 사랑하지 않느냐"며 울부짖는다. 급기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방문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버리는 그런 니키를 사사건건 달래는 베어는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가. 아니, 소원을 빈 것 말고 잘못을 하긴 한 건가.

집착이 집착을 부르는 파국

 영화 <옵세션>의 한 장면.
영화 <옵세션>의 한 장면.유니버셜 픽처스

전 세계 관객들의 열광이란 수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저예산 호러 <옵세션>이 들인 제작비는 고작 75만 달러. <옵세션>은 지난 5월 미국 개봉 이후 전 세계 흥행 4억8천만 달러를 돌파하며 제작비 대비 약 65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려 화제가 됐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그 독창성을 인정받고, 영미권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어내며 양수겸장의 성과를 냈다.

크리스토퍼 놀런도 극찬한 <옵세션>의 독창성은 어디서 오는가. 고작 7달러짜리 장난감에서 출발한 진지할 것 없던 소원이 불러온 악몽이란 설정 자체는 그리 신선할 게 없어 보인다. 차이는 집요함과 특유의 리듬으로 갈린다.

<옵세션>으로 벼락스타가 된 1999년생 유튜버 출신 커리 바커 감독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단편 <더 체어>와 <밀크 앤 시리얼>을 통해 신선함과 독창성을 겸비한 그만의 감각을 평가받은 이후 <겟아웃>, <헌트>, <인시디어스> 시리즈로 유명한 호러 명가 불룸하우스 프로덕션의 부름을 받았다. 2025년생인 <백룸> 케인 파슨스 감독과 함께 유튜브 출신 젊은 감독들의 새로운 영상 감각을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욕망이 부른 참극이란 '소원 성취' 클리셰는 <옵세션>에서 참신하게 진화됐다. 앞서 소개한 니키의 기행은 적절한 리듬과 균형 잡힌 공포 효과, 그리고 이번엔 어떤 기행으로 베어와 관객을 불쾌하게 만들 것인가에 매번 성공을 거둔다. 표현이나 수위가 과한 것도 아니다. 자아가 붕괴한 것 같은 니키의 기행을 침착하고 음침하고 집요하게 그리는 것만으로 공포의 감정은 점점 배가되고 몰입도 역시 극한에 다다른다.

집요함이라 표현한 것도 그래서다. 도무지 종잡지도, 예상치도 못할 니키의 기행을 불러온 이는 다름 아닌 베어다. 집착에 찌든 니키는 '쌍방향 사랑'을 호소한다. 정작 고백조차 못 한 니키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이전과 다른 자아인 것 같은 니키의 기행과 집착을, 그 관계를 끝낼 수 있는 이는 베어 자신인데도 집요하게 니키에게 매달린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끝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제는 이게 사랑인지도 확실치 않다.

또 다른 자아인 니키와의 관계는 이제 성관계와 과시욕을 포함한 베어라는 남성의 자기만족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집착이 또 다른 집착을 낳게 만든 장본이자 베어가 더 처절하게 고통과 징벌을 받는 쪽에 서게 된다. 집착의 주체가 뒤바뀐 것이 아니다. 먼저 욕망했던 이가 집착을 놓지 못해 파국을 키운 것에 불과하다. '날 것'에 친숙한 유튜버 출신 신인 감독은 이 집착에서 비롯한 불안과 파국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영민한 데다 뚝심도 세다.

전유물까진 아니더라도 공포영화의 주된 소비층이나 스크린 속 캐릭터들이 주로 청춘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옵세션> 역시 여러모로 소원 성취 욕망이 더 강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영화라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공포영화는 청춘의 장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저예산 공포로 데뷔해 거장으로 나아간 감독 중 대표주자가 바로 <죠스>와 <듀얼>의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스필버그 감독 역시 <옵세션>과 <백룸>이 거둔 흥행과 비평 양 측면의 성공에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이들 젊은 감독들의 성공이 기쁘고 환상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 성공에 휘둘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음 영화는 또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니까요. 앞으로 경력을 20~30편 쌓게 되면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올해 <살목지>의 성공 이후 한국 극장가 역시 그런 청춘 호러의 제작 소식이 속속 들려오는 중이다. 최근 크랭크인을 앞두고 더보이즈 '큐' 지창민과 우주소녀 '엑시' 추소정, <지옥만세>, <선의의 경쟁> 오우리 등 청춘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을 알린 <악구: 달 그림자의 비밀>(가제)도 그중 한편이다.

또 2018년 개봉해 순제작비 11억, 손익분기점 70만을 훌쩍 뛰어넘는 268만 관객을 동원한 <곤지암>도 속편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우리도 이제 때가 됐다. <옵세션>과 같은 근사한 청춘 호러를, 스필버그도 상찬할 완성도 높은 공포 영화를, 소원 성취라는 클리셰도 맛깔나고 독창적으로 요리하는 젊은 감독의 출현을 목도할 때가 됐다.

 영화 <옵세션> 포스터.
영화 <옵세션> 포스터.유니버셜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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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