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개봉하는 한국영화 <트루먼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구태여 장르를 말하자면 로맨스에 판타지적 요소가 덧대어진 작품이라 해야 좋을까.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빚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이 숱하게 보아왔던 긴장감 있는 로맨스의 얼굴을 하고 관객을 맞이한다.
주인공은 현식(배유람 분), 서울 대학로에서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바스버거 지점장으로 일하는 청년이다. 그가 어느 날 지하철 역사에서 속기사 지연(이주우 분)을 만난다. 지연은 현식에게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특별한 이야기를 건넨다. 좀처럼 잊기 힘든 첫 만남으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현식은 지연과 우연히 다시 조우한다. 이번엔 지연 곁에 못 보던 남자 문성(김신비 분)이 있다. 현식은 지연에게 제가 지연을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지연은 현식을 맞아들인다. 그러나 그 곁에 문성 또한 버티고 있으니, 이들의 관계는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 있는 결코 안정화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사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영화는 로맨스다. 그러나 그저 로맨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사랑'을 천명하고 있긴 하지만, 그에 앞서 제시한 '트루먼' 또한 그만큼의 비중은 있는 것이다. 트루먼은 무엇인가. 이 시대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고전, 그렇다, 이제는 고전이라 불러 마땅한 피터 위어의 명작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트루먼의 사랑>의 트루먼과 통한다. 말 그대로 'true man', 진실한 사람이 트루먼으로, 그 존재의 규정부터 진실하지 못한 것에 둘러싸여 있음을 전제한다.
▲트루먼의 사랑스틸컷
이화배컴퍼니
라이어의 세상, 트루먼으로 사는 나
영화 속 트루먼의 대항마는 라이어(lier), 곧 거짓된 이들이다. 세상에 라이어가 어찌나 많은지 트루먼이 돌연변이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현식에게 라이어와 트루먼의 존재를 처음 알려준 건 지연이다. 지연과의 만남을 통해 이전까진 알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과 마주하는 것이 <트루먼의 사랑>의 시작이 된다. 영화의 절반은 현식이 세상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미스터리 장르물처럼 흘러간다.
지연은 어느 날 묘한 신호와 함께 온 세상이 멈추고 모든 사람들이 이상행동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버그에 걸려 작동이 멈춰버린 로봇처럼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로 오로지 그녀만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마치 영어 듣기평가 같은 여자 목소리로부터 박수소리가 '짝' 하고 날 때까지 최면에 걸린 듯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깨어 있는 존재인 지연은 트루먼이다. 오로지 저 혼자만이 트루먼인 줄 알았던 지연이 어느 날인가 저와 같이 깨어있는 존재를 발견한 순간은 특이점이 됐다. 그로부터 지연의 목적은 또 다른 트루먼을 찾아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난 이가 바로 문성이고, 현식인 것이다.
<트루먼의 사랑>은 라이어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 세 명의 트루먼이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들이 더 많은 트루먼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가 되고, 거짓된 세상을 벗어나 진실을 구하는 이야기도 된다. 마치 삶의 진실한 목적을 알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어느 공동체의 모습 같기도 하고, 일종의 비밀결사처럼 더 나은 가치를 구하며 위험을 무릅쓰려는 이들처럼도 보인다.
중요한 것은 트루먼과 라이어의 구분이고, 이 구분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세 사람이다. 구분의 인식이 관계와 삶의 양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영화 전반부에선 꽤나 자연스럽고 마땅하게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트루먼의 눈에 비친 라이어들의 행태가 너무나 기괴한 때문일 테다.
▲트루먼의 사랑스틸컷
이화배컴퍼니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순간
<트루먼의 사랑>이 특별해지는 건 전환으로부터다. 라이어와 대비되는 트루먼, 세 사람의 연애담이 일순 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화한다. 현식을 주인공 삼아 전개되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문성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의 곁에 남은 건 앞의 두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 원우(장근영 분)와 윤미(정수지 분)가 그들로, 문성과는 꽤 오랜 연이 있는 듯하다. 예술을 비롯해 온갖 주제로 지적인 대화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1차대전 뒤 프랑스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 같은 장소에 모여든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보는 듯하다.
영화는 앞의 트루먼이며 라이어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인 듯한 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모임원 한 명이 빠진 뒤 조금 아쉬움을 느낀 이들이 새로운 멤버를 찾는 과정이 주를 이루는데, 아무나 저들과 같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될 수 없단 인식이 모두에게 깔려 있는 듯하다. 요컨대 특별함, 이들은 서로를, 또 스스로를 특별하게 바라본다. 그 특별함의 구분이 생기는 순간, 이들 밖에 있는 이들은 저들 모임에 들 수 없는 평범하고 특별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들의 대화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아주 탁월한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지적 유희를 즐기는 교양 있는 자리라고 하기엔 충분한 품격 있는 대화다. 이와 같은 대화를 이루기 위하여선 그에 걸맞은 자질과 역량을 갖춘 구성원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하여 어중이떠중이가 모여서는 이룰 수 없는 즐거움이 얻어지는 것이다. 영화는 여기선 문성을 가운데 두고 빚어지는 미묘한 두 여성의 관계를 또한 인상 깊게 비추는데, 이는 그대로 앞의 삼각관계에 대응하는 애정전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트루먼의 사랑스틸컷
이화배컴퍼니
그렇고 그런 치들 사이에서
<트루먼의 사랑>은 한 번의 전환으로 나뉘는 앞과 뒤가 어색하게 맞붙는 작품이다. 트루먼과 라이어의 세계라는 판타지나 SF적 설정이 자아낸 미스터리가 작동하지만, 앞과 뒤의 구분은 그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보다는 다른 데 영화적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두드러지는 건 자신들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들의 존재이며, 이들의 구분을 통해 드러나는 특별함과 평범함의 차별이다. 어쩌면 마땅한 차별일 수도, 불필요한 구분일 수도 있을 나뉨을 통하여 관객이 얻게 될 감상이 곧 영화의 메시지와 마주 닿을 수도 있겠다.
<트루먼의 사랑>은 한국영화, 특히 독립영화를 아끼는 영화팬들에게 적잖은 기대를 받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이룩한 성취보다도 그간 한국영화가 이뤄 마땅했으나 좀처럼 해내지 못했던 갈증의 해소를 이 작품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되었다고 여긴다.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섹션에서 처음 공개돼 발 빠른 영화애호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전술했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을 여럿 갖춘 까닭이겠다. 새로운 관점에서 독창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을 가려 뽑아 소개하는 비전 섹션은 기대에 비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긴 했으나 이따금은 주목할 만한 작가와 영화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트루먼의 사랑>이 받는 관심이 이와 떨어져 있지 않다 여긴다.
기술적 완성도며 메시지의 새로움보다도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때로 어느 영화는 관객이 서사에 빨려들어 러닝타임 동안 작품과 거리감을 두지 못하도록 전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소수의 영화는 그 반대편에 선다. 관객이 작품 가운데서도 관객으로 존재하며 영화의 말하는 바에 적절히 귀 기울여 사고하도록 이끈다. 그러면서도 소통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니, 나는 <트루먼의 사랑>이 관객을 윽박지르거나 매료하게 하는 대신 서로 통하려 드는 작품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트루먼의 사랑포스터이화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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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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