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사 '지연'은 어느 날 자기만 빼고 주변이 정지하는 상황에 놓인다. 일정 시간 멈췄다가 삐 소리와 함께 복원되긴 하지만, 반복되는 기현상에 질식할 듯하다. 나만 빼고 세상이 다 이렇다니! 영화 <트루먼 쇼> 주인공과 일치하는 모양새. 멈춰버린 세계에서 혼자 행동의 자유를 얻었지만, 상황이 끔찍하기만 하다. 세상에서 나 혼자 '트루먼'인 걸까?
지연은 또 다른 트루먼이 있을 거라 믿는다. 오랜 여정 끝에 '문성'과 만나 연인이 되고 뒤이어 '현식'도 찾아낸다. 셋이 어울리니 외롭지 않다. 하지만 우연히 들은 이야기, 트루먼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조작된 세상 밖 탈출할 수 있다는 뉴질랜드행 소식은 지연을 뒤흔든다. 함께 거짓 세계를 벗어나자는 계획에 생각은 엇갈린다. 게다가 지연을 두고 두 남자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현대인의 상호관계와 소외감에 천착해 온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트루먼의 사랑> 스틸
고집스튜디오
<트루먼의 사랑>은 피터 위어 감독, 짐 캐리 주연 1998년 영화 <트루먼 쇼>를 가져와 비튼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며 거대 사회 시스템과 미디어의 은폐된 억압에서 주체적 선택을 그렸던 설정 일부를 가져와 21세기 한국 사회 '도시남녀' 실존을 듬뿍 끼얹었다. SF 설정을 도입했는데 막상 관객이 기대할 초현실 이미지나 정교한 고증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보고 있자면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구성이다.
물론 <트루먼 쇼>가 그랬던 것처럼 <트루먼의 사랑> 역시 제법 충격적인 반전이 있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모든 설정을 '입'으로 소화하고자 한다. 인물들은 끊임없이 대화하며 질문하고 충돌한다. 물리적 액션이나 시각적 충격을 철저히 배제하고 외부 관계와 내면의 소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연쇄작용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공세적인 문답을 요청한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떻냐고.
김덕중 감독은 2019년 첫 장편 <에쥬케이션>부터 꾸준히 한국 사회에서 소통의 난망함과 인간 소외를 제기해 왔다. 제것 챙기는 게 우선이라 속물적이긴 하지만, 악인은 절대 아닌 사람들이 자연스레 관계를 형성하며 때로는 치고받는 풍경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현실을 압축해 극화하기보다 피카소의 입체파 화풍처럼 보고 있으면 불편할 수 있는 여러 단면을 동시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는 2021년 <컨버세이션>으로 계속된다.
하지만 데뷔작이 돌봄 문제란 민감한 사회적 쟁점을 다루며 인물 간 격렬한 충돌과 대립을 펼치는 데 반해, 후속작부터는 일상 관계 자체에 집중하면서 (큰 틀에선 타인과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경향을 유지하는데도) 이질감이 두드러졌다. <에쥬케이션>을 보고 나서 <컨버세이션>을 감상하면 같은 감독 영화가 맞나 갸우뚱할 정도다. 과연 감독의 다음 작품은 어떤 노선을 취할지 궁금해졌다. 마침내 공개된 <트루먼의 사랑>은 감독의 지향을 확인케 하는 작업이다.
독점과 연대 사이, 동상이몽으로 표류하는 공동체
▲<트루먼의 사랑> 스틸
고집스튜디오
영화는 지연과 현식, 문성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지연은 모두가 멈춘 세상에서 혼자 멀쩡한 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불안하다. 듣고 보면 끔찍한 고독감 아닌가. 그렇게 지독한 소외를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주변을 탐색한 끝에 경찰 문성을 찾았다. 둘은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지연이 품은 감정은 전통적인 연애 감각과는 조금 다르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방황하는 둘만의 유대감에 가깝다. 한편 문성은 전형적인 연인으로 그녀를 대한다.
문성은 지연과 서로 의지하며 이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지연의 뜻은 다르다. 문성을 찾았으니 다른 이가 또 여기저기 잠복해 있을 거란 믿음은 증폭된다. 더욱 열심히 동료를 찾던 지연의 눈에 햄버거 가게 점장으로 일하던 '현식'이 들어온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던 그는 지연의 출현과 더불어 깨닫게 된 세상의 비밀 앞에 전율하지만, 몇 달 후 트루먼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지연을 찾는다. 셋은 이제 트루먼들만의 작은 공동체를 형성한다.
지연의 주도로 한동안 셋은 어디든 함께 어울려 다니며 관계는 깊어간다. 하지만 지연을 향한 문성과 현식의 생각은 동상이몽에 가깝다. 지금 일상에 만족하는 문성과 달리, 타인들과 확연히 다른 존재인 트루먼들은 조작된 세계 바깥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지연의 의지는 확고하다. 뉴질랜드에 가면 외부로 향할 방법이 있다는 말에 지연은 셋이 같이 떠나자고 하지만, 두 남자의 의견은 나뉜다. 현식은 혼자는 두렵지만, 함께라면 기꺼이 감행할 수 있다는 입장.
이견은 점점 갈등으로 심화한다. 문성은 자신이 지연을 구원했다고 여겼지만, 지연은 문성에 의지하던 존재에서 벗어나 이제 현식을 구원하려 한다. 둘만의 세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문성은 초조하다. 한편 지연은 뜻밖의 비밀을 깨닫게 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완벽한 트루먼이란 실재하는 것인지, 누구도 되돌아온 적 없다는 뉴질랜드의 비밀 입구는 과연 존재하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행이 있다면 뭔들 못하랴.
사실 누구나 고립을 피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풍경
▲<트루먼의 사랑> 스틸
고집스튜디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문성은 트루먼에게 위험하다는 모임, '트루먼 소셜 클럽'을 주관하는 '희선'과 만남을 갖는다. 어쩌면 지연의 행방을 수소문할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기대에서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인데도 즉답을 회피한다. 그래도 유일한 단서인 희선을 문성은 직업 특성을 살려 끈질기게 뒤쫓는다. 선문답처럼 상대의 질문에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는 희선이지만, 만남을 피하진 않는다. 기묘한 관계가 시작된다.
문성은 '원우', '윤미'와 함께 또 하나의 '소셜 클럽'을 꾸리고 있다. 그들은 한 달마다 만나 정치와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언뜻 파편적인 이야기 소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조각들이 떠오르고 조합된다. 하지만 대화는 항상 결론을 맺지 못한다. 세계의 여러 모순을 포착하긴 해도 서로 다른 생각 품은 이들이 공동의 대안을 도출하거나 행동을 결의한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구성원들은 그런 난제를 봉합하는 데 동의한 상태다.
하지만 지연을 찾지 못한 지 오래된 문성은 점점 반복되는 일상에 회의를 느낀다. 지연을 찾고 트루먼으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혼란에 빠진 그다. 희선은 천천히 그런 문성에게 다가간다. 이건 '유혹'이라 해도 좋을법하다. 과연 그녀가 꾀하는 건 무엇일까? 왜 트루먼이 아닌데도 트루먼에게 집착하는 걸까? 희선이 어디까지 본심이고 진실일지 모호한 담화를 꺼낼 때마다 <트루먼의 사랑>은 미스터리 장르로 돌변하곤 한다. 과연 이 관계는 어디로 향할까?
감독은 장르의 외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 풍경 속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문제를 던지면서도 친절하게 해설하거나 모범 답안을 제시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관객 역시 어렵지 않게 영화가 던지는 문제의식을 깨닫고 있기에 구구절절 상투적 절차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듯하다. 군더더기를 싹 덜어내 마치 화면 속 환하고 텅빈 여러 배경처럼 백지상태로 만든 후, 원하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감행한다.
나선의 순환처럼 대화와 관계만으로 포착해야 하는 세계의 진실
▲<트루먼의 사랑> 스틸고집스튜디오
영화는 지독하게 모더니즘적이다. 전통적인 가치와 믿음을 허물고 이성과 합리를 동반한 자유의지를 강조하며 탄생한 근대 세계, 하지만 정작 많은 이들은 믿을 구석을 잃고 '인간 소외' 문제가 국경을 초월해 만연한다. 중세까진 먹고 사는 기본 생존이 문제였다면, 이젠 굶어 죽을 걱정은 덜었어도 상상할 수 없던 차원의 저주가 툭 떨어져 찰싹 들러붙는 셈이다. 모두가 외롭고 불안하다. 세상에 나만 혼자 떨어진 것 같다. 견딜 수 없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
초조함에 빠진 이들은 종종 나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상상에 닿는다. 특별한 능력 또는 저주의 대상이라면, 분명 숨은 의미와 해야 할 임무가 있을 거란 믿음. 이면의 숨은 '진실'을 모르는 '라이어'들과 자신 같은 특수한 존재는 그렇게 구별된다. 허물없이 소통해야 하건만, 밀교 집단처럼 새로운 벽을 만드는 셈. 트루먼 생존 법칙은 세상이 멈출 때 자신들의 존재를 혹시 들키지 않기 위해 함께 멈춘 척하는 것이다. 굳이 피곤하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
감독은 자신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겉보기엔 평범한 도시풍 드라마 얼개 밑에 탈근대적 세계의 풍경을 구축한다. 배우들은 연기력을 뽐낼 기회가 없다. 철저히 캐릭터로서, 즉 감독이 연주하는 하나의 악기처럼 화면 속에서 기능적 역할을 소화한다. 독립영화계 친숙한 얼굴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들을 반기며 관객이 기대할 '메소드' 연기를 볼 기회는 깃들지 않는다. 그 대신 정교한 오케스트라처럼 배경과 소리, 대화와 관계망이 연결되며 어떤 지도를 그린다.
<트루먼의 사랑>은 친절한 가이드와는 동떨어진 영화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살 사람이 아니라 팔 사람이 본위인 작업에 속한다. 환하고 깔끔하지만, 흔히 '사람 냄새'와는 동떨어진 작중 인물들의 집과 모임 장소들은 모두가 사라진 채 텅 빈 전복적 '지옥'을 형상화한 듯하다. 감성적인 배경음악 대신에 일상 배경음과 내면 심리를 조합한 것 같은, 과하지 않은데 은근 자극적인 음향 역시 화면 바깥 우리 일상의 건조하고 살풍경한 현실을 강조하는 데 쓰인다.
마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나와 나를 포함한 세상은 채울 수도 비울 수도 있는 영역이란 진실을 풀기 위해 참 오래 구불구불 돌아오는 작업이다. <솔라리스>나 <잠입자> 같은 철학적 SF 고전을 도회적 감각으로 수렴한 본작은,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감응을, 다른 누군가에겐 잘못된 선택으로 드러날 영화의 개봉 풍경이 궁금해진다. 감독이 포착한 우리 시대의 풍경은 관객과 어디까지 공명할 수 있을까?
<작품정보>
트루먼의 사랑
The Love Of Truman
2025 한국 SF, 로맨스
2026.08.26. 개봉 146분 12세 관람가
감독 김덕중
출연 배유람, 이주우, 김신비, 강진아
음악 단편선
제작 ㈜고집스튜디오, 풀잎필름
배급 이화배컴퍼니㈜, 뜨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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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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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주변이 모두 멈춘다, '한국판' 트루먼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