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떼아뜨르고도 <블러드 라인 엘렉트라> 공연 이미지
조훈성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표면적으로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연인인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하려는 인물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아가멤논 살해는 딸의 희생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지만, 아이기스토스와의 권력 결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악한 어머니가 벌을 받는다는 식의 권선징악 전개가 아니라 하나의 살해에 앞서 또다른 살해의 이유가 존재하며, 또 복수의 시간까지 인내는 주인공에게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극의 현재는 이미 아가멤논 죽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다. 엘렉트라는 반복적으로 모든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져버린 궁전 안에서 고통 받는 딸로, 또 아버지의 죽음을 끊임없이 발화하는 애도자로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중심은 살해와 응징의 복수의 장면이 아니라 엘렉트라의 아버지를 향한 거듭된 애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연극적 형상화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지는 것은 엘렉트라가 고립 속에서 울부짖고, 기억하고, 증언하는 데 있어서의 그 내면 심리를 어떻게 드러내느냐가 관건이다.
궁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버지의 피와 가문의 치욕, 그리고 끝나지 않은 폭력의 기억이 축적된 장소이며 여기서 실행될 복수는 엘렉트라의 삶의 전부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떠받치는 마지막 근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재해석된 이 연극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복수가 실현되면 과연 정의가 회복될 수 있느냐에 관한 질문이다.
오레스테스와 함께 복수를 성공한 순간, 엘렉트라를 지탱해 온 지금까지의 언어와 역할이 끝나면서 인물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복수에 실패한 게 아니라 살해 후 결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데 있다. 이번 공연은 엘렉트라의 이러한 심리를 시각화하는 데 있어서 무대형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소극장임에도 양 옆으로 코러스 공간의 배치 등 잘 구획된 인상적인 무대 배경과 상징 장치를 통해 인물의 욕망, 공포, 신념의 균열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
연극은 엘렉트라의 독백과 대화를 통한 심리적 전환, 인물의 정서적 고저, 침묵의 길이, 신체의 긴장과 풀림, 상대 인물과의 거리 변화를 선명하게 보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러한 인물 내면의 복합적이고 여러 겹의 정서가 한 타래로 엉키고 묶여 있는 심리극의 성패는 어떤 장치의 수보다 배우의 호흡과 침묵, 그리고 긴밀한 장면 전환에서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달려 있는데, 이는 그만큼 배우에게는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엘렉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오레스테스의 죽음이라는 거짓 소식과 유골함의 등장이다. 원전 희곡을 읽은 관객은 처음부터 오레스테스가 살아 있으며 귀환 후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엘렉트라는 이를 알지 못하므로 유골함을 받아드는 순간은 단순한 오인의 장치가 아니라,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 꺼져버리는 순간이라는 심리 정서의 전달이 크게 부각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엘렉트라가 동생을 애도하는 장면인 동시에, 복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다시 물어야 하는 장면이고,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버텨온 시간이 산산이 허공으로 부서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유골함 장면이 조금 더 길고 깊은 독백의 시간으로 엘렉트라의 절망이 확보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러스가 오레스테스의 죽음을 전하는 장면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이 아니라, 극 전체를 움직이는 기만과 몰입적 서사의 핵심 장치이면서, 엘렉트라의 희망을 부수고,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는 안도감을 안기며, 오레스테스의 귀환을 둘러싼 긴장을 한층 고조시켜야 하는 부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무대에서는 이 장치가 지닌 심리적 파문을 충분히 드러내기보다 오레스테스와의 재회에 중점을 두고 연출되면서 엘렉트라가 자신의 고통과 복수의 과업을 동생에게 넘겨주는 동시에 자신을 지탱해 온 복수의 서사를 타인에게 쉽게 양도한 느낌이 없지 않다.
복수의 끝난 뒤에 남는 것
소포클레스의 극에서 엘렉트라의 시선에서는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을 더럽힌 가해자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켰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바로 그 사건을 남편 살해의 근거로 내세운다. 이 가문은 아버지가 전쟁을 위해 딸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며, 남은 자식이 공모해 자신들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연쇄적인 복수의 참극을 벌인다.
아가멤논은 아버지이면서 딸을 희생시킨 가해자이며,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살해자이면서 딸을 잃은 어머니이다. 또 엘렉트라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말하지만, 그 정의 또한 또 다른 살해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기에 극중 엘렉트라와 자매인 크리소테미스의 대립 역시 정의로움과 비겁함으로 도식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정의를 위해 삶 전체를 파괴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백한 모순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번 각색된 작품에서 이러한 윤리적 균열이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면, 연출이 말한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가는 인간' 엘렉트라는 한층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왔을 것이다. 비타협적인 신념은 존엄의 표현일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과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함이 될 수도 있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바로 이 불편한 양면성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극 종반부의 연출은 복수의 클라이맥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복수 이후 엘렉트라의 존재가 갑자기 쓸모없어지는 순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져 보인다. 결말에서의 엘렉트라의 몸짓은 단순한 해방이나 종결의 이미지가 아니라, 복수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중첩된 기억을 신체화를 통해 드러내는 장면이다. 엘렉트라의 몸은 아버지의 죽음과 애도, 동생의 귀환과 공모로 어머니의 죽음을 완성한 몸이다. 그래서 이 몸짓은 그 고통의 기억을 통과시키면서의 부산물로써 보여진다. 결국, 연극은 복수의 완성이라는 승리의 축제가 아니라 비로소 비극 이후의 불안한 생존으로 확장될 수 있게 된다.
▲극단 떼아뜨르고도 <블러드 라인 엘렉트라>의 커튼콜
조훈성
평일 공연 당일의 원도심 소극장의 빈 객석이 아쉽다. 소극장 연극은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가까운 거리에서 교환될 때 고유한 밀도와 긴장을 얻는다. 평일 공연이라는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고전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지역 창작공연이 충분히 관객에게 알려지지 못한 게 꼭 누구의 탓이라 돌릴 문제는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담은 결코 모험과 승리의 이야기로만 완결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끝없이 항해해야 했다면, 아가멤논은 전쟁의 승리 뒤 고향 미케네로 돌아왔으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바로 그 죽음 이후, 아버지의 살해를 현재의 시간 속에서 끝없이 반복해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평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살해, 복수의 연쇄가 가족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블러드 라인 엘렉트라〉의 제목은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블러드 라인'은 단지 혈통이나 가문의 계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피로 이어지고 피로 훼손되는 가문의 운명을 암시한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를 통해 그리스 신화의 처참한 전쟁과 영웅의 험난한 모험, 귀환을 지켜본 관객이라면, 이 연극에서 그 거대한 영웅서사가 한 가정의 식탁과 궁전 안쪽에서 어떤 상처로 남는지를 더 쉽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엘렉트라〉는 이미 모든 사건이 일어난 뒤 남겨진 한 인물의 애도와 분노를 따라간다. 따라서 이 연극은 영웅들의 그 대서사가 남긴 심리적 잔해에 가까운 작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은 관객에게 복수의 정당성만이 아니라, 복수가 끝난 뒤에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다. 복수는 끝났지만, 엘렉트라에게 삶은 과연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
▲극단 떼아뜨르고도 <블러드 라인 엘렉트라>포스터극단 떼아뜨르고도
극단 떼아뜨르고도 <블러드 라인 엘렉트라>
26.8.7~ 8.17. 소극장고도
원작_소포클레스(각색 김주원)
연출_권영국
출연_신현지 · 정선호 · 조민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