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의 '마지막 나무' 22그루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콘크리트 녹색섬>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영화사진진

J.R.R.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 나무를 수호하는 목자 종족 '앤트'를 창조한다. 인간과 요정, 난쟁이는 물론 동식물 막론하고 지성을 가진 종족들이 조화를 이뤄 살던 중간계였지만, 다른 종족이 숲을 베어내기 시작하자 앤트 역시 쇠퇴한다. 대륙 전역을 뒤덮던 숲은 반지 전쟁 시기엔 '섬'처럼 축소된다. 영화 속 앤트의 마지막 행군이 중간계 역사에서 나무 목자들의 거의 마지막 기록이 된다. 그렇게 숲과 함께 가운데땅 역사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옛 존재는 잊힌다.

서울 평범한 아파트단지의 조금 특별한 역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도시 과밀화가 한창이던 1982년에 개포주공아파트 1단지가 완공된다. 저층(5층)인데도 124동 5040호 규모, 즉 2만 명 넘는 서울 시민의 보금자리로 존재한 이곳은 노후화로 인한 재개발 절차를 밟으며 2020년 철거된다. 그 자리엔 2023년 6702호 규모의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들어선다. 시공사는 주공아파트와 같은 현대건설이었다. 재개발 과정에서 어딜 가나 익숙한 조합 내 분쟁이 있긴 했지만, 대서특필될 건은 없었다.

감독은 '개포주공 키즈'였다. 유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개포주공아파트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마음이 동한 그는 현장을 방문한다. 회상에 잠긴 감독은 문득 다른 사람들도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리란 데 생각이 닿는다. 2014년에 '개포동 그곳'이란 이름으로 SNS 채널을 개설한 다음 뜻이 같은 이들을 모아 '기억 산책', '나무 산책'을 몇 년간 진행한다. 사진을 촬영하고 경험을 나누며 사람들은 함께 단지에 얽힌 기억을 되새긴다.

그 기억의 일부는 아파트를 훌쩍 넘어 성장해 '도시 숲'을 이룬 단지 내 거목들에 할애된다. 메타세쿼이아 묘목은 40년이란 세월 동안 쭉쭉 성장해 밀림 같은 장관을 형성했고, 탐방 온 '나무학자'는 서울 도심에서 전례가 없는 다양한 수목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며 경탄한다. 모르고 보면 똑같겠지만, 인근 야산에서 새들이 운반한 씨앗 덕분에 단지 내엔 50여 종이 훌쩍 넘는 다양한 나무들이 말 그대로 '숲'을 형성한 것. 토양 기반이 보존되었기에 가능한 사례다.

감독은 단지 곳곳을 누비며 기억을 수집한다. 주민들이 재개발 과정에서 떠나는 와중에도 단지를 지키는 이들과 만나 증언을 기록한다. 소아과 의사는 처음 자리를 잡을 당시엔 갓난아기들을 봤지만, 그들이 점점 성장하며 덩달아 환자 연령대도 함께 올라갔다며 이젠 평범한 가정의학과가 되었다고 전한다. 문방구 사장님은 단지 내 학교가 아직 유지되기에 학생들이 눈에 밟혀 떠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는 계속할 예정이라 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추억 보정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들른다. 그들 역시 수줍게 입을 떼지만, 한 번 두 입술이 열리면 참 할 말이 많다. 당연히 기억도, 생각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진술을 모으니 자연스럽게 개인의 성장사와 단지의 흥망성쇠가 동시에 펼쳐진다. 주공아파트단지는 북쪽은 민영아파트단지, 남쪽은 '달동네'의 대명사 구룡마을과 이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윗동네 출신에게 '개도 포기한 동네'라며 차별을 당하기도 했단다.

나무 지킴이의 여정이 화면에 묻어나다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영화사진진

그랬던 주공아파트단지가 재개발 과정에서 '개도 포르쉐를 타는 동네'로 격상된다. 감독 일행이 뻔질나게 단지를 드나들자 혹시 개발에 반대하는 세력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도 없지 않다. 이미 '원주민'은 5%에 불과하다며, 95%가 외지인으로 교체된 상황에서 사라진 과거를 굳이 들춰서 감상주의로 기우는 게 '감성팔이' 아니냐는 눈치다. 주민 중 일부는 일행을 가로막거나 거칠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이미 재건축 톱니바퀴는 해일처럼 작동하는 중이다.

6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를 전부 지키는 건 이미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들은 단지 재건축 계획에 포함된 공원용지에 일부라도 옮겨심기를 추진한다. 하지만 벌써 재개발이 확정된 공사에 강남구청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게다가 새로 공원을 만들기 전까지와 후의 담당 부서도 다르다. 재건축과와 공원녹지과가 핑퐁게임을 벌이는 과정은, 감독이 민원을 제기하며 처음엔 전자메일로, 다시 전화로, 결국엔 방문으로까지 연계되어 답답함을 관객에게도 전파한다.

항의와 대립보다는 대화와 설득 위주로 감독과 동료들은 철거 중인 단지에서 점점 '녹색섬'으로 축소 및 고립되어가는 나무들을 보전할 궁리를 거듭한다.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누구도 모르는 새 숲은 사라졌을 테다. 이미 숲의 존재를 인식해 버렸으니 돌이킬 순 없는 노릇. 그러나 재개발 관련 주민 간 충돌에 나무가 '볼모'가 되는 등 시련은 계속된다. 굳이 새로 공원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구하기보다 있는 나무를 옮기면 되지 않냔 질문은 메아리를 듣기 힘들다.

다방면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22그루마저 끝내 베임을 당하고 만다. 모임에서 각각 이름마저 붙여준 것들이기에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손 내미는 나무', '어른 나무', '키다리아저씨 나무', '우리 집 앞 나무', '만지는 나무', '아파트 뒤 열대우림'까지 단지에 관한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라면 코끝이 찡해지지 않고 못 견딜 작명이다. 그들의 잔해는 서울숲 공원 내 곤충 호텔과 통나무 벤치로 재활용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옛 친구 대하듯 정성을 기울이던 22그루 거목은 생기를 잃고 통나무로 쌓인다. 화면은 녹색에서 흑백으로 변한다. 죽은 나무의 세상을 응시하는 감독의 시선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 거기에 개인적인 불행도 덩달아 닥친다. 다년간의 노력도 길을 잃고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이라면 당연히 그럴 만하다. 하지만 그런 추락과 침잠을 나무들이 정녕 바랄까? 뜻밖의 작은 발견은 재생과 희망의 싹처럼 보인다. 그렇게 나무지킴이는 다시 눈을 뜬다.

숲이 사라질 때 고향도 사라진다는 교훈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영화사진진

현대 한국인, 특히 도시 거주자의 태반의 고향은 아파트가 된 지 오래다. 21세기 한국인은 사실상 '아파트 민족'이 된 셈. 이 새로운 한민족의 고향은 30년마다 재건축으로 갈아엎어진다. 즉 아파트 민족은 30년만 지나면 '디아스포라' 운명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 감독은 기록 활동을 이어가던 중 문득 이 사실을 깨달았을 테다. 내가 살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친구 같던 나무가 있던 자리는 주차장이 된다면, 나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영화는 7년여의 촬영 동안 단지의 변천사를 나무의 예정된 운명과 함께 차근차근 묘사한다. 울창한 거목이 드리운 고즈넉한 풍경은 서울 강남 한복판이라곤 믿기 힘든 운치를 제공하지만, 숲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상태다. 신파적 감정을 굳이 끌어올리지 않으려, 사람들 간 갈등을 강조하지 않고자 많은 부분은 원경에서 처리된다. 바람 잘 날 없는 재건축 현장에서 안정된 촬영 환경 유지와 더불어 단지의 마지막 풍경을 고이 간직하는 부수 효과도 파생된다.

대신 카메라는 다양한 방법으로 단지 안 나무들을 관객과 별 상관없는 객체이자 타자에서 인식의 대상이자 이름과 기억의 주체로 승격하는 데 공을 들인다. 도시인은 구별하기 힘든 나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소개되고 수종을 분류해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 자연 숲에 가까운 분포 덕분에 더불어 살아가는 비인간 동물의 존재도 함께 알 수 있다. 매미 유충 성장 과정, 개와 고양이, 여러 조류가 단지에서 함께 살던 또 다른 '주민'이라는 주장이 소리 없이 스민다.

굳이 목소리 높여 항의하지 않아도 일단 관객의 눈에 들어온 이들은 이제 나랑 상관없는 타자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화면 속 감독의 자조와 독백은 고스란히 관객의 가책과 연민으로 전화된다. 이걸 노리고 참을성 있게 영화 내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거듭했을 테다. 그런 작품의 태도는 식물의 생존 지혜를 빼다 박은 모양새다. 맞붙어 싸우며 사생결단을 내기보단, 뿌리에서 새로운 묘목이 자라고 새와 곤충의 도움으로 씨를 널리 흩뿌리는 것처럼.

하나의 비극에 묶이기보다 다른 비극을 막으려는 의지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영화사진진

처음엔 그저 자기 본위로 추억 정리 차원에서 출발한 온라인 활동이 정기적인 모임과 기록 작업으로, 이후 본격 촬영과 영화화까지 10여 년 동안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돋아난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과 같은 궤적을 보인다. 감독의 작가적 면모가 짙게 투영된다기보단 함께 뜻을 모으고 공명한 이들의 집단 창작 같은 기운을 풍기는 건 작품의 만듦새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본편이 끝나고 천천히 올라오는 자막엔 출연한 이들이 깨알처럼 소개된다. 그런데 이조차 타 작품과는 뭔가 좀 다르다. '기억하러 온 사람들', '동네를 지킨 사람들', '기억 산책 & 나무 산책 참가자',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동물 친구들'까지 세세하게 구분해 묶어놨다. 지금까지 졸지 않고 영화에 집중한 관객이라면 허투루 넘어갈 수 없는 이름들이 그렇게 조합되어 다시금 자신들의 존재를 간절히 알린다.

주요 화자인 감독의 회고를 보완하기 위해 연기자 대역을 투입한 재연 장면, 감응을 증폭하려 삽입한 애니메이션 장면, 단지 전경을 담기 위한 드론 항공 촬영까지 다양한 기술과 품을 들인 작업이지만, 우와 경탄하게 만드는 과시보다는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드는 자세가 시종일관 꾸준하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정서를 자극하는 작전은 아파트 단지에 어울리지 않는 장대한 숲에 경탄하다 그 나무들이 무참히 베여 쓰러지는 참상에 슬퍼할 수밖에 없도록 이끈다.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영화사진진

영화는 개포동 나무들의 운명을 기록하지만, 비극에 집착하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를 조심한다. 숲이 사라지는 과정의 소개는 또 다른 도심 속 나무와 숲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연민하도록 반면교사가 돼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부동산 가치를 '국교'로 삼은 아파트 민족에게 세계의 다양한 단면과 공존하는 씨앗이 싹틀 수 있다. 이 작업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희망을 민들레 홀씨처럼 퍼트리고픈 꿈이다.

<작품정보>

콘크리트 녹색섬
Green Concrete
2025 한국 다큐멘터리
2026.08.19. 개봉 103분 전체관람가
감독 이성민
출연 이성민, 우종영
제작 스튜디오시옷㈜
배급/투자 ㈜영화사 진진

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심사위원 특별언급

 <콘크리트 녹색섬> 포스터
<콘크리트 녹색섬> 포스터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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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