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6년 한국 청춘의 보고서를 쓰라면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까. 청춘의 단면을 그리라면 또한 어떤 표정을 담아낼 수 있을까. 20여 년 전 김애란은 한국문학에 신림동 고시촌 청년들과 재수생, 또 곰팡이 슨 반지하방을 제 첫 집으로 삼는 지방 출신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으며 이와 같은 과제에 응답했다. 8년 전 이창동은 한국영화 가운데 도무지 쫓을 수 없는 격차와 스스로를 갉아먹는 열등감으로써 이 시대 젊음을 형상화했다.
작가라 불러 마땅한 수많은 창작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시대와 세대의 얼굴을 그려내려 고투한다. 이 시대 대중예술의 최전선, 종합예술인 영화 또한 그 책무를 게을리해선 안 될 일이다. 이달 19일 한국 영화작가의 산실을 자임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 한 편이 관객 앞에 제가 써낸 답지를 공개한다. 1985년생 이광호 감독의 <리틀 드리머즈>다.
<리틀 드리머즈>는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올 하반기 정식 극장 개봉에 이른 장편 극영화다.
▲리틀 드리머즈스틸컷
필름다빈
2026년 한국 청춘의 초상?
영화는 과거와 미래를 재조립해 오르내리는 특별한 꿈을 소재로 현실 가운데 신비한 경험을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나는 건우(유희제 분), 야구용품을 판매하는 사업자라지만 현실은 백수나 다름없는 서른을 넘긴 청년이다. 엘리트 야구선수의 길을 걸었으나 재능부족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포기하고 이제는 추억과 미련이 섞인 용품 취급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야구 지도자였던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제가 꿈을 좇는 건지 미련을 좇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게 가능성만 축내고 있는 건지를 알지 못했던 시간이 길었다. 어디 그와 같은 청춘이 건우 하나뿐일까.
그렇다 해서 건우의 오늘을 마땅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가 그리는 건우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청춘이다. 학원강사인 재성(방태원 분)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들의 우정이 탄탄해서가 아니다. 면목 없음을 아는 마음이 이미 상실된 것이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이가 지켜야 할 것을 전혀 지키지 않는 그의 태도에 친구인 재성조차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중이다. 집 한 곳에 가득 쌓아둔 야구용품들은 도무지 팔려나갈 기미가 없지만 그를 어떻게든 처분하려는 계획조차 충실히 세우지 않는 모습이 지켜보는 이를 답답하게 한다. 저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전화도 무시하고, 싫은 소리는 전혀 듣지 않으려는 그 태도에서 희망없음이 고스란히 읽힌다.
▲리틀 드리머즈스틸컷
필름다빈
스포츠토토에 건 삶의 희망
건우가 그나마 열심히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스포츠토토다. 도박으로 적지 않은 돈을 날리기도 했던 그지만, 합법의 한도 내에서 스포츠토토를 하는 건 괜찮다는 것일까.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 맞춰 돈을 걸고 제가 건 팀을 응원하는 건우의 모습과 친구에게 월세도 제때 주지 못하는 백수의 신세가 기묘하게 겹친다.
영화는 건우의 반대편에 사춘기 소녀 미나(김세원 분)를 둔다. 부모 없이 이모 밑에서 자라는 미나는 그야말로 질풍노도, 모든 것에 분개하는 통제 불능의 어린애다. 이모가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 말 한 마디 붙이기가 어렵게 굴더니 아예 집을 나가 이모 속을 새까맣게 태운다. 이모가 질 나쁜 아이들이라 여기는 친구를 사귀다 한 소리를 들은 게 명분인 듯한데,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실상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무튼 <리틀 드리머즈>는 서로 다른 세대, 제 삶에 도통 만족할 수 없는 책임은 있으나 책임감은 없는 젊은이들을 비춘다. 그리고 이들에게 현실의 결핍을 메울 수 있는 이상한 세계를 엮어낸다. 바로 '꿈'이다. 이 독특한 꿈과 현실을 잇는 아이는 마치 요정처럼 존재하는 요섭(이하랑 분)으로, 마치 간택을 받듯이 그를 만난 두 사람이 제게 필요한 꿈을 꾸게 된다. 어떠한 수고나 실력도 필요치 않은 우연적 간택, 그로부터 두 사람에게 삶의 전환점이 마련된다. 이와 같이 쉬운 해법 뒤에 '한 번 더'를 외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리틀 드리머즈스틸컷
필름다빈
꿈과 현실이 마주 닿는 방식
<리틀 드리머즈>는 꿈이라는 환상적 소재가 현실의 결핍을 일정 부분 메워주며 드러나는 광경을 담는다. 돈 5000만 원이 생긴다면 건우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결핍된 건지도 알기 어려운, 정상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미나의 문제 또한 해소될 수 있는 걸까. 두 사람이 맹목적으로 좇는 꿈이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삶을 구해낼 수 있는지 영화는 과연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 걸까. 이 영화가 관객에게 닿아 그들을 설득해 내는 것, 또 이들의 이야기를 이 시대 청춘의 일면이라 여기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 고심으로부터 비롯될 텐데, 나는 이를 얼마 확신할 수 없다.
번듯한 직장을 갖기가 어려운 시대다. 사람구실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만 가고, 사람, 특히 경험 없는 청년들의 경쟁력은 어느 때보다 떨어져 있다. 사회의 부가 특정 세대와 계층에게 독점돼 있다는 비판에도 설득력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부조리를 주장하려면 오늘의 청년이 당면한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열망 또한 필요하다. <리틀 드리머즈>가 그와 같은 현실적 고민을 담고 있는가. 제가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듯이 대충 눙치고 넘어가는 이 영화의 묘사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며 사회적 해법에 이르지 못한다. 영화 속 이야기를 영화 바깥, 곧 사회와 이어내려는 의지가 영화 가운데 발견되지 않는다.
<리틀 드리머즈>는 막연한 꿈과 환상, 도박이라는 설정을 통해 극 중 인물들의 문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구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가장 쉬운 선택지일 뿐, 가장 적합한 답이 되지 못한다. 바로 그 이유로써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곧 한국사회의 청춘, 또 사회에 대한 고발과 문제 제기로 확장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화 속 인물들의 캐릭터가 사회와 멀어져 얻는 효과가 있는가. 조커만큼 파괴적이지도, 배트맨만큼 사연이 있지도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 일확천금과 꿈의 환상보다 훨씬 더 필요한 것이 실제 세상 가운데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영화가 진정으로 닿아야 했던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리틀 드리머즈포스터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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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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