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한 연못에도 꽃 핀다는데... 쉽지 않은 서울살이 담은 청춘 보고서

[김성호의 씨네만세 1408] <수련>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련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연못에 뜬 넓적한 이파리와 밤이면 접혔다가 아침이면 활짝 펼쳐지는 화사한 꽃봉오리를 가진, 잠드는 연꽃이라 하여 수련이라 불리는 수생식물을 말이다. 고여 있는 탁한 물에서도 다른 곳에서 마주하기 힘든 화사한 색채를 뿜는 수련을 옛사람들은 더러운 곳에서 이뤄지는 아름다움에 빗대어 말하고는 하였다. 그 수련을 이 영화 <수련>이 제목으로 따온 데는 이 같은 흔한 이야기가 결정적 이유였을 테다.

효원(이홍연 분)은 배우를 꿈꾸는 젊은 여성이다. 지방 출신인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한다. 가진 것 없는 그녀에게 단 하나 무엇이랄 게 있다면 바로 은서(최은서 분)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가출한 은서를 데리고서 효원은 함께 서울로 올라온 참이다. 일단 가진 돈을 털어 집부터 구해보지만 서울 집값이란 게 어린 여자애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싼 게 사실이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효원의 꿈은 오로지 이곳, 서울에만 있다.

오디션을 통해 그럴듯한 배역을 따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효원이 그저 돈만 없는 것이 아니다. 요새는 재능조차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시대가 아닌가. 이렇다 할 연기수업도 받아본 적 없는 효원에게 오디션을 통과하는 건 까마득한 장벽이 된다. 실력은 아니래도 재능과 열망만큼은 밀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서울로 온 효원이다. 남들보다 간절하고, 그래서 놓칠 수가 없는 기회다. 그 간절함이 효원에게 아주 가느다란 끈 하나를 보여주는 건 다행일까, 다행의 얼굴을 한 불행인 걸까.

수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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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는 조금은 어려워서

서울살이가 오로지 효원에게만 버거운 것은 아니다. 효원 곁에 있는 은서는 효원에겐 어떤 존재일까. 영화가 그를 자세히 보여주진 않지만 대신 은서에게 효원이 어떤 존재인지는 명확히 드러난다. 말하자면 절대적이다. 유기견이 저를 입양한 주인에게 목을 매듯이 은서에게 효원은 그저 알고 지내는 언니가 아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저를 떠나선 안 되고 제가 떨어져서도 안 되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가족이다.

주는 만큼 받지 못한다는 것, 동시에 받는 만큼 줄 수 없다는 건 자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영화 <수련> 속 이와 같은 비대칭도 그렇다. 은서는 저를 두고 밖으로 맴도는 효원에게 집착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저 자신이 아니라 일, 그리고 꿈인 효원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하여 저와 효원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느껴지는 모든 것에 적의를 품고 그를 표출한다.

영화는 집착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은서는 효원에게 집착하고, 효원은 꿈에 집착한다. 효원이 들어간 극단에서 만난 선배 배우 수연(이승연 분)에게도, 그리고 효원에게 어떤 위기감을 느끼는 또 다른 배우 나경(서나경 분)에게도 저마다 집착하는 것들이 있다. 그 집착이 좌절될 듯 보일 때, 제가 목을 맨 목적이 좀처럼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 이들의 보이는 반응은 돌발적으로 돌출한다. 보는 이를 경직하게 할 만큼 당혹스러운 상황이 이어짐에도 이들 자신에겐 자연스럽고 어찌할 수 없는 반응이다.

수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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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데서 아름다운 꽃? 가능할까

<수련> 속 인물들은 저마다 좇는 목표와 매혹되는 대상이 있다. 불행히도 서로가 좇는 그 대상이 저마다 가장 간절한 이를 바라봐주지 않는 탓에, 마음은 엇갈리고 관계는 불안정해진다. 극단 속 주요한 배역은 정해져 있고, 그를 펼쳐낼 수 있는 최선의 방식에는 좀처럼 가 닿기 어렵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자 하고, 닿지 못할 것에 닿고자 하는 열망과 욕구가 불안과 결핍을 일으킨다. 꽃은 피워지기 어렵고 몸담은 물은 더럽기만 하다.

극중극이랄까. 영화 속 극단이 무대에 올리려 준비하는 극은 저 유명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다. 어찌 보면 영화 <수련>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는 듯한 엇갈리는 열망과 관계를 담은 극이 극중극이 낼 수 있는 묘한 효과를 영화 가운데 일으키려 한다. 연극과 마찬가지로 영화가 다루는 감정 또한 격렬하고 선명하다. 무대 위 인물처럼 수연과 효원, 은서가 마주하고 표출하는 상황과 감정들이 극의 현대적인 변용을 의도한 듯 분명하게 관객 앞으로 닥쳐온다.

기실 영화 속 인물들이 마주한 문제와 감정이 그리 희소하고 특수한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흔하고 보통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대 꿈을 꾸는 이들 가운데 이와 같은 저항을 마주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때로는 가난이, 배움의 부족이, 인맥이 없고 기회가 없는 상황이, 무엇보다도 내 역량부족까지 하나하나 장벽이 된다. 감당해야 할 현실은 비루함을 넘어 버겁기만 한데, 영화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버리고 도망쳐 외면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버리고 싶다 해서 버려질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 <수련> 속에 드러나는 문제들처럼.

수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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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 과연 마땅한가

요 근래 나오는 한국영화, 특히 청춘을 다루는 청년들의 작품 상당수가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그린다. 좀처럼 희망을 구할 수 없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비루한 현실 속에서 꿈을 좇는 일은 사치이거나 가망이 보이지 않는 무책임한 무엇인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그 속에서 더는 관계는 지지나 연대가 아니고 깨어져 나가고 부수어지는 불편한 짐 덩어리처럼 보이기 일쑤다. 이미 한국 문학이 앞질러 간 그 자리에서 맴도는 영화의 고뇌가 그대로 한국사회 청춘의 단면이라면 이는 얼마나 암담한 일인지. 그 이상을 구하는 작품을 만나고픈 갈증을 지우기 어려운 건 나 또한 현실 가운데 답을 찾고픈 시대의 청춘이기 때문이겠다.

더러운 물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워내는 수련이란 제목과 달리 영화 <수련>이 어떤 아름다움에 이르는지 쉽게 말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식물 수련은 해내는 것을 그를 바라보는 인간과 사회는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그려내고 싶었던, 닿고자 했던 경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곳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그 너머의 풍광은 또한 무엇일까. 관객은 이 영화로부터 못에 핀 꽃과 같은 무엇을, 그 은은한 향취와 같은 매혹을 발견할 수 있을까. 차마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을 통해 확인한 좋은점도 있다. 영화사 측이 열심히 광고하는 것처럼 <수련>은 해외 유수 영화제의 문턱을 넘어 다른 세상의 관객 앞에 이 세계 청춘의 단면을 알렸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연기를 열렬하게 해낸 덕으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연기상을 안긴 영화제 또한 있었다. 이홍연, 최은서, 이승연, 박인철 등 출연한 배우 여럿이 제게 맡겨진 역할을 제법 충실하게 소화했다 여긴다. 돌아보면 이 또한 결코 당연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수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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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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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