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파가니니> 공연 사진
HJ컬쳐
외로운 음악가의 저항
어느 시대에나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 다만 어떤 집단이나 장치, 신념 체계는 근거 없는 소문을 진실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아니 때로는 근거 없는 소문의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대체로 그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소문을 퍼뜨리는 주체가 만약 권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래서 목소리의 영향력이 크고 사람들이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다면, 소문의 위력은 더 무시무시해진다. <파가니니>에서 소문을 양산하는 주체는 크게 두 축이다. 하나는 신부 '루치오 아모스'로 대표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파가니니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두 축은 각기 다른 형태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교회가 제시하는 담론들은 그 자체로 진리를 담보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교회는 그 담론들을 기반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권위도 지녔다. 만약 교회의 주장에 반기를 들 경우에는 악으로 규정되거나, 심할 경우 악마 또는 마녀로 몰리는 것도 각오해야 했다. 그런 교회가 파가니니를 악마와 결탁했다고 의심했으니, 파가니니에게는 그럴 듯한 항변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축인 사람들, 곧 대중은 파가니니가 악마와 결탁했다는 소문을 즐겼다. 여기에 더해 교회의 주장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믿었으니, 파가니니는 더 궁지에 몰렸다. 그렇게 뮤지컬에서는 외부 세계에 맞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음악가의 처절한 싸움이 그려진다.
이런 서사는 실존 음악가를 다룬 뮤지컬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막을 내린 <베토벤>만 봐도, 극 중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하는 개인적 위기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음악 세계를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서사만으로 호평을 받기 어렵고, 다른 무언가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파가니니>가 선택한 방법은 바이올린 연주 퍼포먼스다. 특히 2막 후반부에 7분 동안 펼쳐지는 '악마의 연주3'에서는 파가니니의 몸짓과 조명이 더해지며 바이올린 연주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다. 무대를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며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조명과 파가니니의 빠르고 거친 몸짓은 마치 그의 바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저 이 음악을 계속 하게 해 달라는, 그리고 원하는 곳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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