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쿨링 브레이크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아래 선수협)가 폭염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K리그 운영의 '추춘제' 전환을 주장하고 나섰다.
'추춘제'는 시즌을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끝내는 운영방식이다. K리그는 1983년 출범 이래 줄곧 봄에 시작해 늦가을까지 시즌을 이어가는 '춘추제'를 시행 중이다. 그동안 기후 변화 및 세계적 추세 등을 고려해 K리그의 추춘제 전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고 관련 논의도 이어지는 중이다.
선수협이 지난 1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치열한 신체 접촉과 엄청난 활동량이 요구되는 축구의 특성상, 현행 춘추제의 여름철 경기는 선수들을 급성 열사병과 근육 파열 등 치명적인 부상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극심해지는 기후 위기와 살인적인 여름철 폭염으로부터 선수들의 생명권을 온전히 보호하고, K리그의 아시아 내 주도권 및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행 춘추제에서 추춘제로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프로스포츠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리그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같은 야외스포츠인 프로야구 KBO리그가 8월초 리그 일정을 한주간 전면 중단하는 폭염 브레이크를 단행하고 관련 대책을 재정비한 후 11일부터 리그 일정을 다시 재개한바 있다.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한여름 폭염에 따른 조치로 킥오프 시간을 오후 7시30분에서 오후 8시로 30분 늦췄다.또한 선수 보호를 위해 쿨링 브레이크와 여러 차례 잔디 살수를 실시하는 등의 대비책을 수립했다.
하지만 선수협은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K리그 현장의 대응은 여전히 온도 32도 이상일 때만 주어지는 3분 남짓의 쿨링 브레이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국 기후 위기를 극복할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안전 대책은 혹서기를 비켜 가는 추춘제 변경 뿐이라는 것이 선수협의 주장이다.
또한 추춘제 전환은 날씨와 선수 보호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추춘제는 세계축구시장의 중심인 유럽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정착된 글로벌 스탠더드이기도 하다. 추춘제를 하게 되면 선수 이적 시장이나 국제축구 일정 동기화 등에 있어서도 한결 수월해진다.
아시아에서도 이미 아시아축구연맹(AFC)이 2023-2024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추춘제로 전면 개편한 바 있다.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이웃나라인 일본 J리그 역시 2026-2027시즌부터 추춘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기후 변화 및 세계적 추세 등을 고려해 K리그의 추춘제 전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앞으로도 한국만 계속 춘추제를 유지한다면 국제축구 환경에서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최근 한국축구는 국제대회 일정과 맞지않는 춘추제 때문에 과거 강세를 보였던 ACLE 등 국제대회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선수 이적시장에서는 핵심 선수가 해외 러브콜을 받았을 때 시즌중에 뚜렷한 전력보강 대책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내보내야했던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경기력 측면에서도 추춘제가 춘추제보다 더 유리할 수 있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혹서기를 관통하는 추춘제에서는 훈련만으로도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높아진다. 축구 전술과 전략도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더위가 강할 때는 뒤에서 공을 많이 돌리면서 경기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경기 템포가 지루해진는 문제점도 발생한다. 체제 전환이 축구에 대한 접근 방식과 경기력을 올리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여전히 추춘제 전환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벽은, '겨울축구'를 감당할수 있을만한 국내 축구 시설 인프라와 제도적 대안이 아직 부족하다는 의구심이다. 한국의 한겨울 시기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는 혹한과 폭설 등으로 인하여 경기운영과 관중 유치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문제가 K리그의 고질적인 골칫덩이인 잔디관리다. 봄부터 가을까지 운영되는 춘추제에서도 K리그 구장들의 잔디 문제는 늘 도마에 올랐다. K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개막(2월 15일)이 이루어졌던 2025시즌의 경우, 시즌 초반 강추위로 땅이 얼어붙으면서 '얼음잔디'가 되어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급물살을 타는듯 하던 추춘제 전환 논의가 유보된데도 잔디 딜레마가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잔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온전한 추춘제 전환의 동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추춘제 운영을 위해서는 겨울 휴식기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J리그는 혹한기인 12월 중순부터 약 두 달간 겨울 휴식기를 갖도 2월 말에 후반기를 재개하는 일정을 마련했다. 주중 경기 증가로 일정 과밀에 따른 선수 피로와 부상 문제를 해소하고, 강추위에 경기를 관람해야하는 관중들의 편의와 안전까지 고려한 결정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비용'이다. 추춘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춘추제에 맞춰 운영되어오던 리그 인프라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하는데, 어느 하나 큰 돈이 안들어가는 곳이 없다. 겨울에도 경기운영이 가능하려면 경기장 난방 시설 확충,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 열선과 라이트 설치 등 각종 인프라 개선을 위한 막대한 후속 투자가 필수적이다. 일부 대기업 구단을 제외하고 재정이 빠듯한 시민구단이 많은 K리그 사정상, 단기간에 추춘제 전환에 필요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추춘제가 한국축구계에서도 점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언제까지 미룰수는 없겠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추춘제 강행 주장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후와 시설 문제만이 아니라 리그 운영 전반을 함께 고려하여 축구계가 지혜를 모아 함께 방법을 찾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