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집을 전초기지로...미군 130명 숨진 최악의 작전

[김성호의 씨네만세 1410] <워페어>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영화는 그대로 하나의 장르다. 폭력을 껴안은 활극을 정체성으로 삼는 액션영화와 분리돼 독자적으로 구분할 만큼 번성한 장르를 이뤘다. 이는 그대로 전쟁영화에 대한 수요가 많고, 영화가 많이 제작되기 때문만도 아니다. 전쟁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분류할 만큼 서사와 연출의 특이점이 산재되어 있는 까닭이다.

전쟁을 영화란 매체 안에 담아내는 효과적이거나 효율적이거나 혹은 충실하다거나 윤리적인 작법이 여럿 존재한다. 그에 대한 고민의 지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또한 언제나 유효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코미디 영화가 관객에게 더 신선한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것처럼 말이다.

워페어 스틸컷
워페어스틸컷더쿱디스트리뷰션

전투의 영화적 재현

<워페어>는 개봉을 앞둔 알렉스 가랜드의 전쟁영화다. 알렉스 가랜드는 작가 출신으로 영화 연출에 진입한 이력을 가진 영국 출신 감독이다. 자신의 소설 <비치>를 대니 보일이 영화화하며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주로 대니 보일 영화의 각본작업을 맡아오다 2015년 <엑스 마키나>로 연출에 입문했고, SF와 공포 등 다양한 장르영화를 섭렵한 뒤 2024년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통해 전쟁을 본격 다루기 시작했다. <워페어>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 연달아 알렉스 가랜드가 연출한 전쟁영화로, 실제 이라크 전쟁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네이비씰 출신으로 영화가 다루고 있는 라마디 작전에도 직접 참여한 레이 멘도자가 알렉스 가랜드와 함께 연출과 각본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알렉스 가랜드는 장르영화의 장르성 가운데서 새로움을 구하는 연출자다. 장르의 주요한 문법을 파괴하고 해체하길 즐기는 작가주의와 선을 긋고, 그 전형을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작가주의를 놓고 장르적 문법을 답습하는 빤한 감독은 아니다. 글 가운데 알렉스 가랜드의 이름을 반복해 적는 게 의미 있는, 다시 말해 작가로서 기억하고 거론할 만한 흔치 않은 연출자라는 뜻이겠다. 그건 알렉스 가랜드의 영화는 그만의 특징이며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말이다.

<워페어>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사실의 영화적 재현에 있다. 실제 작전에 참여한 이를 영화 제작에 적극 참여시킬 만큼 영화를 현실과 맞닿게 구현하는 데 힘을 주었다.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가 <라이언 일병 죽이기>에서, 다시 리들리 스콧이 <블랙 호크 다운>을 통해, 그로부터 더 나아가 전쟁 콘텐츠의 걸작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구현하려 한 전쟁의 영화적 연출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실제 전쟁, 또 이뤄진 작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드는 것이다. 구체적인 작전 상황을 그대로 뒤따르고, 있었던 전술적 움직임과 교전상황을 재현하는 게 이 영화의 주요한 요소다.

워페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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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사망자만 130명, 폐허가 된 도시 라마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들어가는 서쪽 관문인 라마디에선 근현대사 가운데 수많은 전투가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2004년과 2006년에 있었던 전투가 무척 유명한데, 미군 전사자만 도합 130여 명에 달했을 만큼 큰 규모의 시가전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다지만 교전비를 고려하면 이라크 반군 피해는 1000명을 훌쩍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가 다루는 건 2006년 있었던 2차 라마디 전투 중에서도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초기 작전이다.

시작은 미국 네이비씰 알파원 소대의 야간 정찰이다. 야음을 틈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라마디 지역에 잠입한 소대원들은 평범한 두 세대 가족이 사는 2층 주택에 들어가 점거한 뒤 저격병을 배치할 수 있는 OP1, 즉 전초기지를 구축한다. 몇 개 소대가 함께 움직이는 작전으로 화력에서 크게 우세한 데다 항공지원팀의 배후지원까지 갖춰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주둔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데다 넓은 적지 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 부대원들에겐 적잖은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위험이 현실이 된다. 건물 안에 날아든 수류탄 한 발을 시작으로 상대의 공격이 이어지는 것이다.

수류탄에 의해 중상을 입은 소대원이 생기며 부대는 발각된 OP1에서 철수를 시도한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무전에선 다른 소대들 또한 적의 공격을 받고 있어 구원과 연계가 쉽지 않음을 알려온다. 겨우 보내온 장갑차 한 대가 있지만 집을 나가 장갑차에 타려다가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피해가 더욱 커진다. 항공지원조차 상황이 더 안 좋은 소대 쪽에 집중되는 바람에 알파원 소대는 적진 한 가운데 동떨어진 신세가 된다. 민간인과 구분되지 않는 적들의 공세 속에 주둔한 건물 지붕에까지 적이 진입한 것 같다는 공포가 엄습해온다. 부족한 전력에도 적에 저항하는 소대의 상황이 일견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워페어 스틸컷
워페어스틸컷더쿱디스트리뷰션

서사도, 캐릭터도 없다... 참극만이 있을 뿐

<워페어>는 어떤 영화인가. 라마디 전투 중에서도 알파원 소대의 상황을 다룬 이상 전쟁 전반을 다룬 작품처럼 서사에 집중할 수 없다. 과거 <블랙 호크 다운>이 그렸듯 고립된 상황에서 탈출을 위해 피튀기는 전투를 치러내는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도 러닝타임이 흘러간다. 살아남기 위한 알파원 소대의 분투를 관객으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전쟁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한 승부수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기실 전쟁영화치고 전쟁 상황의 긴박감을 장르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작품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로서 알렉스 가랜드의 연출이 의미를 발한다. 영화를 극적으로 몰아가는 것보다는 장르적 장점을 취하면서도 현실감을 강조하고 전쟁의 스트레스를 관객에게 전하는 데 보다 집중하는 미묘한 선택들을 이어가는 게 대표적이다. 전쟁영화에서 보다 전면에 드러내기 쉬운 적의 존재는 현대전에 가깝게 보다 멀리 배치하는 대신, 사람이 아닌 위협은 가까이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 또한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인물에 대한 묘사도, 서사의 전개도 얼마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위험과 위협이 강조되는 전장은 몰개성의 지옥도일 뿐이다. 재미와 오락 대신 선명한 고통이 부각되는 참혹한 현장이다.

무엇보다 알파원 소대를 주인공으로서 그리지 않는단 점이 중요하다. 이들은 다큐적 카메라가 표적 삼은 주요한 인물일 뿐, 이겨야 하는 극적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들이 명령에 따라 감금한 두 가족은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협 가운데 놓인다. 전 재산인 집은 그야말로 초토화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다. 무고한 어린 아이들에게도 전장 가운데 놓이길 강요하는 이 작전은 과연 무엇을 위함인가.

워페어 포스터
워페어포스터더쿱디스트리뷰션

누가 있어 답할 수가 있을까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러 철수하려는 알파원 소대원을 향해 "WHY?"라고 외치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알렉스 가랜드는 이 영화 가운데 가장 큰 대사로써 담아낸다. 그러니까 대체 이 전쟁, 전투는, 고통은 무얼 위함인지를 묻는다. 그에 대한 답을 누가 있어 말할 수가 있을까.

미국이 UN에 제시한 테러를 위한 대량살상무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근거 또한 없었다. UN은 이 전쟁이 명분 없는 불법침공이란 사실을 확인했는데, 오늘에 이르러 사실상 무시되고 있는 국제법상 전쟁 개시 규정을 정면에서 깨뜨린 21세기 벽두의 주요한 사건으로 이 전쟁을 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즉 알파원 소대에 의해 자행된 작전 또한 그 이유를 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알파원 소대원조차도 제 목숨 건 전투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이유는 없다. 작전의 이유도, 집을 빼앗긴 이유도, 전투와 죽음과 부상의 이유도 말이다. <워페어>는 바로 이 사실을 보여준다. 이유 없는 전쟁의 이유 없는 참상을, 한 편 전쟁영화의 유희적 재미보다도 못한 실제 역사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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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