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춤부터 '테크노 발레'까지, 이색적 파티에 다녀오다

영국 음악가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가 출연한 에스씨알 10주년 기념 이벤트

2016년에 설립된 서울커뮤니티 라디오, 일명 에스씨알(SCR). FM/AM라디오 같은 보편적 개념의 라디오와는 차이를 둔, 일렉트로닉 뮤직 아티스트들을 송출하는 언더그라운드/인디펜던트 채널이다.

에스씨알은 오프라인 본거지를 자택에서 가까운 용산구 이태원에 둔 터라 가끔 궁금한 디제이 출연 시 놀러 갔던 기억. 공간이 넓진 않지만, 독특한 음악과 음식, 개방적인 기운이 어우러져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디제이 룸에서 가열차게 퍼포밍하는 디제이를 소파에 앉아 불과 3미터도 안 떨어진 텔레비전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2년 연속 강림한 전천후 예술가

팝과 아방가르드를 가뿐하게 넘나드는 영국 뮤지션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FKA twigs / 본명: 탈리아 데브렛 바넷). 음반을 발매할 때마다 평단과 힙스터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그와의 첫 만남도 에스씨알을 통해 성사되었다. 2025년 9월 5일 이태원 클럽 그레인하우스에서 열린 "유세시아 서울(EUSEXUA SEOUL)'. 트위그스의 브랜드 레이브 파티 "유세시아(EUSEXUA)"의 서울 버전에서 이 독보적 정체성의 예술가를 처음 마주한 것. 레이브는 늦은 밤까지 전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잔치를 의미한다.

2025년 1월에 발매된 정규 3집의 제목이기도 한 "유세시아(EUSEXUA)"는 황홀감을 일컫는 영단어 "유포리아(Euphoria)"과 '섹스(Sex)'의 합성어로 완전한 자유와 몰입, 초월적 감정을 지향한다. 신식 베뉴 그레인하우스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녹빛 조명, 트위그스의 초현실적 춤사위가 무아경을 선사했다. 이 때 쇼케이스 한 데모 형태의 '러브 크라임즈(Love Crimes)'와 '프레딕티브 걸(Predictable Girl)'은 3집 < 유세시아(EUSEXUA) >의 후속편인 2025년 11월 발매의 4집 < 유세시아 애프터글로우(EUSEXUA AFTERGLOW) >에 수록되었다.

에스씨알의 10주년 기념과 트위그스의 철학 전파를 위해 두 예술 집단이 다시금 의기투합했다. 이벤트의 풀네임은 'SCR 10 Years + FKA twigs Presents: Eusexua, Afterglow, Body High Rave in Seoul'. 2026년 8월 11일 관록 있는 안무가기도 한 트위그스가 춤과 호흡으로 소통한 심신수련/웰니스 워크숍 < 디 일레븐(The Eleven) >에 이어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에스씨알과 유세시아의 이념을 공유하는 한바탕 레이브가 열렸다.

1, 2층 두 개 플로어로 나뉘어 두 개의 디제이 세트가 동시에 펼쳐졌는데, 두 군데를 경유하며 다채로운 소리를 즐겼다. 2층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대문 문화 역사공원이 사뭇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이브가 등장했다. '러버(Lover)'란 곡이 유명한 록밴드 이브와 동명인 이 젊은 가수는 걸 그룹 이달의 소녀로 데뷔했지만 솔로 경력도 완연하다. 재작년 원유니버스페스티벌의 야외무대에 이어 이번엔 실내에서 그의 생동감 넘치는 무대 연출을 목도했다.

"다들 너무 이쁘고 잘생겼어요" 덕담(?)을 건넨 이브는 숙련된 무대 매너와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알앤비 질감의 '해시태그(Hashtag)'에 이어 "난 공간이 필요해요(I Just Need SomeSpace)"란 구절이 반복되는 '바이올라(Viola)'를 불렀다.

쨍하고 날카로운 전자 음향을 위시한 하이퍼 팝. 하이퍼 팝의 퓨처리스틱한 기조에 세기말 감성을 덧입힌 음악색의 프로듀서 더 딥(The Deep). 과거와 미래가 공존했던 그의 세트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줬다.

더 딥의 바통을 독일 출신 메카톡(Mechatok)이 이어받았다. 다프트 펑크의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와 에프엑스의 '포 월스(4 Walls)' 매시업이 인상적이었는데, '포 월스(4 Walls)'는 개인적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몇 안 되는 케이팝 넘버라 반가웠다.

 SCR 10주년 기념 파티에서의 세븐틴 듀오 유닛 V8
SCR 10주년 기념 파티에서의 세븐틴 듀오 유닛 V8염동교
보이그룹의 변신은 무죄

파티 도중 종종 장내가 술렁였다. 압도적 인기의 다국적 13인조 보이그룹 세븐틴의 댄서 겸 서브보컬인 디에잇이 뒤편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 메카톡에 이어 실연자로 연단 위에 오른 디에잇은 세븐틴의 래퍼 버논과 함께 세븐틴의 듀오 유닛 브이에잇(V8)을 구현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바통 터치. 압도적 인기의 13인조 보이그룹 세븐틴의 유닛 브이에잇의 '싱어롱(singalong)'엔 "난 메카톡처럼 음악을 느껴요(I Feel Like Mechatok)"란 구절이 나오기 때문. 메카톡의 디제잉과 브이에잇의 퍼포밍이 결합된 '싱어롱(singalong)'은 본 이벤트의 하이라이트였다.

새벽 1시 무렵 주연 배우가 재등장했다. 봉춤 때와는 다른 착장으로. 트위그스의 현현(顯現)만으로 압도되기 충분했으며 출중한 댄서기도 한 그의 몸짓을 보는 건 황홀했다. 그래도 언젠간 마이크를 잡기 바랐다. 15분가량 디제이 세트에 맞춰 댄스 퍼레이드가 이어졌는데 갑자기 트위그스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불안감 엄습.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가?"

다행히 또 한 번(!) 환복한 트위그스가 드디어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음원에선 래퍼 릴 야티와 함께 했던 '온 유어 마인드(On Your Mind)'와 음원으로 발매되진 않은 '테크노 발레(Techno Ballet)'를 소화했다. 바로 앞 관객이 휴대폰에 영문으로 "제발 테크노 발레를 연주해 주세요"라고 문구를 띄웠는데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셈. 정규적 형태의 공연이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작년에 이어 다시금 춤과 노래의 황홀경이 코 앞에 당도했다.

 SCR 10주년 기념 파티에서의 FKA 트위그스
SCR 10주년 기념 파티에서의 FKA 트위그스염동교
종종 전시를 보러 가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에서 이색적 음악 체험을 했다. 새벽 2시 이간수문을 빠져나와 본 DDP는 유독 미래적이었다.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유선형 디자인이 공상과학 영화의 오브제처럼 보였다.

이브와 브이에잇 등 행사 규모의 확대를 위한 대중적 섭외도 있었지만, 외진 공간에서의 소자본 전자 음악가 발굴과 조명이 에스씨알의 본령이다. 짧지만 서늘하며, 일견 전위적이었던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의 운영진 디제이 보울컷의 마침표 음향이 감동으로 다가온 이유다. 10년 후 성대하게 열릴 그들의 20주년 파티를 일찌감치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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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