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커 맨> 스틸
라이트하우스
작은 섬마을은 기존의 법과 질서를 통째 부정하는 단계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기아와 빈곤에서 기독교의 신은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구원자는 영주가 된 과학자 가문,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고대 이교 신앙이다. 태양신과 대지의 여신처럼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선물을 주는 자연의 신격이다. 섬 주민들의 선조들이 기독교 도래 이전 신봉했을 켈트 드루이드 신앙이 돌아온 것이다. 풍요가 유지되는 한 아무 문제도 없다.
충격적인 설정은 한국 관객에겐 낯설고 기괴하지만, 당시 영국에선 그냥 허황한 공상의 산물이 아니었다. '현대 이교' 혹은 '신이교주의'라 불리며 유럽 전역에서 등장한 새로운 종교 운동을 적절히 활용한 것.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며 기존 종교와 오랜 갈등을 겪었고, 기독교 일각의 배타적 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며 교회에 발걸음을 끊게 만든 상황. 게다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기존 사회에 넌더리가 난 이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들은 기독교 교리가 현대 문명에 부합하지도 않고, 사회변화를 억압하는 권력으로만 전락했다고 믿었다. 차라리 좀 더 순수하게 고대인이 믿었던 자연신앙이 더 합당하다고 본 것. 게다가 서구의 인간 중심, 정복과 파괴의 합리화에 동원된 교회에 대한 환멸도 결합한다. 좀 더 자연 친화적이던 기독교 전래 이전 이교가 더 구미에 맞았던 셈이다. 그렇게 종교와 사회운동이 기묘하게 연결된 신이교주의 사상이 유럽 각지에서 범람했다.
대개 잊힌 북유럽, 켈트 신들을 복원하는 식으로 전개된 이 운동은 전통적인 종교 중심이라기보단 현대 사회에서 벗어난 공동체 형태로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대충 '신 이교(현대 이교)'라 통칭해도 양상은 제각기일 수밖에 없다. 당시 서양을 뒤흔든 히피 운동과 결합하며 생태주의, 여성주의와 호환되는 목가적 공동체로 진보적 색채를 띠기도 했지만, '작은 사회' 특성이 나쁜 방향으로 흐르면 폐쇄된 극우 집단으로 변질, 타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소규모 공동체 특성상, 내부적으로 벌어진 폐단과 범죄적 행위는 오랫동안 은폐되곤 했다. 주류 사회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했던 사회운동이 오히려 닫힌 사회의 극단적 사례로 추락하고 만 셈이다. <위커 맨>은 그런 현실 문제를 반영하면서도 영주와 주민들의 입을 빌려 서구 사상사에 대한 근본 의문을 던지길 주저하지 않는다. 종교의 목적은 무엇인지, 일신교 사상이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절대적 권위가 의미가 있는지 질문은 가볍지 않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충격
▲<위커 맨> 스틸
라이트하우스
복잡한 배경을 품은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범상치 않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공동체지만, 외부자의 시선에선 괴이쩍기 그지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밝은 표정으로 저속한 춤과 노래를 일삼고, 외부 세계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질서가 자리한 곳이다. 번식 행위가 자연의 섭리로 공인되며 다산이 미덕이던 고대의 관습대로 이들은 성적 표현이나 행위가 너무나 당연한 듯 거리낌이 없다. 주민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풍습이 주인공에겐 인륜을 넘어선 행위다.
서구뿐 아니라 고대 신앙에선 자연에 의지하며 풍년이 들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게 당연시되었다. 심지어 고대 문명 중 수준 높은 천문학 지식을 가졌던 마야-아즈텍 계열에선 태양의 운동이 멈추면 세계가 멸망하기에 태양처럼 붉은 심장을 바쳐야 한다는 대규모 인신 공양이 지극히 상식적이자 고귀한 제의로 자리 잡을 정도다.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해 보여도 당시 문명인들에겐 합리와 이성에 입각한, 범죄라고 간주하지 않던 사례다. 우리가 잊었을 뿐이다.
영화가 던지는 공포는 바로 그 틈새에서 출발한다. 서구사회에서 상식이던 거의 모든 것이 이 섬에선 송두리째 부정된다. 이곳은 영국 정부와 교회의 권위가 통하지 않으며 기독교 교리를 부활한 드루이드 신앙이 대체한다. 영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처녀생식' 행위가 기독교에서 예수를 탄생케 한 것과 다를 게 있냐며 항변한다. 어떤 폭력도 섬의 변화 과정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자발적으로 동의했다면 이를 비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위커 맨>은 단순 공포를 초월하는 철학적 성찰로 향한다. 하위 경관은 자신을 포위하고 다가오는 주민들에게 바깥세상의 합리주의와 개방성에 입각한 최후의 반격을 날린다. 주류에서 소외된 그들이 선택한 대안적 공동체와 종교 역시 끊임없이 외부와 교류하며 쇄신해야 한다는 것, 이를 상실한 섬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는 일갈을 영주와 주민들은 못 들은 척한다.
그렇게 세계관의 충돌 속에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위커 맨'의 순간이 도래한다.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참극은 그저 재수 없는 예외가 아니라, 몰락하는 세계와 새로운 야만 사이의 충돌로 잊기 힘든 감흥을 남긴다.
<작품정보>
위커 맨: 파이널 컷
The Wicker Man: Final Cut
1973 영국 포크 호러
2026.08.19. 개봉 95분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로빈 하디
각본 안소니 셰퍼
출연 에드워드 우드워드, 크리스토퍼 리
수입/배급 라이트하우스
▲<위커 맨> 스틸라이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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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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