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물이 무섭지 않았다. 깊은 물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헤엄쳤다. 특히 천장을 바라보며 배영을 할 때는 몸이 두둥실 뜨는 느낌이 묘하면서도 편안했다. 그렇게 물에 나를 맡겼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수영장을 찾은 날, 물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수영장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물안경 너머로 흔들리는 레인 줄도 그대로였는데, 정작 물에 들어가자 호흡을 챙기면서 동시에 팔다리를 움직이는 감각이 어색했다.
옆 레인에서 사람들이 매끄럽게 지나가는 동안 나만 자꾸 리듬을 놓쳤고,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다리가 제멋대로 허우적거렸다. 몸이 예전보다 무겁게 느껴졌고 숨은 자꾸 짧아졌다. 분명 예전엔 무섭지 않던 깊이가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물이 달라진 게 아니었다. 내 몸이 이전만큼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잃은 것이었다.
이 낯선 감각을 이겨내 보고자 큰맘 먹고 다양한 수중스포츠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댈 곳의 유무에 따라 내 몸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실제로 물속에서 페달을 밟는 아쿠아 바이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수영장 바닥에 기구가 단단히 고정돼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안도감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발밑에 물이 있다는 사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프리다이빙이었다. 장비 없이 숨 하나로 깊이 내려가야 한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부터 이미 다리가 떨렸다. 실제로 물속에 들어가 조금씩 깊어지는 수심을 눈으로 확인하자, 발밑이 아득해지는 감각과 함께 숨이 가빠졌다. 같은 물이라도 발이 닿는 곳에 있느냐, 아무것도 붙잡을 게 없는 깊이로 내려가느냐에 따라 두려움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저 깊고 고요한 물속에서는 내 몸을 결코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가 온몸을 짓눌렀다.
샤크 케이지 체험
▲영화 <47미터> 스틸컷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이 낯선 두려움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영화가 있다. 영화 <47미터>(2017)다. 영화는 멕시코로 휴가를 떠난 리사와 케이트가 현지인들의 권유로 샤크 케이지 체험에 나서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샤크 케이지는 말 그대로 철제 케이지에 들어가 상어를 구경하는 체험인데, 케이지를 매달고 있던 줄이 끊어지면서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심해 47미터까지 추락한다.
영화의 공포는 먼저 상어에서 시작된다. 이빨을 드러내고 케이지 주위를 맴도는 형체만으로도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더 큰 공포는 상어가 아니라, 이 깊이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산소통 게이지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남은 산소량은 15퍼센트, 수면까지 올라가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눈앞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상어보다 먼저 시간에 쫓기게 된다. 산소 게이지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고 있으면, 물이 무서운 건지 이 물속에서 내가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서운 건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영화 <47미터> 스틸컷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한된 시간 안에 수면 위로 올라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상어로부터 가장 안전한 장소인 케이지 밖으로 나가야만 살아남을 방법이 생긴다고 말한다. 케이지 안에서는 배 위 사람들에게 무전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산소가 바닥을 드러내자 케이트는 결국 응급 신호를 보내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벗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심해로 나선다. 숨이 끊길 듯한 산소 부족의 긴박감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어의 위협까지 겹치면서,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은 순간으로 꼽힌다.
▲영화 <47미터> 스틸컷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죠스〉 이후로 상어를 소재로 한 장르물은 숱하게 만들어졌지만, 〈47미터〉가 그 계보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케이지에 갇힌 채 바다 밑바닥까지 추락했다는 밀실감이다. 넓은 바다라는 공간을 케이지라는 극단적으로 좁은 공간으로 축소시키고, 위협의 크기보다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서스펜스의 축으로 삼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물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고, 두 주인공이 숨을 몰아쉴 때는 보는 사람마저 호흡을 참게 된다. 그만큼 제한된 공간이 만들어내는 몰입감이 크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어 영화라기보다 몸이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에 관한 영화에 더 가깝다.
영화는 두 사람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끝까지 미룬다. 산소가 줄어들수록 두 사람은 침착함을 잃어가고, 그와 함께 판단력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관객은 이들이 상어에게 붙잡히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속에서 영화를 지켜보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안에도 내가 지금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조차 알 수 없어진다는 두려움이 이 영화가 끝까지 놓지 않는 긴장이다.
그렇게 보면 수영장에서 느꼈던 낯선 두려움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 것 같다. 물이 사나워진 게 아니라 내 몸이 예전만큼 그 물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이 여름, 뉴스에서 매일 갱신되는 최고기온을 보면서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몸이 감당하기 버거워진 것은 물속만이 아니다. 바깥의 공기 자체가 이제는 예전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여름은 계속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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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 잡지와 온라인 매체, 브랜드 콘텐츠 등 다양한 채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다듬는 일을 해왔다. 퇴근 후에는 늘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청자이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남은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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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몰랐는데... 수영장에서 마주한 낯선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