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세> 스틸
엠엔엠인터내셔널㈜
셋 중에도 가장 돋보이는 건 샤오캉이다. 거의 말수가 없지만, 다만 별나고 느릴 뿐, 그는 수동적이지도 배타적이지도 않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며 보는 이를 가슴 졸이게 만드는 도입부부터 꾸준히 그는 타인과 기묘한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경제적 빈곤이나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통속적인 사유로 그가 생을 절망한 게 아니란 점을 관객은 서서히 간파할 수 있다. 빈 아파트에서 뜻밖의 밤을 거치며 그는 생기를 되찾는다.
차이밍량의 '페르소나'로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부터 현재까지 30여 년 넘게 함께 한 배우 이강생의 현실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샤오캉은 기행을 거듭한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자살 시도하는 것에서 시작해, 아룽에게 들킨 후에도 도망치긴커녕 계속 출입하는 배짱, 빈집에 있던 가재도구를 사용해 식사하고 드레스를 착용하는 돌발행동까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기에 관객은 그저 그의 의도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관찰력을 집중해야 보이는 캐릭터다.
두 무단점거자는 난처한 첫 대면 이후 기이한 친분을 쌓아간다. 묘한 공범의식이랄까, 딱히 서로가 적대적인 관계일 필요 없다는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것일까, 동기는 뚜렷하진 않아도 언젠가부터 그들은 이웃처럼 지내게 된다. 지나가다 안부를 물으러 들르고, 담배를 나눠 피우거나 차를 태워주고 짐을 맡기도 한다. 그들만의 퇴근 이후 함께 푸짐한 만찬도 나눈다. 어쩌면 원래 아파트에 살던 이웃사촌보다 더 화기애애하고 돈독한 사이처럼 보일 지경이다.
조금씩 드러나는 샤오캉의 소수자로서의 면모는 그의 깊은 외로움과 반대급부로, 남보다 더 뜨겁고 애틋한 갈망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일절 해설 없이 펼쳐지는 이강생 배우의 일상 그대로 모습은 '연기'라는 개념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한다. 그저 느릿느릿하게 본인의 속도감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자세가 화면 속 시공간으로 블랙홀처럼 관객을 빨아들인다. 아이맥스나 컴퓨터 그래픽 효과 없이도 '영화적 체험'의 마법이 분출하는 체험이 다시 봐도 새롭다.
샤오캉의 진심을 깨닫게 된 관객은 이어지는 애틋함과 아련한 퇴장에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쉴 법하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부동산 중개인 메이는 자신의 직업이 상징하는 대도시의 급속한 변화 한복판에 선다. 근사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와 고층빌딩 거리와 차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공원용지는 '도시-숲'이란 콘셉트와 동떨어진 황량한 풍경을 노출한다. 갖출 건 다 갖췄다지만, 갓 심은 묘목은 앙상하고 공원 곳곳엔 출입 금지 표식이 즐비하다.
1990년대 대만, 한국과 더불어 오랜 독재와 계엄령 치하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정치적, 문화적 개방이 본격화한 대만 풍경을 이보다 잘 압축할 수 있을까? 도시는 번영하지만, 사람 냄새도 공간의 영혼도 느낄 수 없다. 주변부 존재는 여름밤 형광등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도시를 떠돌지만,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메이가 마지막에 선보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자신들이 속한 시대에 바치는 '애가'로 시간을 초월한 흔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작품정보>
애정만세
愛情萬歲
Vive L'Amour
1994 대만 드라마
2026.08.12. (재)개봉 118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차이밍량
출연 이강생, 양귀매, 진소영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1994 5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애정만세> 포스터엠엔엠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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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