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젠슨 황은 아마도 숟가락을 얹었을 뿐일 테다. '치맥'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것이 벌써 2021년. 'CNN 트레블'의 한국발 관련 기사를 통해 한국식 치킨과 맥주 조합을 소개한 시점도 무려 11년 전이다. 그 사이 K-드라마가 자의 반 타의 반 열심히 치맥을 홍보한 셈이 됐다.
닭, 닭, 닭이다. '치느님'과 '치킨공화국'이란 표현도 어느새 낡은 느낌으로 다가올 만큼 한국의 치킨 사랑은 진행형이다. 거기에 보양식을 애호하는 민족의 취향이 더해진다. 매해 삼복 더위마다 소환되는 삼계탕에 대한 애정은 또 어떠한가. 어제는 삼계탕, 오늘은 치킨 회식이 과장이 아닐 터.
통계를 확인해 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닭(육계, 삼계, 토종닭 포함) 도축 마릿수는 10억 1385마리다. 2018년 처음 10억 마리를 돌파한 이래 2020년 10억 7천 마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맞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그 해다. 배달 치킨 수요가 절정에 달했으리란 분석이 가능해진다.
치킨 프랜차이즈 수는 2024년 기준 3만1397개에 달한다. 전년과 비교해 5.3% 늘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하는 '프랜차이즈 통계 결과' 기준으로, 2018년 2만 5천 개를 돌파한 이래 매년 1천개 가까이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비프랜차이즈 점포를 포함하면 4만 개 가까울 거라 추산된다. 또 가맹점 수만 놓고 보면 부동의 1위인 편의점의 뒤를 한식과 커피(등 비알코올 음료), 치킨이 뒤쫓는 형국인데, 매출액 기준으론 치킨이 3위로 올라선다.
해외와 비교해도 다를 바 없다. 국민 1명 당 1년에 닭고기를 26마리 정도 소비한다는 통계가 지난 2024년 화제가 됐다. 절대 소비량은 세계 평균을 상회하고,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우위다. 이쯤 되면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치킨의 민족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영국 코미디언은 어쩌다 치킨 마라톤에 나섰나
▲넷플릭스 <빅 치킨: 패스트푸드의 배신>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한국이 김치와 치킨의 나라라면 영국은 단연 피시 앤 칩스의 나라일 것이다. 그런 영국도 치킨의 매력에 스며드는 중이라고 한다.
왜 영국이냐고. 여기 치킨에 관한 한 말도 안 되는 실험에 나선 한 영국 코미디언이 나타났다. 28일간 삼시 세끼 치킨만 먹겠다고 선언한 이는 영국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 모 길리건. 그는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빅 치킨:패스트푸드의 배신>(이하 <빅 치킨>)를 통해 84번에 걸쳐 패스트푸드 치킨만 먹는 '치킨 마라톤'에 나섰다.
"영국에서는 매일 1200만 파운드 이상을 프라이드 치킨에 씁니다. 프리미어리그 선수 영입 수준이죠. 이건 단순히 제가 치킨을 먹는 다큐가 아닙니다. 치킨에 관한 모든 걸 배우고 싶어요."
살짝 긴장도 한다. 당뇨병 가족력을 가진 그가 본격적인 촬영을 앞두고 건강 검진을 받는다. 일종의 인체 실험을 앞두고 가족과 지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터. 사실 어린 모에게 프라이드 치킨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사 온 KFC 버킷에 딸려 온 아이스크림을 보며 '우리 성공했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고.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이 짐작되는 회고다.
그랬던 치킨이 글로벌 프랜차이즈와 함께 일상으로 들어왔다. 영국의 경우, KFC가 향후 10년 동안 아일랜드를 포함한 매장을 500개 이상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KFC는 1960년대에 영국에 진출했다. 피시 앤 칩스의 나라 영국에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블루 오션인 건 분명해 보인다.
길리건은 28일 동안 삼시 세끼 치킨만 먹는 다큐 촬영에 도전한다. 먹고 또 먹고, 그 모습을 본인 셀카로 찍고 또 찍는다. 아침 식사로 프라이드 치킨을 먹는 장면을 연속해서 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떤 경험을 했고, 또 어떤 심리적·물리적 변화를 겪었을까. 이 인체 실험 기간 치킨의 종주국 미국까지 건너가 취재하고 공부해 체득한 영미권을 아우르는 치킨 산업의 현재는, 이를 담은 다큐의 문제의식은 과연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글로벌 프랜차이즈 치킨 산업의 이면
▲넷플릭스 <빅 치킨: 패스트푸드의 배신>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미국 치킨 업계의 본산지인 휴스턴을 거쳐 남부 뉴올리언즈에서 만난 음식 전문 작가가 알려준 진실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1948년 '내일의 닭'이란 전국 대회부터 유래된 미국식 특성이란 무엇인가. 목표는 하나. 닭을 최대한 크고 빠르게 자라고 살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닭이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예전엔 16~18주가 걸렸다. 패스트푸드용 닭들은 6주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싸진 값에 비에 맛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 음식 작가는 이를 두고 "자연이 만든 맛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맛"이라 정의했고, 길리건은 "아무 맛도 안 나니까 아무 맛이나 낼 수 있는 것"이라 응수했다.
두 달도 안 돼 도축되는 '베이비 치킨'의 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천연 및 인공 향료라 불리는 화학 물질들. 최악의 예시지만, 어린이용 완구나 콘돔 윤활제 등에 쓰이는 '디메틸폴리실록산' 성분이 포함됐다는 다큐의 고발이 실제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카메라 앞에 선 보건학 교수는 미국 연방 규정에 허점을 지적한다. 어떤 화학물질이 안전한지 FDA가 기업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비만을 넘어 식이 장애까지 증가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세상에, 글로벌 산업에 과연 우연이 얼마나 존재할까. 길리건의 치킨 공부는 이어 햄, 소시지, 치킨너겟 등 가공육으로 대표되는 초가공 식품의 유해성과 이윤을 위해 이를 묵인하거나 적극 활용하는 치킨 업계의 이면과 고정 관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도장 깨기로 이어진다.
예컨대 이런 식. ▲치킨을 더 먹게 하기 위해 기업들은 어떤 묘수를 부릴까 ▲ 이들은 왜 뇌과학까지 활용하는가 ▲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왜 흑인 노예 시대에 발명됐나(흑인인 길리건은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 거대하고 글로벌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죽어 나가는 닭들의 배설물들은 누가 처리하고 또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그 엄청난 산업에 결부돼 살아가는 도시 주민들의 삶은 안녕할까.
28일 간 치킨만 먹은 37살 남자의 결말은?
▲넷플릭스 <빅 치킨: 패스트푸드의 배신> 관련 이미지.넷플릭스
길리건은 이처럼 심리학자, 교수, 언론인, 활동가, 과학자들이 차례로 만난다. 당연히 다큐는 일일이 열거하기 벅찬 문제점을 나열해 나간다. 그 와중에도 길리건이 치킨을 먹고 또 먹는 장면은 계속된다. 고역이 따로 없다. 그리하여 길리건은 체중 증가나 배변의 어려움 등 신체적 변화를 넘어 급기야 우울증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초가공 식품만 계속 섭취했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증상이란 전문가의 설명이 뒤따른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코미디언이 우울증을 겪으며 어려움을 소호하는 모습, 이런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책하는 길리건의 모습은 사실 의외일 정도다.
반면 한계도 뚜렷하다. 산업의 무해함을 부드럽게 호소하는 영국 양계 협회 회장과의 인터뷰는 조금은 나이브하다. 공장식 축산 농장에 직접 침입해 유해 환경을 직접 촬영하기로 한 계획은 실패로 끝난다. <빅 치킨>이란 다큐 자체는 정색하지 않는다. 산업의 문제를 아우르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천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2004년 국내에서 개봉한 <슈퍼 사이즈 미>라는 다큐를 기억하시는지. 모건 스퍼록이란 감독을 업계의 스타로 만든 이 다큐는 감독이 직접 '30일 동안 삼시 세끼 맥도날드 메뉴만 먹기'에 도전해 화제를 불러 모았고, 국내에서도 이에 도전한 활동가가 나왔을 정도였다. 미국에서만 제작비에 150배가 넘는 흥행을 거두면서 패스트푸드 기업들이 영양분석표를 제공하는데 이 다큐가 일조했다는 후문이다.
<빅 치킨>가 <슈퍼 사이즈 미>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틀림 없다. 그로부터 무려 22년이 흘렀고, 치킨 산업의 영향력은 훨씬 더 커졌다. 영국 제작사와 길리건이 <빅 치킨> 제작에 나선 이유 중 하나일 터다.
덜 진지하다는 이유로, 또 문제의 나열에 그쳤다는 이유로 작품의 의도를 폄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현대인들을 포위한 초가공 식품에 대한 경고는 지금 더 유효해졌다. 봉준호 감독이 <옥자>에서 경고한 글로벌 식품 기업의 공포를 닮은 것이 바로 어이없이 크기만 한 미국식 '베이비 치킨'일 것이다.
오늘도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그 프랜차이즈 치킨들이 무차별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과연 영국이 아닌 우리라고 얼마나 다를 것인가. 우리는 '빅 치킨'들의 유해함으로부터 또 초가공 식품들의 공격에서 안전한가. <빅 치킨>은 OTT 시청자들에게, 또 OTT 친화적인 '젠지' 세대들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작품이다.
제작진이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는 것 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길리건의 멘트로 다큐를 끝낸 것도 그런 의미일 터다(다행히, 촬영 기간 3kg이 찐 길리건은 현재 건강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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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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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동안 삼시 세끼 치킨만 먹다 알게 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