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펜타포트, 끝없이 '헤쳐 모여'를 반복한 이유

[현장]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픽시즈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픽시즈인천시

최고 기온 33도에 다다른 폭염. 그럼에도 수만 명의 음악 팬이 무리를 지어 춤을 추고, 서로 몸을 부딪혔다가 헤쳤다가 모이는 일이 반복된다. 그늘에서 '김치말이국수'를 먹고 염분과 수분을 보충하면 되지만, 놀다 보면 순식간에 소진하고 만다.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일,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이야기다.

첫째날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인 크루앙빈은 세간의 의구심을 완전히 뒤엎는 공연을 선보였다. 펑크, 덥, 싸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를 경유하는 그들의 음악 세계는 뒤로 갈수록 강력한 몰입력을 자랑했다. '음악 덕후'인 크루앙빈은 이날도 '아리랑'과 자신들의 노래 '소 위 원 포게트(So We Won't Forget)'을 자연스럽게 엮으며 탄성을 자아냈다.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전설, 매시브 어택은 특유의 건조한 트립합 사운드는 물론, 철저히 정치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수많은 한국어 문구가 전광판에 명멸하기를 반복했으며, 매시브 어택은 치밀하게 준비된 영상과 함께 AI 시대의 인간성, 전쟁 등 현대 사회의 수많은 화두를 가로질렀다. 가자 지구를 비롯한 전쟁터의 참상을 건조한 숫자로 표현한 '세이프 프롬 함(Safe From Harm)'은 연출의 정점이었다.

매시브 어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부르면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호명했다. 이 때 띄운 "케이팝은 독재와 부패에 맞선 저항의 시기에 태동했다"라는 문구가 다소 비약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최근 몇 년간 유례가 없을 만큼 수많은 토론과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 것만큼은 분명했다. 한편 '티어드롭(Teardrop)'을 부른 엘리자베스 프레이저, '엔젤(Angel)'을 부른 호라이스 앤디 등, 원곡의 피쳐링 군단 역시 무대에 동행해 공연의 밀도를 더욱 높였다.

셋째날엔 얼터너티브 록의 선구자 픽시즈가 놀라운 에너지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61세 프론트맨 블랙 프랜시스는 거칠고 강력한 스크리밍을, 조이 산티아고는 피크 대신 모자로 기타를 연주하는 등의 기행을 선보였다. '몽키 곤 투 헤븐(Monkey Gone To Heaven)', '히얼 컴즈 유어 맨(Here Comes Your Man)' 등의 명곡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영화 <파이트 클럽>의 엔딩곡으로도 유명한 '웨얼 이즈 마이 마인드(Where Is My Mind)'. 80년대 해외 록밴드가 다소 생소할 Z세대 관객들도 "헤드라이너에는 이유가 있다"며 픽시즈 특유의 굉음과 침묵에 감탄했다.

여럿의 낭만이 실현되는 곳, 펜타포트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공연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공연인천시

펜타포트는 이제 해외 스타만을 위한 곳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국내 밴드에 대한 로망을 품은 이들이 더욱 많다. '밴드 붐의 주역' 실리카겔은 절묘한 선곡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와 오늘을 매개했다. 지난해 대만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와 함께 인상적인 공연을 펼쳤던 밴드 혁오, 최근 네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록스타 이승윤도 당당히 관객들을 지휘했다.

66년만에 활동을 재개한 '홍대의 댄스 그룹'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복귀는 단연 이번 펜타포트를 대표하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세컨 스테이지 앞을 수만 명의 관객으로 가득 채웠다. "매시브 어택은 생각할 거리를 주고, 혁오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면, 우리는 관객을 춤추게 하는 것이 역할"이라는 멤버 JJ 핫산의 말처럼, 이들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의심스러워', '탱탱볼' 등 춤의 본능을 자극하는 곡들이 댄스 플로어를 주도했다. 흥에 겨운 관객들의 태도도 이 공연을 완성했다. 사방에 밴드 티셔츠를 입고, 그들의 콘셉트에 맞춰 터번을 머리에 착용한 이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려 춤을 추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물론 '사라지는 꿈', '캐러밴' 등 서정적인 곡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펜타포트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모이는 음악 박람회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메탈 팝스타 이샤나 사라스바티, 대만의 플레시 쥬서, 일본의 터틀 아일랜드도 자신이 활동하는 음악 신을 부지런히 소개했다. 또한, 80년대 영국 인디 록의 전설인 지져스 앤 메리 체인의 무대에 부산 밴드 세이수미 보컬 최수미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일본의 걸그룹 하나는 아이돌에 대한 음악 팬들의 편견을 깰만큼 좋은 라이브를 들려 주었다. 이외에도 돌아온 한국 인디의 1세대 노이즈가든, 196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형제 밴드 레몬 트위그스, 군입대를 앞두고 록커로서의 자아를 전시한 머드 더 스튜던트, 역동적인 전자 음악 듀오 팻햄스터 앤 캉뉴도 멋진 순간을 만들었다.

21주년 펜타포트, 올해는 달랐다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6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인천시

페스티벌은 공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난해 펜타포트에도 좋은 공연이 많았지만 페스티벌의 성공은 아니었다. 입장 동선의 관리에 실패했고, 관객들은 두 시간 가량 폭염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공연을 제외한 컨텐츠는 없다시피 했다. 20주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했고 불신이 지속되다.

올해는 달랐다. 변화의 의지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졌다. 출입 동선이 이원화되면서 관객의 발걸이 편안해졌고, 성실한 안내 인력들이 곳곳에 배치되었다. 어플은 끊임없이 알람을 보내며 관객들을 도왔다. 공연 외의 콘텐츠도 풍부해졌다. 올해부터 시작된 오픈 라디오 프로그램, 코미디언 김혜선의 에어로빅 프로그램처럼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구현되었다. 어린이와 장애인을 위한 공간도 확충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놀이터로 성장 중인 펜타포트의 오늘을 확인했다.

펜타포트가 끝나가던 마지막 날 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캐러밴'에 맞춰 이름 모를 관객들과 함께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기 전, 잠시나마 동지가 되어 춤을 춘 이들과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각자가 이곳에 기대한 로망이 무엇이든, 이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년에도 펜타포트를 찾지 않을까. 또다시 더위에 고통받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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