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대화'는 관성 이상의 효율성을 얻지 못하기 시작했고, 점차 'Q&A'라고 명시되면서 초기 발의자들이 품었던 '소란하고 탁 트인 열린 공간' 대신 공직자들의 연말 결제 서류처럼 의례화된 절차로 변질된 조짐을 보이고 있다. -67p, 이송희일, '서툰 위장술, 관객과의 대화' 중에서
바야흐로 영화제의 계절이다. 봄의 전주국제영화제와 반짝다큐페스티발, 여름을 알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지나 한여름의 정동진독립영화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등이 영화를 아끼는 이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일반 상영관서 만나보기 어려운 국내외 작가의 작품들로부터 바로 지금의 영화예술의 경향이며 가능성, 또 독립영화가 다루는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이 열린 것이다.
영화제의 매력은 무엇일까. 정식 수입과 배급이 이뤄지기 전, 작품을 한 발 앞서 만나고 전하는 것이 영화제의 매력이라 말하는 이가 있다. 또 누구는 말 그대로 영화인의 축제, 영화를 만들고 즐기며 아끼는 이들이 한 자리서 어우러지는 것이 영화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관객이 영화 창작자를 만나 작품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영화제 가운데 열린단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영화상영과 관련한 양식화된 행사로 자리한 GV,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제를 찾는 이들이 관심 갖는 주요한 행사다.
▲독립영화책 표지
한국독립영화협회
고민없이 답습되는 GV, 더 나은 자리 가능할까
4일 저녁,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실에서 '<독립영화> 다시 읽기' 모임이 열렸다. 7호를 다룬 이번 모임에선 영화평론가와 감독, 영화제 관계자 등이 모여 잡지 가운데 실린 글 가운데 오늘의 현실에 유효한 담론을 나누었다. 이날 발제는 수년 간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를 이끌어온 박일아 프로그래머가 맡아 주었다.
실린 여러 글 가운데 이송희일 감독의 칼럼, '서툰 위장술, 관객과의 대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글은 영화 창작자로서 관객과 마주하게 되는 '관객과의 대화'와 관련한 진솔한 생각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오늘날 양식화된 GV행사와 관련해 유효한 물음을 던지고 있어 2000년 9월 나온 잡지 가운데 여전히 의미 깊은 담론을 캐어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는 20분 내에 벌어지는 이 같은 헤프닝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날카로운 관객의 일침에 자성과 성찰을 독려 받은 연출자의 고뇌? 연출자의 '의도'를 듣고 보다 명확해진 해석 지침을 얻은 채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가벼운 발걸음? 과연 무엇이 '관객과 제작자의 상호소통적 관계를 모색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일까? -68p
이 시대 영화팬을 자임하는 관객이라면 소위 GV, 그러니까 작품 상영 뒤 감독이나 배우 등 창작자가 관객 앞에 자리하여 질문을 받고 응답하는 시간을 겪어본 일이 있을 테다. 평론가와 기자, 연구자 등이 모더레이터 자격으로 행사를 진행하며 영화와 관련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시간이다. 일방적이고 일회적인 상영과 감상에서 끝나지 않고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로 이어지는 시간을 갖게끔 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자리다.
▲독립영화책 내지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가 불러온 '관객과의 대화'
한국 영화계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독립영화계에서부터 시작됐다 보아도 좋겠다. 1990년대 초, 영화제며 상영회 등에서 창작자를 관객 가운데 세워 작품과 감상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갖도록 하였던 것이 그 출발이 된다. 글쓴이는 이에 대하여 '10년 전, 소문 없이 갑자기 나타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다소 낯설어하는 많은 관객들을 위해 독립영화 상영 주최자들은 친절하게 간략한 안내글을 제시하곤 했다. "관객과 제작자의 상호소통적 관계를 모색하는 자리"'라고 적고 있다. 사실이 그러해서,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판에서 상영 뒤 관객과 작가가 마주하는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따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고 여겨졌던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진보적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를 트는 것 말고도 그 영화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일부 독립영화인들의 시도가 자연스레 여러 영화제 및 상영회에 정착되며 이제는 거의 모든 영화 관련 행사에서 이러한 자리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한국형 마당극이나 브레히트 식의 쌍방공간연출의 반영이라고도 말하지만, 또 누구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한국서 그 시작을 돌아보자면 결코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글 가운데서 추론할 수 있다.
독립영화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는 흡사 상업영화의 시사회장처럼 초면의 관객, 낯선 호기심, 첫 출정의 감회를 맞는 연출자로 구성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상업영화의 시사회가 한 번만 있는 반면, 독립영화 시사회는 항상 같은 포맷으로 재연된다는 점일 게다. 이 반복 순환은 극장과 전용관을 확보하지 못한 채 '영화제' 형식을 통해서만 관객과 만날 수밖에 없는 열악한 독립영화의 하부구조에서 생긴 일종의 구명보트인 것이다. -69p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관객과의 대화가 처음 목적한 것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느냐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여러 영화제에서 준비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양식화된 구성과 비슷비슷한 진행자, 또 턱없이 적은 시간 등의 문제로 인해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적잖은 영화팬이 구태여 이 시간을 챙겨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적잖은 관계자들이 이러한 자리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일 테다.
▲관객과의 대화흔히 GV라 불리는 관객과의 대화 사진.김성호
더 나은 자리는 가능할까?
도리어 상업영화에서 관객과의 접점을 마련한 다채로운 시도가 잇따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CGV가 유명세 있는 평론가 이동진을 앞세워 녹화된 해설로써 진행하는 언택트톡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대화를 빼고 비평의 영역을 확장한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국내외 블록버스터가 박경림 등 유명 MC를 섭외해 진행하는 무대인사 등도 관객과의 대화에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부각하고 마케팅과 결합한 시도로써 한국 영화계에 안착했다. 일정 관객수를 넘어설 때마다 이행할 공약발표 등이 행사에 참여한 이들을 넘어 대중 사이에서 상당한 화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동안 독립영화계, 또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를 돌아보는 건 마땅하고 의미 깊은 작업이다. 20여 분의 시간 동안 관객에게 한 두 차례 넘겨지는 마이크는 과연 어떤 질문과 응답을 받기 위함인가. 행사는 관객에게 작품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도모하는가.
한국 독립영화계가 극장을 찾은 관객, 나아가 독립영화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영화팬 전반에게 긍정적 영향과 파급을 미칠 수 있는 더 나은 장을 고심해 왔는가를 이와 같은 글이 지적하고 있음을 돌아볼 밖에 없다. 이 질문은 20년이 지나서까지 여전히 같은 양식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과연 더 나은 방식은 없는 것일까? 글쓴이와 같이 이를 고민하는 영화인이 이 시대에도 분명히 있다고 믿고 싶다.
2000년 9월 발간된 <독립영화> 7호는 이밖에도 김지운과 같은 충무로 유명 감독의 글을 비롯해 <둘 하나 섹스> 등 당대 논란이 된 작품의 감독 이지상과의 인터뷰, 문제작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의 남기웅 감독 등 다양한 영화인의 글이 실려 관심을 모았다. 양적 확장과 질적 향상이 엿보이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상황을 정리한 김선아 연구자의 글도 흥미롭다. 책은 지자체 도서관이 무료 지원하는 디비피아를 통해 온라인으로, 국회도서관과 한국영상자료원 등 일부 기관에서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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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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