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68년 봄 파리, 미국 유학생 '매튜'는 극장 붙박이 영화광이다. 그의 눈에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들이 드나들던 극장,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앙리 랑글루아가 문화부 장관에 의해 해임되자 영화광들은 반대 시위를 조직한다. 현장에서 마주친 셋은 금방 친밀한 사이가 된다. 부모가 여행을 떠나자 남매는 자신들과 함께 지내자 권한다.
20살 또래들은 요새와 같은 중심가 아파트에서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 격화하는 시위와 사상에 대해 자유분방한 대화를 나눈다. 매튜는 점점 그들에게 끌린다. 도발적 매력의 '이사벨'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동생과 떨어지려 하지 않는 태도에 기이함을 느낀다. 시대 조류처럼 기성세대 모든 통념을 부정하며 과격하게 치닫던 친구들 사이엔 묘한 공기가 감돈다.
문제적 거장의 21세기 건재함을 알린 복귀작
▲<몽상가들> 스틸
찬란
1970~80년대, <거미의 계략> <순응자>로 주목받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역량을 인정받아 <혁명전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리고 <마지막 황제>까지 국제적 대작으로 위상을 쌓는다. 하지만 이후 범작을 연달아 선보인다. 키아누 리브스가 부처를 연기한 <리틀 부다>는 한물갔다는 평판에 쐐기를 박는다. 명감독은 잊힌 이름이 된다.
감독의 복귀작이자 본인의 21세기 작업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위상을 획득한 게 2003년 <몽상가들>이다. 국내에선 <마지막 황제>가 워낙 유명하지만, 감독의 장기는 격동의 사회변화 속에 놓인 개인의 행보를 성적 긴장이나 파격적 일탈을 통해 표현하기다. 그런 개성이 오랜만에 전성기를 떠올리듯 만개한다.
많은 감독은 본인이 체험한 것들을 카메라를 시선 삼아 투영한다. 1941년생 이탈리아 출신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세계관을 지적 회의를 실어 화면 가득 구축한다. 그가 겪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파괴된 유럽과 전후 부흥, 사회혁명이 수놓은 1960년대와 이후 보수 복고의 물결이 일렁인 환멸을 다룰 때 그의 작업은 빛을 발한다. 반면에 '거장' 소리 들으며 명성의 절정에 오른 후부턴 독단적 태도와 안일한 답습에 기울어졌다.
<몽상가들>은 감독의 20대 시절을 뒤흔든 '68운동' 격랑과 유럽 전후 세대가 경험한 대중문화 전성기를 버무려낸다. 정밀한 조합과 다층적으로 해석 가능한 장치 덕분에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68세대가 신념으로 삼던 당대의 공기가 한 세대를 훌쩍 넘겨 한가득 부활한다. 60대에 들어선 작가가 자신의 세대가 체험한 영욕을 회고하는 비망록인 동시에 주인공들을 통해 단지 역사 기록의 재연을 넘는 복잡한 쟁점을 복원하려 한다.
3개의 얼굴 통해 1968년 소환
▲<몽상가들> 스틸
찬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시대의 관찰자 역할은 '이방인'인 '매튜' 몫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불어를 배우러 온 20살 대학생인 그는 학업에 열중하기보다 영화에 탐닉한다. 그의 유학은 당시 징병제를 유지하던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 징집을 피하려는 뜻도 있어 보인다. 가족에게 독립한 후 한창 '누벨바그' 영화가 전성기를 맞던 프랑스 영화문화의 총아, 시네마테크에 열광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극장에 벌어진 사태는 68운동의 도화선으로 작동한다.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지만, 아직 어린 이방인은 온전하게 섞이지 못한 상태다. 기숙사인 싸구려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가 초반부터 보이는 기행이 하나 있는데 소변을 변기가 아니라 세면대에서 보는 것. 언뜻 황당하게 보이는 민폐 행동이지만, 여기엔 대양을 경계로 아득히 동떨어진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상징하는 장치다.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에 익숙해 독립 화장실을 쓰던 미국 청년은 공동화장실 사용을 견딜 수 없던 것.
극장에서 영화 보기에 환호할 뿐, 어학연수의 기본인 현지인과의 대화상대를 얻지 못하던 매튜는 쌍둥이 남매와 친분을 쌓으며 첫 프랑스인 친구를 사귄다. 인사를 나눈 지 고작 이틀 후에 자신들의 집에 초대한 그들은 저명한 문학가 집안의 유복한 중산층 자녀라 아직 어색한 불어 대신 영어로 그와 자유자재 대화가 가능하다. 명민한 대화로 부모님의 환심도 얻은 그는 자연스럽게 집에 얹혀살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매료된 남매의 자유분방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남매와 '미국인 친구'는 죽이 척척 맞는다. 기성세대를 불신하며 반항기 숨기지 않는 건 물론, 고전 할리우드 영화와 누벨바그 영화를 비롯한 영화문화 전반에 해박한 상식을 뽐낸다. 마치 세계를 영화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그들의 집착은 끝이 없다. 일상 대화도 끝말잇기를 하듯 영화 퀴즈를 주고받는다. 내기 장난조차 그들이 봤던 영화 장면 따라 하며 맞춰보라는 식이다. 테오는 프랑스 대학생에게 당시 영향을 끼쳤던 '마오주의'에도 친화적이다.
이사벨과 테오는 격의 없이 친절하게 대하지만, 매튜는 둘에게서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감지한다. 보통 남매와는 분명 다른 둘의 관계에 점점 의문을 가지는 동시에 이사벨의 매력에 끌리며 단순한 우정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격동의 시절을 응시하는 시야와 입장도 점점 뚜렷하게 갈라진다. 영화나 음악에 관한 취향과 기호 수준이 아니다. 남매의 관계에 대해 점점 개입 강도가 높아지자 농밀한 관계와 더불어 갈등도 격화한다.
영화가 일으킨 '나비효과'
▲<몽상가들> 스틸
찬란
20세기 전반은 전쟁과 혁명의 시대였다. 러시아 혁명뿐 아니라 보수혁명, 파시즘 대두, 양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과 중국의 국공내전 등 무수한 격동이 발생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잿더미가 된 유럽, 나치에 패배해 자존심 구긴 프랑스는 전후 복구를 거쳐 상처를 추스르고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예전에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사회혁명이 도래한다. 부모들이 보기엔 등 따습고 배부른 아이들의 투정일 뿐이었지만.
전쟁의 폐허를 딛고 평화와 풍요를 누리던 자식들이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자 어른들은 어쩔 줄 몰랐다. 과격한 정치투쟁과 선을 긋는 제도권 지식인인 아빠와 테오의 격렬한 밥상머리 언쟁은 세대 갈등의 압축판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모순을 외면하는 태도에 젊은 청춘들은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한 그들로선 부모의 경제적 기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모순이다. 드높은 정치의식과 빈약한 사회경제적 토대가 충돌한다.
청년들이 피난처이자 해방구로 삼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외압 사건은 점차 극장 정상화에서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구로 확장된다. 영화광에 고등학생, 대학생이 가세하고 노동자 파업에 연대한다. 프랑스 경계를 넘어 당시 세계의 화두였던 베트남 전쟁과 식민지 독립투쟁 탄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추가된다. 한 번 일어난 불길은 세상을 전부 불사를 기세다. 모든 익숙하던 당위가 허물어진다.
남매의 아빠는 불청객인 매튜를 시험하다 그가 세상의 조화를 추구함을 깨닫고 호감을 보인다. 반항심 가득한 테오와는 다른 합리적 청년이라 여긴 것. 문전박대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일화로 보였던 게 점점 갈등이 깊어가는 남매와 매튜의 간격을 상징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체제에 구속당하지 않으려는 욕구가 기존 질서의 전면 부정과 폭력의 정당화로 치닫자 합의는 요원해진다. 이런 난망함은 곧 지금까지 계속되는 68운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동일하다.
격동의 시대를 현재형으로
▲<몽상가들> 스틸
찬란
물론 <몽상가들>은 정치적 사변 자체를 실록으로 옮기려는 작업에 매몰되지 않는다. 특정 시기의 굵직한 사건과 상황이 분기점 노릇을 톡톡히 해내지만, 단순한 시대물에 그치지 않는다. 회고형의 뉴스 실록은 감독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 미디어 취재론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작가의 몫이자 책무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실행하는 태도다.
세 주인공의 엎치락뒤치락 소극은 당시 성행하던 실존주의-상황주의 운동의 기류를 고스란히 차용한다. 뉴스 1면을 장악하던 표면적인 쟁점이나 정치 구호 이면에 내재해 있던 청년세대의 불만과 불안, 충동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제도교육의 영향력을 능가하게 된 대중문화의 위상은 청년들의 일상 대화와 관심사를 장악하고 있다. 바다 건너 외국 감독이나 밴드가 큰 시차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열광을 이끌어내고 심층 분석의 대상이 된다.
잡학상식 겨루기로만 보이던 세 사람의 언어유희가 쌓이고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으로 지층을 형성한다. 버스터 키튼 vs. 찰리 채플린, 에릭 클랩톤 vs. 지미 핸드릭스 식의 논쟁은 애호하는 예술가 우열 다툼이 아니라 대상을 렌즈 삼아 세계를 바라보려는 청년들의 노선 투쟁으로 전환된다. 겉으로 외치는 과격한 구호나 주장을 넘어 일상에서의 다양한 실천과 전선 형성을 모색하며 벌어진 온갖 시행착오가 미니어처 형태로 잔뜩 압축된 셈이다.
세밀한 장치와 배경은 감독 자신이 속한 세대가 좌충우돌 저질렀던 오류를 감추긴 커녕 고백하듯 개방한다. 테오는 질식할 것 같은 관료제 시스템의 대안으로 모택동의 어록을 낭독하며 파시즘을 극복할 대안으로 예찬하지만, 매튜는 영화적 시선으로 봐도 모순이라며 논쟁한다. 당시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벌어진 대안체제와 노선을 둘러싼 대립을 실내극으로 구현하는 도전인 셈. 그저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처절한 반성과 회한이 묻어나는 순간이다.
우정과 사랑을 꽃피우려던 그들의 시간은 실제로 68운동이 불길처럼 타오르다 사그라들 듯 한정된 시효에 머문다.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다시 만나 우정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셋 중 누군가는 적군파나 홍위병으로 자신을 불태웠을지도, 다른 누군가는 과거를 뒤로 하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부모세대의 닮은 꼴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세계가 충돌한 바리게이트를 배경으로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아뇨,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를 자신들 세대에 헌정한다. 그때의 순수함은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 소망하며.
<작품정보>
몽상가들
The Dreamers
2003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드라마
2026.08.12. (재)개봉 115분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출연 에바 그린, 루이 가렐, 마이클 피트
수입/배급 찬란
▲<몽상가들> 포스터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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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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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혁명·금기... 1968년 파리, 세 청춘의 묘한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