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배경' 무속인의 등장, 이렇게 신박할수가

[리뷰] 영화 <월남보살> (김근호 감독, 2026)

신박한 영화를 봤다. 흔히 '다문화 자녀'라 칭하는 '이주배경 청소년'이 셀프 신내림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월남보살>이 그 영화다. 신내림이야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지만 '이주배경 청소년'의 신내림이라니, 어떻게 이렇게 독특한 생각을 해냈는지 흥미로웠다.

2025년 12월 기준 총 체류 이주민이 278만이라는데, 이중 미등록 이주민과 <월남보살>의 주인공 연주처럼 '이주배경 청소년'을 더하면 두 배를 훌쩍 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 인구의 약 10%일 텐데, 이들 중 무속인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어디선가 이주배경 무속인이 활약하고 있는 걸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러닝타임 24분의 단편영화

 영화 <월남보살> 관련 이미지.
영화 <월남보살> 관련 이미지.포스트핀

<월남보살>은 러닝타임 24분의 단편영화다. 관광지로 유명한 베트남이란 국명에 익숙해 월남이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들릴 텐데, 내겐 꼭 그렇지는 않다. 5060 세대에게 월남은 관광이나 여행으로 상기되는 나라이기보다는 전쟁이 먼저 떠오른다. 60-70년대 한국군이 30만 넘게 파병되어 싸웠던 곳 월남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

월남전에 파병된 병사가 벌어들인 수입은 당시 형편이 어렵던 나라 살림을 단단히 뒷받침해 주었지만, 파병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심대한 인권침해라는 오명을 남겼다. 파병된 병사는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폭력의 피해는 오래 남아 피해자들을 아프게 했다.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이 저지른 전시(성)폭력의 피해를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생생히 복원해 담았는데, 피해의 기억이 곧 가해의 증거임을 보여 준다.

한국 정부(국방부)는 아직까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진실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퐁니퐁넛마을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는 2020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학살 피해 배상을 청구하는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원고 승소 판결이 있었지만 국방부가 불복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렇듯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그 후예들은 먼 나라 한국을 노동과 결혼이라는 배경으로 이주해왔다. <월남보살> 주인공 수연(권유경)의 엄마도 아마 이런 행렬 속에 있었을 테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코리안 드림'은 실현되기도 좌절되기도 하면서 한국에 닻을 내렸다. 이들 여성에게서 많은 2세가 태어났다. 이주민이 오는 것은 '사람이 오는 것'이지만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한 한국 사회는 늘어나는 2세들의 출현해 당황해 하며 '다문화 자녀'라는 묘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라나 떡볶이를 좋아하고 K-POP을 열호하고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여느 한국인 태생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에게 말이다.

천상 한국인인 '이주배경 청소년'은 일상에서 '다문화 자녀'를 향한 소외와 배제에 간간이 부딪힐 것이다. 이는 가족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연주가 벼락처럼 내리친 신내림을 받기 위해 베트남으로 가야 한다고 할 때,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내가 어떻게 베트남에 가냐"며 베트남 동행을 회피한다.

연주가 기막혀하며 "누구는 평생 여기서 안 살았어?"라고 대거리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아이들이 '다문화 자녀'라고 불리거나, 평생 살아온 이 땅에서 피부색이 다르거나 이주 배경이라는 이유로 "너희 나라고 돌아가라"는 언어폭력을 당할 때, 길바닥에서 불시에 귀싸대기를 맞는 청천벽력과 같지 않을까.

이주배경 인구가 정말 많이 늘어났다는 확인은 어디에서건 가능하다. 내가 사는 도시 파주에서도 이주민을 자주 목격한다. 마트에서, 음식점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어디서 건 마주친다. 얼마 전 어느 주말이었는데, 아마도 커플로 보이는 이주민 선남선녀가 다정히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저들에게 한국이 쫓겨날까 두려운 곳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축원했다. 저들은 얼마나 절실할까.

영화 속 연주를 보며 딸애 초등시절 만났던 이주배경 아이가 생각났다. 이목구비가 어찌나 수려하던지 자꾸 보게 되던 그 애가 엄마로 보이는 이주배경 여성에게 어찌나 못되게 굴던지 정나미가 떨어졌던 기억이었다. 이주배경 아이라고 사춘기가 비껴가겠는가. 영화 주인공 연주도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툴툴대는 청소년인데 설상가상 신내림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보니 미칠 노릇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신들이 요지경이고 이 영화의 신박함이다.

'젠지' 다운 셀프 내림굿

베트남 엄마와 한국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연주는 두 신의 선택을 받을 마당이다. 한 신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두 신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 신을 받으려면 꽤 비싼 내림굿을 받아야 하고 베트남 신을 받으려면 베트남에 가야 하는데, 연주는 둘 다 번거롭기만 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젠지'다운 셀프 내림굿이었다. 두 명의 신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공물을 준비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효과음을 내 신내림을 받는 장면은 독특하고 코믹하다. 셀프 내림굿은 처음이지만 나름 정성을 들인 신딸의 태도는 근엄하다. 그래서 마침내 연주는 베트남 신과 한국 신의 하이브리드 무당으로 거듭날 것인가.

영화 속에서 연주 역을 맡은 배우 권유경은 실제로 엄마가 베트남 이주 여성이란다. 엄마에게서 베트남어를 배워 영화 속처럼 베트남어를 잘 구사한단다. 다행이다.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동화를 강요하며 모국어를 잊고 어서 한국어를 습득하라는 재촉은 자아의 상당 부분을 반납하라는 폭력적 요구와 다르지 않다. 가족 누구와도 모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일상은 생각만 해도 슬프다. 유경의 엄마는 모국어를 구사하는 딸이 있어 행복하고 자랑스러울 것 같다.

보통 '이주배경 청소년'은 '완득이'처럼 조금 불행할 거라는 통념과 달리, 유경은 영화 주인공처럼 실제 삶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젠지'의 워너비인 유튜버로 무려 35만 구독자를 지니고 있었다. 관심을 끄고 있어서 그렇지 이렇게 나름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이주배경 청소년(청년)'이 주위에 많을 것이다.

이제 정치인도 연예인도 인플루언서도 그리고 마침내 무속인도 '이주배경 청년'이 등장하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
월남보살 무당 이주배경청소년 이주민 신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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