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공개했지만 지켜줘야...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리뷰]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주)엣나인필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가족의 침묵이 만든 비극을 담담히 말한다.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가 20년 동안 가족을 직접 촬영하며 담았던 기록이다. 1983년 의대생이었던 스물넷 누나가 해부학 실습 후 돌아온 저녁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그날로부터 누나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는 누나의 이상 증상에 점점 지쳐갔다. 대학에서 심리 상담을 받으며 정신 상태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상담사가 누나의 상황을 듣고 봐주겠다고 했지만 설득력이 없다며 부모님의 철벽에 무산되었다. 상담사는 이런 식이면 도움이 안 되며 누나는 호전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은 훗날 예고된 진실이 되어 뼈아프게 돌아온다.

아침이 밝아와 잠들어 있던 누나가 깨는 건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결국 감독은 취업을 빌미로 집을 탈출한다. 이후 영화를 정식으로 배워 기록으로 남기자고 결심한다. 언젠가 누나를 병원에 데려갔을 때 기록으로 남겨둘 요량으로 시작했던 기록이 영화화되었다.

누나가 증상을 보인 후 9년 만인 1992년부터는 녹음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꾸준히 누나와 부모님의 시간을 담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했을지, 어떻게 했다면 달라졌을지. 어머니, 아버지, 감독 본인에게 묻고 스스로 답해보는 사유다. 병을 인정하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득한 끝에 2008년에는 아버지의 허락으로 치료가 진행되었다. 누나가 아프기 시작한 지 25년이 흐른 뒤였다.

3개월 정도 입원해 누나에게 맞는 약을 처방받자 조금씩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타인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좋아졌다. 비로소 영화를 완성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주)엣나인필름

세포막 연구자였던 아버지와 의학전문대 약리학 전공자 어머니는 둘 다 의사다. 1954년에 결혼에 1958년에 누나를 낳았다. 아버지의 유학 시절 하이델베르크(독일)에서 배로 서독이나 이집트 여행도 다닐 정도로 사이좋은 가족이었다. 부모님은 대를 이어 딸을 의사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누나 또한 비슷한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고 4년에 걸쳐 의대에 진학했지만 6년 차에 유급을 받고 1989년 의대 약리 학과에서 제적 받는다.

의사 집안을 만들겠다는 부모님의 강력한 의지는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학위를 따라며 매년 누나에게 조건을 걸어 국가고시를 치르게 했다. 공부보다는 점성술이나 타로 등에 관심 보였던 누나는 싫었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굴복한다. 그 사이 연금보험을 해약해 뉴욕에 가거나 한밤에 소리를 지르는 등 돌발 행동이 잦아졌다.

2005년에는 이웃에 폐 끼친다는 이유로 누나의 외출을 금지했다. 현관문은 자물쇠가 채워졌고 부모님은 치료 대신 고립과 침묵을 택했다. 부모님에게 누나는 내세우고 싶지 않은 수치였을 것이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의식해 제대로 진단받거나 치료하지 않고 집 안에서 방치했다.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정설을 무시한 채 집 안에서 병을 키웠다. 어쩌면 의사였기 때문에 직접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완고함에 포기했고, 아버지 딴에는 누나는 정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죽기 전까지 의대 진학의 끈을 버리지 못했고 누나의 장례식 때는 함께 쓴 논문의 공저라며 발표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너무 많이 배운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된 걸까. 부모님은 의사니까 알아서 한다며 잘못된 방법을 택했다. 충분히 좋아질 수 있었던 시기를 놓친 것도 한몫했다. 누나는 사랑이란 이름에 갇혀 서서히 시들어 갔다.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주)엣나인필름

이후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부터는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누나는 마약의 금단현상이라며 병을 연구하는 망상으로 변질되었다. 비루한 현실을 잊고 도피를 택한 어머니만의 비겁한 애도 방법 같았다. 누나와 어머니가 한밤중에 깨어나 이상한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얼어버리게 만들 때면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워진다. 집은 점차 황폐해져만 가고 가시 돋친 감옥이 되어버렸다.

감독은 2011년 어머니의 임종 전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끝내 듣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어쩔 수 없이 가까웠던 이모에게 물었고 돌아오는 답은 뜻밖이었다. 이모는 이해하기 힘든 답변을 내놓는다. 어머니가 누나에게 병력을 알리지 않는 게 나은 방법이라 여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잘못된 병원의 불신과 두려움은 다른 양상으로 독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답은 훗날 아버지에게 듣게 된다. 아버지는 조현병이라 판단했지만, 그때는 아내가 싫어해 치료 거부를 결정했다고 했다. 엄마의 판단을 존중했다는 아버지의 회피성 답변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누나는 폐암에 걸려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시한부를 선고 받고 동생은 최대한 누나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짧지만 안정적인 행복이 영화 속에서는 주마등처럼 스쳐 갈 뿐이다. 카메라 속 누나는 점성술이나 복권을 좋아했다. 행운에 기대 병을 치료해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괜히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가족이란 이름의 덫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자유를 박탈당한 한 인간과 가족이란 이름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양면성을 톺아본다. 카메라의 시선은 집 안에만 머물던 누나와 한 가족을 관찰하는 데만 할애한다. 누군가에게는 괴롭고 충격적이라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유발할 사적인 영상으로 채워졌다.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기 위한 촬영은 아니었다. 조현병의 원인을 찾거나 가족을 고발하는 목적도 아니다. 가족의 어두운 면과 민낯이 공개되기 때문에 동의를 얻어 촬영했다. 남동생인 감독은 가족 행사를 빌미로 내밀한 관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은 내용 탓에 공개까지 두려움이 컸지만. 2022년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도장'에서 일부 영상을 공개한 후 용기를 얻는다.

감독의 감정은 오직 '죄책감'이었을 테고, 관객의 감정은 '답답함'과 '무력감' 이상일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의 편견에 희생된 한 개인이자 가족 전체다. 병마와 맞선 가족의 대응 실패와 두려움, 의학적 한계, 가족에게 할당된 돌봄 부담 등이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다.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앙투아네트 코즈웨이' 가 떠올랐다. <제인 에어>에서 미치광이 여성 '버사'로 치부되면 다락방의 존재, 남편 로체스터가 숨기고 싶은 과거가 오롯한 여성으로 승격된 <제인 에어> 스핀오프다. 비참했던 결혼 생활과 영국으로 이주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감금으로 병이 악화된 한 인간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오버랩되었다.

영화는 개인의 가족사를 공개하는 책임감과 사생활을 이유로 개봉 후 OTT나 VOD, IPTV 등으로 볼 수 없도록 결정했다고 한다. 오직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희소성을 띠게 되었다. 에필로그처럼 짧은 쿠키 영상이 있다. 누나가 떠나는 동생을 배웅하는 모습인데 아직도 가슴 한편이 아리다. 어떻게 하면 좋았을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고 보편적인 가치를 건드렸다. 의자에서 쉽사리 일어나서 나갈 수 없어 먹먹했다.


어떻게해야햇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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