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연인들> 스틸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시골과 소도시, 바닷가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빈번한 개그 장면 덕분에 코믹한 분위기를 띠지만, 은자의 욕망과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는 순간에는 적지 않게 감정의 진폭이 크다. 이미 인생 1막을 살 만큼 살며 체념과 회한에 빠진 채 특별한 목적이나 기댈 안식처 하나 없이 그저 쓸쓸히 여생을 보내던 이에게 다가온 뜻밖의 기회는 냉큼 손을 잡기엔 떨리고 두려운 법이다. 변덕스럽게 느낄 만큼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녀의 변화 역시 그렇게 이해할 면이다.
중·노년 세대에게 청년 세대 못지않은 욕망이 잠재되어 있음을 상기하게 해주는 은자의 굴곡진 욕망은 관객에게 식물처럼만 보이던 해당 세대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준다. 팔복이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 불쑥 하늘에서 떨어지듯 출현한 도인 같은 느낌이라면, 은자는 바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만날 수 있지만, 정작 선입견으로만 판단해 버리기 일쑤인 노인들의 숨은 이면, 감춰진 갈망을 일깨우며 그들이 복잡한 내면을 품은 존재임을 웅변한다.
가난한 좀도둑 커플은 인생 2막을 꿈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연이 탄생한 조건, 빈집 털이가 공권력의 눈길을 끌지 않으며 유지될 수 있었던 조건이 이제는 둘의 앞을 가로막는 제약이 된다. 팔복은 바람처럼 떠다니던 삶 대신에 피앙세와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 하지만 그를 위해선 여태껏 지켜온 원칙으론 감당할 수 없는 부담에 봉착한다. 유목민의 불안정한 자유 대신에 정착민의 삶을 누리려면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위기는 돌이킬 수 없다.
은자는 몇 차례 갈등 끝에 부여잡은 동아줄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냥 훌쩍 떠나 시골집에서 독수공방 서글퍼도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고생해 키운 자식 집에 눈칫밥이라도 먹여달라 얹힐 수도 있다. 선택지라면 없진 않은 셈이다.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실정법상 범죄자의 길을 기꺼이 걷고자 한다. 하지만 팔복은 혼자 몸이라면 훌훌 속세를 초탈해 살 수 있어도, 사랑하는 이를 내몰 순 없다. 그러나 가난한 노인들에게 현실 동아줄은 내려오지 않는다.
<빈집의 연인들>은 통상적인 제작 과정과는 다른 경로로 완성되었다. 지역 영화단체가 주관한 (대학 영화학과 아닌) '영화학교' 과정에서 출발해 지역 내 여러 지원과 협력으로 틀을 갖추고 전라북도 곳곳 익숙한 공간을 무대로 활용해 풍경을 채웠다. 제작진 역시 지역 내 역량을 끌어모아 꾸렸다. 관객은 극장에서 다른 작품과 큰 차이 없이 관람할지라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는 이들에겐 낯설고 새로운 작업방식이다.
세련된 작가주의 시도나 실험적 요소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다소 특색은 있어도 '전형적' 독립영화 서사의 변주로 분류될 법한 <빈집의 연인들>이지만, 다소 투박한 전개나 뚝뚝 끊어지는 화면 전환 등 단점을 상쇄하는 비수도권 창작 고유의 미덕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관객보다 창작자에 더 울림이 깊고 오래갈 작업이다.
<작품정보>
빈집의 연인들
The Burglars
2025 한국 티키타카 금빛 로로무비
2026.08.12. 개봉 93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편집 김태휘
출연 정애화, 기주봉 외
제작 페니로얄 필름, 테이크 어 페블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2025 26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부문 J 비전상
▲<빈집의 연인들> 포스터㈜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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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