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때문에 시작했다 신세경에 놀랐다

[리뷰] 영화 <푸른소금>

OTT 서비스 앱을 켜고 추천 콘텐츠들을 멍하니 스크롤 하다, 영화 부문 상위 3위에 낯익은 제목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 <푸른소금>. 2011년에 개봉했던 영화가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건너 다시금 사람들의 클릭을 받고 있다. 일명 '역주행'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다시 재생한 이유는 순전히 배우 송강호 때문이다. 다른 작품에서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과거작이었던 이 영화에 다다랐다. 어떤 배우의 깊이 있는 열연을 보다 보면 그 인물의 전작들이 궁금해지고, 그의 젊은 시절 연기 궤적을 쫓아가고 싶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마치 드라마 <김부장>을 보다가 액션 영화 <광장>으로 넘어가고, 영화 <회사원>을 보며 "배우 소지섭은 왜 이런 멜로 없는 거친 액션만 찍었을까?" 갸우뚱하다가도, 공효진과의 호흡이 빛나던 <주군의 태양>이나 아련한 감성이 돋보였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찾아보며 '아, 맞아 저런 역할도 했었지.' 하듯이 말이다. '그때 그 배우는 어떤 연기를 했을까?'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팬심이 나를 다시 15년 전의 부산 앞바다와 소금밭으로 끌어당겼다.

신세경의 독특한 결

영화를 다시 보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세빈 역을 맡았던 배우 신세경의 독특한 결이었다. 평단에서는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과 세월이 지나며 새롭게 보이는 의미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라며, 특히 신세경의 파격적인 변신을 이번 역주행의 가장 큰 이유로 꼽곤 한다.

어쩌면 극 중 세빈이라는 인물은 다소 매끄럽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전설적인 조직의 과거를 숨기고 식당을 차려 평범하게 살려는 윤두헌(송강호 분)을 감시하기 위해 붙은 캐릭터라면, 의심을 사지 않도록 조금 더 일반적이고 평범한 모습이어야 타당할 테다. 그러나 세빈은 영화 속에서 지나치게 두드러진다. 튀는 스타일링과 날카로운 눈빛, 은밀하게 숨겨지지 않는 서늘한 아우라는 감시자라기엔 너무나 표가 난다. 말보다 눈빛으로 영화 전반을 이끌어간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두드러짐'은 묘한 감정선으로 변주된다. 과거를 숨기고 싶은 전직 조폭 두헌과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전직 사격 선수 세빈. 부산의 한 요리학원에서 짝꿍으로 만난 두 사람은 칼질을 하고 복국을 끓이며 천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넌 모르지. 네가 끓여준 복국이 얼마나 시원한지? 네가 요리할 때 얼마나 이쁜지 모를 거야."

두헌의 이 덤덤한 고백처럼, 어설프게 정체를 숨기려 애쓰던 세빈의 경계심은 두헌이 가진 특유의 인간미와 따뜻함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조직의 보스가 죽고 두헌이 후계자로 거론되면서 감시가 아닌 '저격'이라는 새로운 의뢰가 내려오지만, 이미 정이 들고 마음을 빼앗긴 세빈은 총구를 겨누면서도 망설인다.

소금밭의 푸른빛, 그리고 눈물로 만드는 염전

세빈이 동료 은정의 죽음에 두헌이 개입되어 있다고 오해하면서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친구라 믿었던 백경민(이종혁 분)의 배신과 조직의 음모 속에서 두헌은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두헌을 향한 진짜 신뢰는 배신과 의심보다 강했다.

"음식도 말을 한다. 이 음식을 내게 해 준 아이가 나를 쏘겠냐?"

세빈을 향한 두헌의 이 믿음은 결국 비극을 희극이자 구원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된다. 두헌을 따르는 조직원 애꾸(천정명 분)의 도움으로 은정이 살아있음을 깨달은 세빈은 두헌을 구하기 위한 기발하고도 슬픈 선택을 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장면인 소금밭 신. 끝없이 펼쳐진 백색의 소금밭 한가운데, 두 사람은 작은 점처럼 서 있다. 그리고 소금밭 위로 얇게 고인 물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온 세상이 푸른 빛으로 물든 그 찰나의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아득하게 들려오고 두헌은 맥없이 소금밭 위로 쓰러진다.

 영화 <푸른소금>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소금밭 명장면. 하늘을 비추어 푸른 빛을 띠는 백색의 염전 한가운데서 두헌(송강호 분)과 세빈(신세경 분)의 비극적이고도 서글픈 운명이 엇갈린다.
영화 <푸른소금>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소금밭 명장면. 하늘을 비추어 푸른 빛을 띠는 백색의 염전 한가운데서 두헌(송강호 분)과 세빈(신세경 분)의 비극적이고도 서글픈 운명이 엇갈린다.넷플릭스 화면

소금으로 만든 총알을 급소에 맞춰 두헌의 위장 죽음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총구를 겨눈 세빈의 눈은 깊은 슬픔과 불안으로 가득 찬다.

"눈물로도 염전을 만들 수 있을까요? "
"글쎄, 평생을 울어도 힘들 것 같은데."

영화 속을 가로지르던 그 질문처럼, 세빈과 두헌이 흘려야 했던 그 짠물 같은 눈물과 시련은 결국 거대한 푸른 소금밭이 되어 서로를 구원했다. 진짜 급소를 피한 소금 총알로 조직의 눈을 속인 두 사람은 마침내 핏빛 과거를 뒤로 하고 외국으로 떠나며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간다.

세월이 흘러 다시 보이는 것들

영화의 결말 부근, 해외로 떠나기 위해 차에 오르려던 보스 두헌이 보인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개봉 당시 영화를 보았을 때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들의 미세한 떨림과 눈물들이 15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가슴에 와닿는다. 거친 조직 세계의 권력 다툼 속에서 결국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나 인간적인 온기를 뒤로 해야 했던 허무함과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을까.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본 <푸른소금>은 단순히 젊은 날 송강호의 풋풋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나 신세경의 독특한 아우라를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세월이 지나며 깊어진 나의 시선과, 그 시절 배우들이 쏟아부었던 미숙하지만 뜨거웠던 열정을 동시에 되짚어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난 네가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영화 속 두헌이 세빈에게 던진 그 나지막한 바람은, 어쩌면 치열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며 15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검색해 찾아낸 오늘날의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소금밭을 물들였던 그 푸르른 하늘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화의 온기가 가슴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푸른소금 송강호신세경주연 영화추천 영화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