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보고 '왕사남' 틀었는데, 왜 부끄러웠냐면

[김성호의 씨네만세 1401]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올해 상반기 개봉해 현재까지 169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와 있는 흥행작이다. 이 영화의 흥행세는 현재진행형이다. 글을 쓰는 30일 기준, 전국 10여 개 상영관에서 장기, 또 특별상영이 진행 중이다. 관객 동원이 여전히 그치지 않아 적잖은 신규개봉작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0위에 당당히 올라있다. 최근엔 쿠팡플레이를 통해 OTT에도 진입, 공개 즉시 압도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플랫폼 내 1위에 올라섰다. 요컨대 한국은 아직 <왕과 사는 남자> 시대를 지나고 있다.

떠들썩하던 그 땐 구태여 보려하지 않았다. 감독 장항준에 대한 어떤 종류의 신뢰가 있거니와 내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평자들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내 여력을 다른 데 두고자 했다. 당시 '씨네만세'가 멈추지 않고 다루었던 글들이 그에 대한 증명이라 여겼다.

이제와 <왕과 사는 남자>를 다시 본 건 한 편의 영화 덕분이었다. 많은 이가 2026년 최고 기대작으로 꼽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가 바로 그 영화다. 시사회에 다녀온 뒤 나는 벅찬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업영화, 또 고전을 재료 삼아 오늘의 관객과 만나는 작품이 이뤄야 할 미덕을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세계 영화계, 그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불리는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깃든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어디를 가리키는지 마주하였다. 그것이 한국의 오늘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 알고 싶었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왕과 사는 남자스틸컷쇼박스

'오디세이'에 들뜬 마음 '왕사남' 보았더니

바로 그날 밤 나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이 영화가 오늘의 한국에 전하는 바가 무엇인지, 2026년 한국 관객이 이로부터 길어낸 가치가 또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적어도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 테고, 작품이 한국 영화사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관객과 만났다면 관객 또한 그로부터 얻은 것이 있을 테니까.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제는 논해야 할 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화는 단종, 조선 6대 왕 이홍위의 이야기다. 10살에 즉위해 13살에 상왕으로 밀려났고, 고작 16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고 처형된 비극의 주인공이다. 왕위를 찬탈한 건 숙부인 세조였다. 권력을 향한 욕망은 어린 조카를 죽게 한 데서 그치지 않았다. 종묘와 사직을 어지럽히고 국가의 기틀을 흔들었다. 이후로 사직이 끝을 맺을 때까지 조선엔 정통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충의를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유학적 질서 또한 자리하지 못한 채 사상은 현실에서 벗어나 성리학적 관념으로 숨어들었다. 조선은 바로 여기서 끝을 본 것이다.

영화는 세조가 일으킨 반란, 계유정난이 성공하고 3년 뒤의 이야기다. 계유정난에서 황보인, 김종서, 정분 등 대신들이 모조리 살해되고 왕실 종친으로 존재감이 있던 안평대군까지 모함을 받아 사사되며 권력은 세조 일파의 손아귀에 든 지 오래다. 그나마 남아 있던 옛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를 꾀하는 계획이 있었으나 사전에 누설되며 실패로 돌아간다.

영화는 이로부터 상왕으로 있던 이홍위가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형에 처해지며 시작된다. 충신들의 목이 내걸린 저자를 지나 먼 길을 나서는 노산군은 나라와 신하를 잃은 임금이자 천애 고아의 처지에 놓인 유약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단종을 모시고 있던 통인 하나가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 단종이 앉은 뒤로 가서 목에 걸고 창구멍을 끈을 잡아당겼다. - <연려실기술> 중에서

화가 내릴 것이라고 하면서 만류하는 데도 엄흥도가 말하기를 '의로운 일을 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달게 여기겠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 <국조인물고> 중에서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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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비운 자리에서 영화가 말하는 것

<왕과 사는 남자>는 노산군 이홍위(박지훈 분)가 유배지에서 죽기까지의 이야기다. 권력은 이미 세조와 그 일파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이홍위는 수하에 오로지 궁녀 매화(전미도 분) 하나만을 둔 채로 세상과 닿을 길 없는 강원도 영월 광천골 청령포로 유배 간다. 그곳서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와 주민들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가 곧 영화의 줄기를 이룬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정해져 있다. 이홍위는 영월 깊은 고을로 유배를 와 이곳에서 죽는다. 유배 넉 달만의 일이다. 역사가 비운 그 넉 달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것이 곧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과제다. 유배 보내진 이홍위가 마침내 죽는 것은 정해진 역사다. 기록은 그가 저를 모시던 통인에 의해 활줄에 목이 졸려 숨졌다 기록하고, 그 시신은 엄흥도라는 아전에 의해 거두어져 장사지내졌다고 적고 있으므로, 영화 속 엄흥도가 이홍위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가 영화가 채워야 할 공백이 된 다.

단종은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유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유배지에서 그가 썼다는 시구, 남겨진 글만 보아도 짐작할 만하다. 왜 아닐까. 영화는 그가 삶의 의지를 얼마쯤 되찾아가며 마침내 그 존재를 위협으로 여긴 한명회(유지태 분) 등에 의해 처단되는 것으로 그리지만, 드라마 가운데서 그 의지가 살아나는 모습을 확인하긴 쉽지 않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대세는 크게 기울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도리어 크게 변화하는 인물은 엄흥도다. 영화의 시작점에선 권세가가 마을로 와서 삶이 크게 나아지게 될 것을 기대하던 그가 말미에 이르러선 죽음을 두려워 않고 의를 행하는 인물로써 그려지는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이야기의 근본이다. 무엇이 엄흥도를 바꿔냈을까. 그야말로 <왕과 사는 남자>의 핵이어야 할 테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왕과 사는 남자스틸컷쇼박스

'왕사남'이 진짜로 가리키는 게 뭐야?

아쉽게도 바로 이 지점이 <왕과 사는 남자>의 민망함이며 취약점이다. 유배를 온 죄인과 그를 관리하는 인물로써 두 사람은 수시로 접촉한다. 서로 다른 입장과 거듭되는 사건 사이로 쌓여가는 오해와 이해가 있다. 호랑이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자 이홍위가 나서 그를 죽이는 다소 억지스러운 사건을 겪은 끝에 엄흥도는 어린아이로만 봤던 이홍위를 왕의 자질을 가진 불운한 인물로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이익을 위해 끌어온 죄인이 나라의 마땅한 왕으로 바라보게 되기까지, 영화는 과연 그를 충분히 그리고 있는가. 엄흥도는 왕의 마지막을 수습하는 인물인가. 그저 아직 어린 아이의 비극적 죽음을 안쓰러워하는 측은지심의 용기 있는 발로였을까. 둘 중 무엇이 진실인지를 영화가 충실히 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하여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대?'하는 류의 후기가 쏟아진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을 테다.

<왕과 사는 남자>는 비극의 감동적 재구성에 전념한다. 계유정난도, 세조도 생략한 영화는 부조리한 권력의 획득과 작용보다도 어린 아이의 참담한 처지를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 오늘날 소시민에 대응한다 할 수 있을 엄흥도의 변화도 따져보면 그 계기며 목적이 불명확하다. 부조리한 권력에 대항하는 의로움과 어린 아이를 지키려는 측은지심, 우정에 보응하는 마음 씀까지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듯 보일 뿐이다. 관객은 저마다의 추정으로 그 동기를 이해할 수 있겠으나, 영화가 그를 위한 적절한 사고의 여지를 내어주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왕과 사는 남자포스터쇼박스

2026년 한국에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2026년 한국에 <왕과 사는 남자>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무엇을 지적하고, 일깨우며, 고양하고 있는가. 왕조 시대의 비극적 역사다. 역사가 채 채우지 못한 공백, 민중과 짧게나마 닿은 권력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21세기 민주정체의 대한민국에서, 전란의 시대를 건너고 있는 인류 문명 가운데서, AI로 대표되는 기술혁신과 기후붕괴며 대멸종 등 위협 앞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소시민적 삶 속에서 이 영화는 무엇을 전하는가. 또 이 영화를 택한 우리 대중들은 무엇을 보려 했고, 보았는가. 나는 도저히 유효한 답을 길어낼 수가 없다.

그냥 재밌으면 됐지, 뭐 그런 게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왕과 사는 남자>는 그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업영화일 뿐이라고, 2시간 즐겁게 보내면 그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영화는 보는 이를 일깨우고 움직인다는 걸 안다. 도덕을 함양하고 인식을 확장하며 지성을 고양하는 작품이 있단 걸 안다. 그로부터 영화를 보기 전과 본 뒤의 관객이 달라질 수 있단 걸 안다. 어떤 영화는, 심지어 결코 적지 않은 대중영화가 그 성패와는 별개로 그를 시도한다.

오늘에 이르러 영화가 가장 주요한 대중예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두에 언급한 <오디세이>가 꼭 그와 같은 작품이어서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올해 한국영화 최대 성공작인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야 말았다. 한국 사회의 선택을 받은, 한국 창작자가 역사 가운데 꺼내든 이야기를 만나기 위하여서 말이다. 확인한 결과가 몹시 민망하였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왕과사는남자 쇼박스 장항준 유해진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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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