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04.
물론 두 사람 차이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파커는 4년 전, 그러니까 전작인 <노 웨이 홈>의 후반부에서 그런 선택을 하며 이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고, 진 그레이는 이제 막 언니를 잃었다. 이 차이는 영화가 피터로 하여금 일종의 성장을 강요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는데, 심리적 충격으로 고치와도 같은 거미줄 더미에서 잠이 깬 그가 거미 DNA 활성화를 마주하게 되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실제 성충이 되기 위한 거미의 탈피 과정처럼도 보이는 이 변화를 두고 피터 본인은 자신의 신체에 나타나는 이상 증세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예고하는 성장통의 징후처럼도 보인다.
그 과정에서 거미와 인간 DNA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폭력적인 모습이 되기도 하고, 기계식 웹슈터가 아닌 생체 거미줄로의 변화와 같은 신체적 변화도 일어난다. 이것이 의미는 이제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두 정체성을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작 <노 웨이 홈>까지의 피터가 힘과 책임을 배워가는 소년이었다면,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는 그 힘을 자신의 삶 전체와 어떻게 통합해 나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다는 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며, 개인이 가진 힘의 한계와 취약함을 인정하고 다른 존재와 함께 나누고 합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피터는 조금 먼저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 분)와 프랭크(존 번탈 분)는 피터의 성장과 고독이 어떤 모양이 될 수 있을지 미리 보여주는 또 다른 두 개의 미래가 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이 타인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억제하며 그 힘을 내면에 감추려 한 헐크. 그리고 가족을 잃은 뒤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처벌을 내리기라도 하는 듯 자신의 모든 삶을 임무로만 채워 넣는 프랭크. 피터는 두 사람의 삶으로부터 도움받는 한편, 이미 그런 삶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05.
"나도 해보려고 했지만, 혼자서는 안 돼."
피터 파커도 스파이더맨도 모두 자신임을 선언하며 괴로워하는 진에게 피터가 전하는 이 말 속에는 두 인물 사이에 놓인 4년의 시간이 모두 담겨 있다.
연인 MJ와 친구 네드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숙모 메이를 잃은 슬픔을 홀로 간직했으며, 피터를 버리고 스파이더맨으로만 시간을 보냈던 날들. 다시는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어떤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고, 타인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외로움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믿었던 날들. 그러니까 이 말 속에는 단순히 위로가 아니라 이미 혼자의 힘으로 어른이 되어보려 한 존재가 발견한 한계가 담겨 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MJ의 말처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혼자가 되고자 했던 결심은 '관계'를 형성하는 또 다른 이들의 의견은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해결책이었을 뿐이다.
신체의 변화 앞에서도 억제할 방법만을 찾았던 것, 메츠거 국장의 주장만 믿고 진을 위협으로 오해했던 것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언니 세라를 잃은 진이 메츠거를 죽이는 일밖에 하지 못할 때 스파이더맨은 조금이나마 먼저 성장한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비춰주고자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지만, 큰 책임이 의미하는 바가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스틸컷소니픽처스코리아
06.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피터와 네드는 과거 두 사람이 서로를 기억하던 때 나눴던 핸드셰이킹을 반사적으로 해낸다.
<노 웨이 홈>에서의 피터의 결정이 낳은 여파로 네드는 여전히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브랜드 뉴 데이, 이제 새로운 날이지만 모든 기억이 돌아오고 피터가 잃었던 시간과 모든 관계를 되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터는 이제 더 이상 MJ와 네드,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을 먼발치에서 자신을 숨긴 채 홀로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기억할 수 없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진 역시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그런 피터를 닮아갈 것이다. 고립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나아갈 수 없음을 그가 알려줬으니까. 이 작품이 그랬듯, 다음 시리즈가 이번 영화의 마지막에서 시작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혼자가 아닌 함께인 이들의 모습이 그려지게 될 게 분명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