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들> 스틸
㈜시네마 달
영화는 네 소녀가 잔인한 세상에서 타인과 적대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지킬 지혜를 경험으로 배워가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왁자지껄 발랄한 수다와 요절복통 코미디가 밝은 기조를 이끌지만, 웃고 즐기다 문득 되짚으면 서늘한 찰나가 적지 않게 포착된다. 감독이 은밀하게 숨겨둔 장치들은 극장에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산양들'은 닭과 오리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이 주는 사료와 우리에 안주해 살기에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본능이다. 소동물들이 보여준 놀라운 면모에 감화된 소녀들은 자신을 짓누르던 어른들의 제약을 한 겹 두 겹 차례로 벗어던진다. 그야말로 대안적인 청소년 성장 서사가 그렇게 구현된다. 자신을 혐오하거나 파괴하지 않고도 가능한 변화다.
물론 그녀들의 성공과 보람은 여전히 학교와 부모의 잣대로는 하찮게만 보이거나 심지어 정신 못 차린다고 취급 받기 딱 좋다. 영화 끝날 시점까지도 '산양들'의 장래는 세속 기준으로는 보잘 게 없다. 그러나 눈빛이 바뀐 데다 고락을 나눈 친구가 생긴 '산양들'은 대학 4년 담보보다 더 장기적으로 써먹을 생존법을 배웠다. 10년 후, 20년 후 누가 더 행복하게 살아갈까?
<산양들>은 한국독립영화 지형에서 보기 드문 돌출을 선보인다. '모든 길은 입시로 통하는' 교육 체제 아래 극단적 현실을 압축한 자기 혐오적 풍경도, '괜찮아 잘 될 거야' 부류의 휘발성 치유와도 차별화한 결실이다. 이 기이한 작품은 <3학년 2학기>가 드물게 고3 청소년 중 3할이 넘는 수능 안 치는 실업계 학생을 가시화한 것처럼, 6등급들의 '4인 4색' 다양한 단면을 실체로 옮겨낸다. '산양들'의 풍부한 세부 묘사는 그녀들을 객체로 놔두길 거부한다.
영화는 네 명의 친구들에 시선을 집중한다. 산양들의 '안티 테제'로 여성을 착취하며 부모에 종속되고 세속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학생 찬영, 시스템의 대행자로 '산양들'을 전담하는 '아테' 선생님, 자식의 변화에 용기를 얻는 인혜의 엄마까지 그녀들의 변화 과정과 긴밀하게 조응 하는 존재로 몫을 소화할 따름이다. 워낙 문제 많은 세상일 다 끄집어내 일일이 맞서기엔 시간과 자원이 태부족하다는 현실 조건을 고려한 결과물일 테다.
일단 보고 있으면 유쾌하고 즐겁다. 끝에 가면 왠지 후련해지며 뭉클함이 밀려 든다. 그리고 곰곰이 돌이켜보면 마음이 묵직해진다. 그렇게 이성의 회의와 감성의 낙관이 교차한다. 군더더기 없이 현실을 묘사하되, 의지로 돌파할 희망의 여지는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처럼 남겨둔다. 생태주의와 동물권까지 듬뿍 끼얹은 보기 드문 완성도와 독특한 질감의 성장영화다.
▲<산양들> 포스터㈜시네마 달
<작품정보>
산양들
The Gorals
2025 한국 야생 우정 어드벤처
2026.07.29. 개봉 107분 12세 관람가
감독 유재욱
출연 박혜진, 이승연, 박효은, 최수인
제작 기린놀이터
배급 ㈜시네마 달
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51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