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최수종, 양준모 열연 가운데 눈에 띄는 존재들

[안지훈의 연극 읽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3일까지 공연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이 2500년의 시간을 건너 2026년, 서울 한복판에서 공연되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의 주인공,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운명을 맞이해 버린 비운의 영웅,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그린 연극 <오이디푸스>가 오는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거니와, 익히 알려져 있기도 하다.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두려워한 라이오스에 의해 버림받은 오이디푸스. 이후 코린토스 왕에 의해 길러진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위협을 받던 테베를 구해 왕으로 추대된다.

그는 자신이 테베 왕조의 후손이라는 것도 모르고,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도 모른다. 갈림길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인 라이오스라는 사실도 알 리가 없다. 그렇게 오이디푸스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데 이어,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다.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수컴퍼니

잔인한 운명을 마주한 비운의 왕, 아니 우직한 인간

지난 12일 관람한 <오이디푸스>는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이러한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테베에 닥친 전염병과 가뭄 등 재앙의 원인이 라이오스의 죽음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선왕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오이디푸스가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찾아가면서 진실과 차츰 마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분명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2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낸 만큼 끈질기고 강한 생명력이 있다. 극 중에서 오이디푸스는 왕의 면모와 인간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먼저 전염병과 가뭄으로 괴로워하는 백성들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행하려 하는 자비로운 왕의 모습이 드러나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운명을 알고 주저앉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기꺼이 끌어안는 오이디푸스에게서는 더 이상 나약하지 않은, 우직한 인간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권력자라면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뒤틀어버릴 수 있다.

오이디푸스에게도 분명 그런 선택지가 있었을 테지만, 그는 기꺼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스스로 추락했다. 그렇게 맞이하는 연극의 마지막 순간에 오이디푸스가 나지막하게 내뱉는 한 마디 대사는 그래서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는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수컴퍼니

'특별한 존재' 코러스와 최수종·양준모의 오이디푸스

현재 공연 중인 <오이디푸스>는 원작을 토대로 한아름 작가가 극본을 쓰고, 서재형 연출가의 손을 거친 버전이다. 극단 '죽도록 달린다'를 이끌고 있기도 한 서재형 연출가는 배우들의 강렬한 에너지 레벨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스타일은 이번 공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코러스'의 존재다. 코러스는 고대 그리스 연극의 핵심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사건과 배경을 설명하거나 인물을 평가하며 극의 진행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외에도 음향 효과 등 각종 극적인 요소들이 코러스를 통해 표현되는데, <오이디푸스>는 코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고대 그리스 연극의 묘미를 살렸다.

그중 배우 이충곤은 가장 극적인 순간 직전에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오직 입으로 구현한다. 그는 지난 2월까지 상연된 <에쿠우스>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주인공 '알런 스트랑' 역을 맡은 실력파 배우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소나영·박범규·손창성·오태린·이건영·박서영·강윤재가 코러스를 맡았다. 이들을 이끄는 '코러스 장'은 임병근과 이형훈이 번갈아가며 맡는다.

주인공 오이디푸스 역의 캐스팅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동안 여러 사극에서 왕 역할을 도맡아 온 '왕 전문 배우' 최수종이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연기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최수종은 무려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여기에 뮤지컬 <영웅> <노트르담 드 파리> <지킬 앤 하이드> 등에서 주인공을 맡아온 실력파 뮤지컬 배우 양준모도 최수종과 함께 오이디푸스를 연기한다.

한국 연극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배우 박정자(테레시아스 역), 남명렬(코린토스 사자 역)은 그 존재만으로 <오이디푸스>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수컴퍼니
공연 연극 오이디푸스 최수종 양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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