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
국립정동극장
동시대성을 지닌 송창식의 명곡
좋은 이야기에는 동시대성이 있다. 예컨대 고전은 어제도 유효하고 오늘도 유효하며 내일도 유효할 '동시대성'을 획득한 덕분에 오늘날에도 공연될 수 있다. 17세기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경우에 따라 오늘날 만들어진 연극들보다 오늘날 세상을 더 적나라하게 직격하곤 한다. 원형과 본질이 훌륭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도 빛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지난 12일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보며 느낀 건, 좋은 음악도 동시대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송창식의 노래들은 뮤지컬 속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며 의미가 재해석된다. '고래사냥'은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떠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암울한 시대에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노래하고, '가나다라'는 모진 고문에도 그저 "가나다라마바사"와 "태정태세문단세"를 목 놓아 외치는 청년의 절규로 변형됐다.
그럼에도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여타 작품들처럼 영웅을 등장시키거나 치밀하고 치열한 독립 운동 과정을 그려내진 않는다. 주인공 영수는 오히려 독립의 필요성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독립 운동에 투신하는 형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의 동네 친구였던 대길은 살기 위해 일본 순사가 되어 옛 친구들에게 총을 겨누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살아남기 위해 져버린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한다. 그렇게 실패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고래사냥'을 부르고 '밤눈'을 부르며 다시 일어선다. 이들의 저항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소중한 무언가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원하는 건 그저 바람 따라 피리를 불며 웃고 다니는 삶이고, 그래서 다름 아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다른 노래들을 제치고 이 뮤지컬의 제목이 되었으리라.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 멋진 피리 하나 들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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