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만난 송창식의 명곡들, 그런데 왜 제목이...?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국립정동극장

"가왕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수"

음악평론가 강헌은 '포크송의 대가' 가수 송창식을 이렇게 평했다. 20세기 후반 한국 가요계를 대표했던 싱어송라이터 송창식, 그의 명곡들이 2026년 한꺼번에 다시 소환됐다. 오는 8월 2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주크박스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통해서다.

앞서 김광석의 노래들로 제작된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 이영훈 작곡가가 쓰고 이문세가 부른 곡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처럼, <피리 부는 사나이>도 송창식의 실제 노래 이름을 빌려 제목을 지었다. 극중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뿐 아니라 '담배가게 아가씨', '고래사냥', '가나다라' 등 송창식의 노래 20여 곡이 등장한다.

<그날들>이 김광석의 정서를 담아 흘러버린 시간과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했고, <광화문연가>가 이영훈 작곡가와 이문세의 감성으로 풋풋한 청춘부터 중장년까지의 삶을 정리했다면, <피리 부는 사나이>는 송창식이 그러했듯 청춘의 뜨거움과 저항을 담아냈다.

눈에 띄는 건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다. 일제강점기 평범한 마을의 평범한 가정을 배경으로, 시대적 비극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승화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저 마음껏 우리말로 노래하며 살길 원하는 영수(최민우·김리현·조성태 분), 경성 최고의 스타 가수지만 비밀을 품고 있는 지혜(이태은·이루원 분), 영수의 형이자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의열단원 영기(윤석현·조성윤 분), 이들의 친구였으나 어느새 다카이치 순사가 되어버린 대길(이동수·박좌헌 분)까지. 시대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순응하는 인물들의 엇갈림을 담아냈다.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국립정동극장

동시대성을 지닌 송창식의 명곡

좋은 이야기에는 동시대성이 있다. 예컨대 고전은 어제도 유효하고 오늘도 유효하며 내일도 유효할 '동시대성'을 획득한 덕분에 오늘날에도 공연될 수 있다. 17세기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경우에 따라 오늘날 만들어진 연극들보다 오늘날 세상을 더 적나라하게 직격하곤 한다. 원형과 본질이 훌륭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도 빛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지난 12일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보며 느낀 건, 좋은 음악도 동시대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송창식의 노래들은 뮤지컬 속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며 의미가 재해석된다. '고래사냥'은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떠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암울한 시대에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노래하고, '가나다라'는 모진 고문에도 그저 "가나다라마바사"와 "태정태세문단세"를 목 놓아 외치는 청년의 절규로 변형됐다.

그럼에도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여타 작품들처럼 영웅을 등장시키거나 치밀하고 치열한 독립 운동 과정을 그려내진 않는다. 주인공 영수는 오히려 독립의 필요성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독립 운동에 투신하는 형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의 동네 친구였던 대길은 살기 위해 일본 순사가 되어 옛 친구들에게 총을 겨누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살아남기 위해 져버린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한다. 그렇게 실패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고래사냥'을 부르고 '밤눈'을 부르며 다시 일어선다. 이들의 저항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소중한 무언가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원하는 건 그저 바람 따라 피리를 불며 웃고 다니는 삶이고, 그래서 다름 아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다른 노래들을 제치고 이 뮤지컬의 제목이 되었으리라.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 멋진 피리 하나 들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 공연 사진국립정동극장
공연 뮤지컬 피리부는사나이 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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