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히 천재적 자질이 엿보이는 데뷔작 <메멘토>로 출발했다. 완결됐다 여겼던 <배트맨> 시리즈를 다크나이트 트릴로지로 할리우드의 복판에 우뚝 세웠다. <인셉션>으로 시간과 공간을 영화세계 안에서 자유자재로 비틀었고, <인터스텔라>로 관객으로 하여금 세계의 극한으로 나아가는 감각을 맛보게 했다. 뻗어나가기만 했던 관심이 <덩케르크>와 <오펜하이머>에서 역사의 지난 순간으로 되돌아가 오늘의 관객을 과거와 마주하게 했단 건 의외의 결정이었을까.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현재 선택은 <오디세이>다.
서양 문화의 원류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그리스로마 문명, 그 문명이 낳은 최고의 걸작 중 한 축인 대서사시를 놀란이 자신 있게 집어 들었다. 이제껏 수많은 감독과 작가가 <오디세이>를 제 작품 안에 들여놓았다. 때로는 상징으로, 때로는 소품처럼 반영된 <오디세이>는 지난 문명이 낳은 시와 그 아래 깔린 세계관이 얼마만큼 광활하고 풍요로운지 확인케 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이 작품을 전면으로 끄집어내 제작하진 않았으니, 그건 결코 이야기가 낡고 늙어서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에겐 있고 다른 이들에겐 없는 어떤 오만과 패기가 그를 이 작품으로 이끌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스 문명이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 동편에서 전성기를 꽃피웠을 그 옛날에도 고전으로 읽혔던 <오디세이>다. 족히 2800년쯤 떨어진 오늘에 이르러서 어떤 유효함을 전할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이 2026년 영화계 최대 야심작 <오디세이>의 제일가는 고민이었을 테다.
▲오디세이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우스의 법, 그를 전면에 꺼낸 이유
제우스의 법은 <오디세이>의 중심에 자리한다. 제우스의 법은 무엇인가. 로마법 이전의 질서, 구체화된 법전이 아닌 누구나 따라야 할 맹목적 불문율로서 그리스 세계 전체에 통용되는 몇 가지 규칙이 존재했다 전한다. 그중에 최고법은 역시 최고신인 제우스의 것이다.
그중 각별히 유명한 건 크세니아라고 알려진 이방인과 그를 맞이하는 주인에 대한 규율이다. 주인은 이방인을 정성껏 대접해야 하고, 손님은 그 호의를 배반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네가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하라'는 훗날의 황금률, 즉 동서양 고전에서 모두 발견되는 의미심장한 규칙이 이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데, 영화는 이를 그대로 차용한 듯 대사 가운데 관련된 이야기를 넣어둔다.
따지고 보면 제우스의 법이 무너진 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다. 트로이 전쟁의 발발원인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외교사절로 온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빠져 그를 따라 트로이로 간 것이었다. 손님이 주인의 아내를 꾀어 도망쳤으니 제우스의 법을 어긴 것이다. 거기다 헬레네는 제우스가 인간을 겁탈해 낳은 자식 중 한 명이다. 결국 제우스의 법을 어기고 그의 딸을 부당하게 취한 일이 벌어졌다. 전쟁은 그렇게 일어났다.
영화는 오디세우스의 입을 통해 그 전쟁이 실은 트로이의 무역권을 앗아 오기 위한 아가멤논의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트로이 전쟁에 대한 학계의 정설이기도 한데,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트로이가 당시 청동기 문명의 핵심 자원인 주석 무역의 중간창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돼서다.
지금으로 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과 터키를 거쳐 겨우 들어오는 주석을 트로이가 중간에 앉아서 값을 불리고 통행세를 요구하는 셈이다. 당대 강국들이 그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결국 패권국인 미케네의 아가멤논이 일어나(협박해) 연합함대를 구성하고 출정한다.
영화는 전쟁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왕비 페넬로페의 물음에 아가멤논이 쳐들어와 다 죽일 거라 답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회상 장면으로 삽입한다. 원작 <오디세이아>와 짝을 이루는 <일리아스>에선 참전하지 않으려 꼼수까지 부린 오디세우스이기에 영화 속 참전을 원치 않는 그 모습이 원작의 반영이라 해도 좋겠다.
▲오디세이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고전은 어떻게 시대와 만나나
오디세우스는 다른 장수들과 마찬가지로 트로이의 해안에서 10년 동안을 소득 없이 보내야 했다. 연합군의 꾀주머니 역할을 했던 그는 결국 저 유명한 트로이 목마 계책을 입안해 트로이 멸망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패전 직전에 그리스 전역의 영웅이 된 오디세우스지만 그 뒤는 좋지 않았다. 성문이 열린 직후 트로이에서 벌어진 살육과 약탈, 학살과 겁간, 결정적으로 아테나 신전에서 있었던 신성모독을 참지 못한 신의 진노로 귀향길이 막힌 것이다. 잠시 들른 섬에서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해 그 저주도 받는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함대는 항로를 찾지 못한 채 지중해 곳곳을 돌며 온갖 괴수를 만난다. 생고생은 물론이요, 저를 제외한 모든 부하를 잃고 저승까지 갔다 오는 등 죽을 고생을 한다. 그리스로마신화 전체를 통틀어 그보다 운명이 기구한 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영화는 원전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오디세우스와 그 부하들이 겪는 고난의 주요 부분을 어쩔 수 없이 생략하는 정도 외에는 대부분 충실히 묘사한다. 동시에이야기의 저편,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아내 페넬로페의 이야기 또한 원전과 마찬가지로 풀어나간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성장한 이카타의 영주들이 제우스의 법을 빙자하여 성의 재물을 축내고, 그 자리를 노골적으로 탐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왕의 충신은 얼마 남아 있지 않고 적자인 텔레마코스는 아직 어린 탓으로 위기를 극복할 길이 요원하다. 오로지 군세를 이끌고 떠난 오디세우스가 귀환하길 바랄 뿐.
<오디세이>는 어떻게 시대와 만나는가. 중한 것은 오로지 이뿐이다. 영화는 신화 속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다만 한 가지 주제를 살포시 꺼내어 바깥에 걸어놓는다. 그게 바로 제우스의 규칙, 그중에서도 크세니아다. 손님과 주인의 쌍방의무는 지난 시대에 철칙처럼 지켜져 왔다. 그러나 당대엔 그렇지 못하다. 그리스 세계의 질서를 위협하는 바다 바깥의 위협이 곧 닥쳐오리란 풍문이 나돌고, 그를 명분 삼아 구혼자들은 빈 왕좌를 채울 것을 요구한다.
▲오디세이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신화와 역사가 현실을 가리킬 때
지난 시대의 질서가 그저 바다 건너 정체불명의 야만인들에게 위협받는 건 아니다. 그를 걱정하며 빈 왕좌를 채우라는 이들은 과연 질서를 수호하며 순응하는 이들인가. 그렇지 않음을 영화는 세심하게 드러낸다. 주인 없는 성에 눌러 앉아 그 양식을 축내는 손님은 주인의 아내와, 주인의 영지와, 주인의 군대를 탐낸다. 그건 그대로 크세니아에 반하는 것이지만 누구도 그를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철칙은 녹슬었어도 철칙이니까.
지난 시대를 떠받쳐온 질서는 그리스 번영의 상징이다.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한 그리스 국가들에 외지와의 교류는 문명의 근간이었다. 그 근저엔 나와 다른 이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신뢰가 자리한다. 내가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하는 것,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하는 것이 신뢰의 초석이다. 그 철칙을 통해 한 세계가 문화를 꽃피웠고, 오디세우스는 그 시대의 붕괴를 우려한다. 제우스의 법을 무시하는 새로운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걸, 그로부터 지난 시대의 질서와 번영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한다.
우리 시대는 2차 대전 이후 세워진 국제질서에 터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으로 빛나던 문명이 두 차례 유례없는 큰 전쟁을 치른 뒤 새로운 체계를 구상한 결과였다. 국제협력 증진과 세계평화를 기치로 국제연합(UN) 등 세계기구를 창설했고, 국제법과 국제사법재판소 체계 또한 정비했다.
전쟁마저도 법으로 규제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될 전쟁범죄 행위를 명시했다. 그로부터 완전하진 않아도 비교적 큰 전쟁이 없는 번영의 시대가 이어졌다. 반세기 넘게 작동해 온 이 체제 아래서 경제와 문화, 기술과 과학이 꽃폈다. 가히 문명의 절정이라 해도 좋았을 테다.
이제 그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듯하다. 패권국인 미국과 2차대전 홀로코스트 피해당사자인 유태인이 세운 이스라엘이 벌써 수차례 국제법을 어겨가며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벌써 5년째 잦아들지 않고 있고, 죽고 다치는 이가 끊임없이 늘어간다. 미국은 66개에 이르는 국제기구와 협약을 탈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성한 중동평화위가 UN을 대체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오디세이> 속 무너지는 그리스 세계에 대한 우려,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지피려는 오디세우스의 분투는 그렇게 오늘의 세계와 관계 맺는다. <덩케르크>와 <오펜하이머>에 이어 <오디세이>에서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은 국제사회와 세계안녕을 향한 절망과 희망의 단초를 내보인다.
묻는다. 당신은 이로부터 무엇을 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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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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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속 무너지는 세계, 이 영화 꼭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