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드러난 노윤서... 조선시대에도 '생강' 있었을까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넷플릭스 <동궁>

 넷플릭스 '동궁'
넷플릭스 '동궁'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동궁>의 궁녀인 생강(노윤서 분)은 실은 숨겨 놓은 옹주다. 임금(조승우 분)의 딸이면서도 궁 밖에 사는 생강은 귀신잡이인 구천(남주혁 분)의 조수가 되어 궁에 복귀한다. 왕실을 괴롭히는 귀신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이 구천과 그의 임무다.

그런데 생강은 신녀(神女)다. 귀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구천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가 귀신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벌일 수 없는 생강의 행동을 접한 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는다. 제2회 방영분에서 생강은 "내게도 당신과 비슷한 능력이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한다.

<동궁>의 생강처럼 무당의 기질이 있건 없건, 신녀나 신관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은 많은 왕실에 있었다. 신녀의 최대 임무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런 신녀들이 고대에는 무당의 능력을 갖춘 경우가 허다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그 수는 현저히 적어졌다. 신에게 제사를 올리지만 무당은 아닌 신녀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왕후들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왕후들의 '선잠례'

조선시대 왕후들이 거행한 의식 중 하나는 선잠례(친잠례)다. 왕후가 뽕잎 따기와 누에치기를 주관하는 이 의식은 여성의 양잠업을 장려하는 산업적 측면과 더불어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교적 측면을 함께 띠었다.

성종 임금 때인 1474년에 국가 예법을 정리하고자 편찬된 <국조오례의> 제1권은 "제사의 예법은 천신에 대한 것은 사(祀)라 하고, 지기(地祇)에 대한 것은 제(祭)라 하고, 인귀(人鬼)에 대한 것은 향(享)이라 하고, 문선왕(文宣王)에 대한 것은 석전(釋奠)이라 한다"고 개념을 정리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뭉뚱그려 '제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향' 같은 표현은 거의 쓰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각각의 글자를 세분해서 사용했다. 하늘신을 받드는 것은 '사', 땅의 신령을 받드는 것은 '제'. 인간이었다가 사후에 신격화된 존재를 받드는 것은 '향', 공자를 받드는 것은 '석전'으로 각각 불렀다.

선잠례는 인귀에 대한 의례인 '향'에 속했다. <국조오례의> 제2권은 친잠례를 향선잠의(享先蠶儀)로 지칭한다. '양잠업의 선조 혹은 시조'라는 의미의 선잠에게 향을 올리는 의례로 규정했던 것이다. 선잠으로 추앙된 신은 삼황오제의 하나인 황제(黃帝)를 남편으로 둔 서릉씨(西陵氏)다. 인간이었다가 신으로 격상된 서릉씨에 대한 제사라는 의미에서 선잠례는 '향'의 일종으로 분류됐다.

'향'이기 때문에 선잠례에서는 서룽씨에게 제례를 올리는 의식이 거행됐다. 정조 임금 때인 1788년에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의 사무를 정리할 목적으로 편찬한 <탁지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외편(外篇) 제3권은 "서릉씨는 선잠례의 주인이니 먼저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뒤이어 채상례(採桑禮)를 행하고 친잠례를 행하라"라는 영조의 왕명을 보여준다. 선잠례라는 의례의 주인공은 서릉씨이니 먼저 서릉씨에게 술잔을 올린 뒤에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의식을 거행하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이다.

'신녀'의 이미지로 대중과 접촉한 왕후

그런 위대한 신에 대한 제례를 주재하는 최고 신관이 조선의 왕후였다. 그래서 이 시대 왕후들은 신관 혹은 신녀의 이미지로도 대중과 접촉했다.

정조 때 예조 관청의 업무를 정리할 목적으로 편찬한 <춘관통고>의 제41권에는 왕실 여성들과 궁중 여성들은 물론이고 관료의 부인들까지도 참여하는 선잠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국가지도층의 배우자들까지 참여하는 거국적 행사에서 왕후가 최고 신녀 역할을 수행했다. 왕후가 신성시된 데는 이런 의식의 주재자라는 점도 작용했다.

신관 역할을 수행하는 왕실 여성들 중에는 무당의 특성을 겸비한 이들도 있었다. 공주로 태어나 군주의 지위에 오른 선덕여왕도 그런 신관이었다.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이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근거로 서라벌 인근 계곡에 백제 병사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 일을 알려준다. 그가 파견한 신라군은 그곳에서 백제군을 만나 전멸시켰다. 그는 건강에 이상이 없을 때인데도 자신의 사망일을 예언했다. 선덕여왕이 죽은 날은 그가 미리 점찍은 날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그는 647년 2월 17일(음력 1.8)에 사망했다.

알영부인과 박혁거세는 남해차차웅(남해왕)과 아로공주를 낳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알려준다. 이는 남해차차웅이 영적 능력을 갖춘 군주였음을 알려준다.

아로공주는 신라 최고의 신전인 박혁거세 사당의 최고 사제였다. 공주의 지위를 근거로 사제가 됐을 수도 있지만, 남해차차웅의 특성을 감안하면 아로공주 역시 영적 능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영적 능력이 있었다면, 아로공주는 무당을 겸비한 신녀에 포함된다.

역사 속에서 잘 부각되지 않는 '신관'의 역할

2003년 3월 8일경, 중국 내몽골 투얼지산(山)에서 거란족 요나라 때의 무덤이 발견됐다. 그해 6월 13일자 <중국청년보>에 따르면, 무덤 속의 목관에는 비단으로 둘러싸인 1미터 56센티미터(1미터 59센티미터라는 보도도 있음)의 유골이 누워 있었다. 머리 밑에는 금속 베개가 놓여 있었고 머리에는 금속 관이 씌어 있었다. 목에는 마노와 옥으로 장식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유골의 성별은 체격과 더불어 머리카락으로 인해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거란족 남성들은 삭발을 했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잘 정리된 채로 발견됐다는 것은 여성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증표로 해석됐다. 골반에 대한 분석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학계는 이 여성이 요나라 태조 아율아보기(재위 916~926)의 딸이거나 누이일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았다.

중국 학계는 이 왕실 여성이 샤먼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무덤에서 발견된 방울 외에 은제 소뿔과 종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요나라의 제례 도구였던 이런 물건들을 시신과 함께 묻은 것은 무덤 주인이 생전에 무당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1840년에 발발한 아편전쟁에서 동양 최강 청나라가 서양 최강 영국에 패배한 이후로 세계 역사는 서양 자본가들의 합리주의적 관점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많았다. 이 때문에 한·중·일 같은 동아시아 왕조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종교적·샤먼적 자료들이 많이 희석된 채로 역사교육이 진행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왕후나 군주가 신관 역할을 수행한 사실은 잘 부각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116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왕실에는 신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런 여성 신관들이 무당을 겸한 사례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많다. <동궁>의 생강처럼 무당의 특성을 겸비하는 단계는 아니어도,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매개하는 신관의 역할을 수행한 여성들은 왕실에 많았다.
동궁 신녀 신관 무당 선잠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제15회 임종국상.저서: 제도 밖의 권력, 영부인 리스크.아무도 몰랐던 독립운동 이야기,친일파의 굴욕,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