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이 원작서 지운 딱 한 가지

[리뷰]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글로벌 누적 조회수 35억 뷰. 이동건 작가의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2015년부터 5년간 연재되며 한 시대의 로맨스 서사를 대표했고, 김고은 주연의 드라마로 다시 한 번 흥행을 증명했다. 그 작품이 이번에는 뮤지컬이 되어 무대로 돌아왔다(6월 30일부터 8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웹툰 영상화를 이끌어온 스튜디오N의 첫 뮤지컬 도전작이기도 하다.

이미 웹툰으로, 드라마로, 애니메이션으로 소비된 이야기다. 그런데 뮤지컬은 이 익숙한 세계에 원작 어디에도 없던 세포 하나를 새로 만들어 넣었다.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견습세포 109. 이 각색의 승부수가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이 작품을 봐야 할 이유의 전부라고 해도 좋다.

웹툰의 오랜 독자였던 나는 궁금했다. 유미의 연애사를 다 아는 관객에게 무대가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유미가 아닌 세포가 전면에

모든 세포에게는 이름이 있다. 사랑, 이성, 출출, 명탐정, 불안. 이름은 곧 역할이고, 역할은 곧 존재의 이유다. 그런 마을에서 어느 날 이름 없이 숫자로만 불리는 세포가 깨어난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모르는 견습세포 109는 다른 세포들이 분주하게 유미를 위해 일하는 동안 마을 언저리를 서성인다. 끼워달라고 해도 자리가 없고, 돕겠다고 해도 맡길 일이 없다.

이 새 인물이 가능해진 것은 뮤지컬이 원작의 시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웹툰의 주인공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유미였다. 유미가 사랑하고 흔들리고 성장하는 동안, 세포들은 그 마음의 풍경을 채색하는 존재였다.

뮤지컬에서 관객이 앉는 곳은 유미의 자리가 아니라 세포들의 자리다. 무대의 대부분은 세포마을이고, 유미의 현실은 그 사이사이 창문처럼 열린다. 남자친구 구웅과의 사이에 오해가 쌓일 때, 관객은 그 장면 자체보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세포들을 먼저 본다. 제작진이 '전지적 세포 시점'이라 밝힌 구도다.

시점이 바뀌면 질문이 바뀐다. 웹툰이 '유미는 누구를 사랑하게 될까'를 물었다면, 뮤지컬은 '유미의 마음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나'를 묻는다. 그 끝에는 사랑 이야기보다 훨씬 오래된 질문이 기다린다. 유미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마을의 리더인 사랑세포는 유미의 세포 마을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명랑하고 반짝이는 이 세포는 극이 진행될수록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사랑세포에게는 기억이 있다. 오래전 유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세포마을에 대홍수가 밀려왔던 기억. 그래서 사랑세포의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을 방어하게 됐다.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 홍수가 다시 오면 안 된다, 그러니 무엇이든 해야 한다.

'무엇이든'이라는 말의 무서움을 작품은 정확하게 보여준다. 사랑세포는 구웅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라면 유미를 깎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참아. 네가 조금만 이해해. 네가 먼저 사과해". 상대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모든 순간에 사랑세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것이 유미를 지키는 길이라 믿으면서, 실은 유미를 조금씩 지우고 있다는 걸 몰랐다.

사랑이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그 축소의 주체를 사랑세포라는 캐릭터로 세워두고, 그 세포가 악의가 아니라 상실의 공포 때문에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 이 작품은 흔한 연애 서사의 문법을 벗어난다.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다. 사랑을 잃었던 기억이다.

명탐정은 찾아내고, 불안은 기억한다

 뮤지컬 <유미의세포들> 포스터
뮤지컬 <유미의세포들> 포스터스튜디오N

구웅과의 관계에 균열이 커지는 동안, 견습세포 109는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이름도 역할도 없는 세포가 할 수 있는 건 마을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나서는 일이었다. 유미가 마음 깊은 곳에 가둔 두려움 세포를 마을로 데려오고, 언젠가 사라져버린 다른 세포들을 깨우는 일.

흥미로운 것은 이 여정에서 109의 곁을 지키는 두 세포다. 명탐정과 불안. 하필 왜 이 둘인가. 명탐정은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눈이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래 감춰진 진심을, 괜찮다는 말 뒤의 균열을 읽어내는 세포.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에는 언제나 이 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불안은 왜인가. 불안이야말로 두려움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는 유일한 세포다. 유미가 두려움을 마을 밖으로 밀어낼 때 그 곁에서 떨고 있던 것이 불안이다.

우리가 가장 내쫓고 싶어 하는 감정이, 사실은 잃어버린 감정들의 지도를 쥐고 있는 셈이다. 명탐정은 찾고, 불안은 기억한다. 이 둘이 합쳐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의 이름이 자기 이해다.

마을로 돌아온 두려움 앞에서 109가 건네는 말이 있다. 두려움이 있었기에 유미가 위험한 순간마다 멈출 수 있었다고. 두려움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못나서 숨긴 것이 아니라 숨기는 동안 못난 것이 되어버린 감정들에게 자리를 돌려주는 일. 그것이 이 견습세포가 찾아가는 역할이었다.

자존감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되찾는 것이다

극의 끝에서 109의 이름이 밝혀진다. 자존감 세포. 그리고 109라는 숫자의 뜻도 함께다. 1월 9일, 유미가 태어난 날이다.

이 설정은 작지만 탁월한 장치다. 자존감이라는 세포의 이름이 태어난 날이라는 것은, 자존감이 나중에 획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라는 뜻이 된다. 다만 지금은 이름을 잃은 채, 견습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마을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존감을 '키운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다르게 말한다. 자존감은 되찾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사랑세포의 마지막 깨달음이 이 지점에서 합류한다. 대홍수가 두려워 구웅을 붙잡는 데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세포는, 극의 끝에서 자신이 정말 사랑해야 했던 사람을 마주한다. 구웅이 아니다. 다음에 올 누군가도 아니다. 바로 유미다.

사랑세포가 유미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우선순위 쇼의 기울어진 저울이 비로소 수평을 되찾는다. 1위의 자리에 유미가 올라서는 방식이 아니라, 순위표 자체가 의미를 잃는 방식으로.

인사이드 아웃보다 한 걸음 더

감정을 의인화한 서사의 가장 유명한 선례는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일 것이다. 그 영화가 도달한 결론은 슬픔의 복권이었다.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에게도 제어판 앞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

<유미의 세포들>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떤 감정이 밀려났는가가 아니라, 감정을 밀어내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작품의 답은 자존감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가두고 슬픔에게 방을 내주지 않는 것은 그 감정들이 정말로 못나서가 아니다. 두려워하는 나를, 울고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서다. 감정을 숨기는 일은 처음부터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극이 두려움을 마을로 데려오는 임무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존감 세포에게 맡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두려움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은, 두려워하는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웹툰이 유미의 사랑 이야기였다면, 뮤지컬은 유미가 유미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다. 견습세포 109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는 그 귀환의 길을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각색은 원작의 훼손이 아니라, 원작이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의 완성에 가깝다.

익숙한 이야기가 무대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무대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이 관객에게 남기는 질문은 하나다. 당신의 마을에서, 이름을 잃은 채 서성이는 세포는 무엇인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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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일상의 감동을 나누고자 합니다. 뮤지컬, 영화, 책, 연극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리뷰하며, 작품 속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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