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소장품에 받은 사인, 전설의 포크 록 듀오는 달랐다

[현장] 시인과 촌장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취향은 교육된다"고 했던가. 이문세와 박광현, 송창식-윤형주의 트윈폴리오와 시인과 촌장의 카세트 테이프와 엘피의 음악은 그대로 내게 전이되었다. 어머니의 소장품이었다.

시인과 촌장의 리유니언이 들려왔다. 2026년 3월 27일 MBC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보이는 라디오를 통해 오랜만에 마주한 하덕규-함춘호였다. 지난 4월 11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이 있었지만, 관람을 놓쳤다.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시리즈 콘서트의 일환으로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EBS 스페이스 홀에서 2026년 7월 20일과 21일 컴백 콘서트를 펼쳤다.

든든한 후배들

 시인과 촌장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
시인과 촌장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염동교

위대한 선배 음악가를 위해 후배들도 힘을 모았다. 함춘호와 오랜 인연을 쌓았다는 키보드 신가희와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일당백을 실현한 코러스의 원현정. 페달 스틸 기타 전문가 김범준과 한국 록의 신화 신중현의 세 아들 중 막내인 드럼연주자 신석철, 더 클래식의 멤버로서 숱한 명곡을 편곡한 박용준까지.

유희열과 함께 토이의 원년 구성원이었던 윤정오가 관객석 뒤편에서 음향을 만졌다. 신석철과 박용준은 최근 단독 콘서트와 페스티벌, 예능 등에서도 만난 터라 더욱 반가웠다.

첫 곡부터 각별했다. 행진하는 듯한 신석철의 리듬과 장범준의 페달 스틸 기타를 융합한 '푸른 돛'에서 "모두 억척스럽게도 살아왔어 / 솜처럼 지친 모습들"이란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들국화 최성원이 제작한 1985년도 옴니버스 < 우리노래전시회 >에 먼저 실린 '비둘기에게'와 관련, 도입부 전화벨 소리 후 음성의 주인공이 작사가 박주연임을 알게 되었다. 1987년 꿈나무 소극장서 열린 단독 공연에서도 '푸른 돛'이 대단원의 시작을 알렸다고 한다.

공연 시작 전 음원으로 기대감을 고취한 '얼음 무지개'는 함춘호의 후반부 일렉트릭 기타가 번쩍였다. 송창식과의 협연 등 어쿠스틱 기타를 쥔 그가 익숙한 터라 고출력 전기기타 솔로가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견 관능적이기까지 한 '고양이'에선 도입부 장태웅의 베이스가 돋보였다. 음원에선 가요계 전설적인 레이블 동아기획의 살림꾼 조동익이 베이스를 연주했다.

관객과 후렴구를 합창한 '사랑일기'에 이은 '풍경'. 가사는 서정적이고 섬세한 시인과 촌장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언어로 이뤄졌다. 함춘호는 팬데믹 시절 대형 건물 현수막에 걸린 '풍경'의 노랫말을 보며 하덕규가 그리워졌다고 했다.

모로코에서 갓 돌아와 경기도 일산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과도 겹쳐졌다. '항해'와 몇 가지 그림이 그려진 슬로건을 공연 내내 들고 있던 관중, < 푸른 돛 > 앨범 표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온 이들도 있었다.

 시인과 촌장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
시인과 촌장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염동교

유년기는 남모르게 굳혀진 음악적 틀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부모님 엘피로 접한 시인과 촌장은 조성모가 리메이크했던 '가시나무'와 '풍경'의 아름다운 포크였다. 후에 접한 '고양이'와 '매'를 통해 일반화에어서 벗어났는데 이번 공연에서 비로소 드넓은 스펙트럼을 체화했다. 상기한 록 질감의 '얼음 무지개'와 풍성한 그루브의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이 그 증거다.

이날 하덕규도 시인과 촌장의 음악이 "소박한 시골밥상"이라고 표현했지만, 곡조의 급변 이후 기다랗게 늘어놓는 기악과 환각적이기까지 한 기타와 신시사이저 톤,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게 들려오는 하덕규의 음색은 사뭇 핑크 플로이드 같기도 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선"에 1986년 < 푸른 돛 >(14위)와 1988년 작 < 숲 >(54위)를 수록한 이들의 음악 세계는 입체적이었다.

여운은 이어졌다. 스페이스 홀에서 사인회가 진행된 것. 줄을 길게 선 이들은 추억이 묻은 엘피를 팔에 껴안은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으로 리플렛에 소개 글을 적은 김학선 평론가와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인상 깊게 읽은 김연수 작가도 팬심을 드러냈다.

 시인과 촌장 3집 < 숲 > 엘피
시인과 촌장 3집 < 숲 > 엘피염동교

자취방에 < 숲 > 엘피가 두 장 있었다. 하나는 어머니의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수년 전 구매한 거다. 딱 봐도 어느 게 연식이 더 되었는지 눈에 들어올 만큼 한쪽이 바랬다. 시인과 촌장을 흠모하는 2000년생 후배 평론가 생각이 나 두 장 다 들고 갔다. 짧은 대화에서 하덕규와 함춘호의 따스한 인품을 느꼈고, 함춘호가 진행하는 TBS 라디오 '포크송'을 즐겨듣는다고 말했다.

원칙상 사인 하나를 받는 것이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서성이다 다시 홀 안으로 들어갔다. 스태프와 아티스트의 배려로 또 하나의 < 숲 > 사인 음반이 생겼다. 공연과 사인회 내내 사랑과 따스함이 관류했던 시간, 하반기에 후속 공연이 계획되었다는 말씀이 더욱 반갑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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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