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영화, 방송, 책등 작품 속 한 장면을 통해, 오늘의 사회적 장면과 감정의 흐름을 살펴봅니다.[기자말] |
손을 흔든 적이 있을 거다. 지나가는 이웃에게, 낯선 사람에게, 혹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그 손짓에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을 거다. 그런데 누군가 그 손짓에 전혀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은 무엇을 말하게 될까.
넷플릭스 영화 〈2만 3천 명의 목숨〉은 사람을 향해 내민 손 하나가 어떻게 범죄의 증거가 되는지담는다. 지중해에서 난민 구조 활동을 벌인 독일 청년 단체 '유겐트 레테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낡은 배 한 척으로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한 청년들이 구조자에서 피고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쫓는다. 사람을 구한 뒤에도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끝없이 증명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빈자리
▲2만 3천 명의 목숨공식예고편
넷플릭스
'저렇게 사람들이 빠져 죽게 놔둬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은 2015년 지중해에서 시작됐다. 루카스 바일란트(루이스 호프만)는 난민들이 목숨을 잃는 장면을 마주한다. 배 가장자리에 매달려 버티는 사람들의 힘이 빠진 손이 하나둘 물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장면은 지나갔지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루카스는 어머니(프랑카 포텐테)에게 NGO를 세워 난민 구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세상은 변해야 해요. 다 가만히 있으면 안 바뀌어요."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없어." 그가 이후 만난 은행과 자선단체, 정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가능해." "비현실적이야."
루카스는 설명회를 연다.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려는지 말하면 누군가는 와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영화는 연설 대신, 끝내 채워지지 않는 의자들을 화면에 남긴다. 감독은 반대를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오지 않는 장면으로 무관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질문은 대답을 얻지 못한 채 더 오래 남는다.
다른 이름
▲2만 3천 명의 목숨공식예고편
넷플릭스
"유벤타호 선원들은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됐어요."
변호사(엘레오노라 로만디니)의 말을 듣는 순간, 영화의 시선은 기소 사실보다 루카스의 얼굴에 머문다. 분노보다 먼저 스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제 그의 앞에는 빈 의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던 자리에는, 이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가득했다. 그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그의 행동에 저마다의 이름을 붙였다.
한때 그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전단을 돌리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빈 의자 대신 함께 바다로 나설 사람들이 생겼다. 유벤타호는 지중해로 향했고, 청년들은 수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내 남기는 것은 구조의 환희가 아니라, 압수된 유벤타호의 모습이다. 사람을 구한 행동은 그렇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루카스를 영웅처럼 세우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의 신념보다, 그 신념이 조금씩 흔들리는 순간들을 따라간다. 어머니는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없어"라고 말하고, 함께 배에 오른 동료들과도 갈등을 겪는다. 해킹과 온라인 비방이 이어지고, 한밤중에는 파시스트 청년들이 집 앞에서 난민을 흉내 내며 "우린 난민이에요. 문 열어주세요"라고 외친다. 영화는 거대한 대결보다, 일상을 조금씩 파고드는 조롱을 화면에 남긴다.
결국 법정에서는 손짓 하나까지 증거가 됐다. 조난자를 향해 흔든 손은 누구에게나 평범한 인사였지만, 법정에서는 인신매매 조직과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대로인 자리
▲2만 3천 명의 목숨공식예고편넷플릭스
같은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그를 부르는 이름만 계속 바뀌었다. 허황된 꿈을 꾸는 청년. 난민을 돕는 활동가. 인신매매 조직과 결탁한 범죄자. 그리고 다시, 생명을 구한 사람.
처음에 세상은 루카스에게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정말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묻기 시작했다.
"유벤타호의 사람들이 우리 목숨을 살렸습니다. 그게 그들이 한 일입니다."
법정에 선 난민 라민(트레버 마가야)은 그렇게 말했다. 함께 증언한 로즈(캐시 에토아)는 리비아 감옥에서 겪은 폭력과 공포를 이야기했다.
영화는 판사의 판결보다 먼저,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되돌려준다. 그들의 증언은 복잡한 법리보다 단순하다. 그 손이 자신들에게 무엇이었는지만 말하고 있었다. 법정은 유벤타호 선원들에게 '인신매매 조직과 결탁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은 단 하나였다. 자신들을 살린 사람.
"바다에서 생명을 구하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며, 범죄였던 적도 없다."
7년의 재판 끝에 판사는 짧게 말했다. 그 문장을 듣기까지 걸린 7년은 판결문 어디에도 적히지 않았다.
사람을 구한 뒤에도 그는 7년 동안 법정에 서야 했다. 그 시간 동안 구조선은 멈춰 있었지만, 바다는 멈추지 않았다. 유벤타호 선원들이 2016년과 2017년 사이 2만 3천 명의 목숨을 구한 뒤에도, 그들이 법정에 서 있던 7년 동안 지중해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법정에서 사람을 구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루카스는 어딘가에서 다시 손을 흔들 것이다. 그리고 그 손에는, 또 다른 이름이 붙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은,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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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