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없이 웃기는 레즈비언 코미디언의 결정적 무기

[리뷰] 유튜브 '애슐리 가빈 Ashley Gavin'

어느 때보다도 코미디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남을 웃기는 데 재능 있는 개개인이 틱톡·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통용되었던 차별적 유머는 이제 공개되기가 무섭게 날 선 비판받는다. 어떤 코미디언들은 이러한 '윤리적 잣대'가 코미디의 본질을 훼손시킨다고 토로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과하게 의식하다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면서도 모두를 웃길 수 있는 코미디란 실존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레즈비언 코미디언인 애슐리 가빈(Ashley Gavin)은 여기에 당당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유튜브 'Ashley Gavin' 갈무리
유튜브 'Ashley Gavin' 갈무리Ashley Gavin

자조는 모두의 것이니까

애슐리 가빈은 마이크 하나만으로 사람을 웃기는, 전통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공연 한 번 한 번에 쓰이는 농담들이 전부 그의 자산이니만큼 무대 전체를 유튜브에 올리지는 않는다. 다만 일방적으로 농담을 전달하지 않고 청중과의 대화를 통해 즉흥 유머를 만들어 나가는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만은 15분 남짓한 영상으로 편집하여 게시한다. 그리고 바로 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애슐리가 추구하는 '포용적 코미디'의 진가가 드러난다.

애슐리 본인이 레즈비언 당사자이니만큼 청중 대부분도 성소수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성소수자 딸에게 이끌려 온 이성애자 부부는 물론이고, 정체성과 전혀 관계없이 농담만을 들으러 온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도 간혹 보인다. 애슐리는 이렇게 이질적인 관객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대신, 그들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청중과 어우러지도록 돕는다. 양성애자 아내가 여자와 외도를 저지를까 봐 걱정하는 백인 남성에게 '본인이 섬세한 면모를 보여주어 여성적인 매력까지 어필하라'고 익살스럽게 받아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인 코미디가 특정 집단을 지목하고 희화화하며 웃음을 유도했다면, 애슐리 가빈은 서로 다른 집단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집중하며 무대를 이끌어간다. 짝사랑 상대도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을 때나, 대학을 열심히 다녔음에도 취직이 안 될 때 등 포괄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종과 성별을 넘어온 관객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부전공을 3개나 했는데 돈벌이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괜찮아. 나도 그랬었어. 그러니까 여기서 너랑 대화하고 있잖아."

애슐리가 자조의 문을 열면, 인종이나 성 정체성 등 민감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유머의 문제는 애슐리가 아닌 청중 속 당사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애슐리 가빈의 무대는 자조라는 인류 공통의 무기로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고백의 장이 된다.

 유튜브 'Ashley Gavin' 갈무리
유튜브 'Ashley Gavin' 갈무리Ashley Gavin

확고한 진보주의자

그렇다면 애슐리 가빈의 포용적 태도가 소위 '집토끼'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오진 않을까 의아할 수도 있다. '문화 전쟁(culture war)'이라는 용어가 존재할 정도로 양극단으로 치달은 미국 사회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애슐리의 유튜브 운용력이 빛을 발한다.

청중과 함께하는 스탠드업 세션에서 불화를 피하는 애슐리는, 49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에서 확고한 진보주의자로 변한다. 애슐리는 자신의 팟캐스트에 주류 코미디언부터 퀴어 시인 '에일린 마일스(Eileen Myles)'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초청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는데, 당장 해당 팟캐스트의 제목 자체가 'WHGS(We're Having Gay Sex: 우리는 동성 관계 중입니다)'이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포용성과 선명성 모두를 선보이는 전술을 택한 것이다.

이 외에도 애슐리의 유튜브 채널은 숏폼 콘텐츠, 롱폼 콘텐츠, 브이로그와 진지한 사회 비평 콘텐츠를 동시에 전개한다. 이토록 다양한 층위의 콘텐츠가 애슐리 가빈이라는 개인을 통해 하나로 엮여, 고유한 브랜드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실제로 본인의 인지도 상승에 일조해, 애슐리가 1년에 걸쳐 전미 순회는 물론이고 호주·유럽에서 개인 공연을 개최할 수 있게끔 발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처럼, 애슐리 가빈은 증오와 혐오의 시대에 모두를 하나로 묶는 '화합형 코미디'의 선구자인 동시에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매개로 본인의 다양한 면모를 서슴없이 보여주는 종합 콘텐츠 창작자이기도 하다. 윤리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타파하는 애슐리의 여정은, 미국행 비행기표 없이도 유튜브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유튜브 애슐리가빈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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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