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스에듀케이션 오브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수록 트랙 '낫싱 엘스 매터스(Nothing Else Matters)'에 참여한 네오소울 거두 디 안젤로. 그가 향년 51세의 나이로 2025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나고 2026년 제61회 그래미 트리뷰트 무대에 로린 힐이 등장했다.
당시 그는 흡사 장군처럼 존 바티스트와 레온 토마스 같은 후배 뮤지션을 지휘했다. 로버타 플랙의 두 곡 '필 라이크 메이킹 러브(Feel Like Makin' Love)'와 '킬링 미 소프틀리 윗 히즈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등을 소화했다. 각각 전자는 푸지스, 후자는 디안젤로가 리메이크했다. 현장의 청중과 브라운관 너머 시청자 모두 오랜만에 로린 힐 특유의 카리스마에 흠뻑 빠져들었다.
로린 힐의 강림
▲재자블랑카에서의 로린 힐
염동교
지난 10일 모로코의 대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재자블랑카(Jazzablanca) 무대에 로린 힐이 올랐다. 30분 늦게 시작한 로린 힐 콘서트는 2시간 넘게 진행되어 음악이 멈추고 나니 시곗바늘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이 벌개진 채 하품이 나왔지만 가슴은 벅찼다.
콘서트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곡 '엑스 팩터(Ex Factor)' 속 중도적인 기류는 이내 대표곡 '두 왑(댓 띵)Doo Wop(That Thing)'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랩과 가창의 폭풍 타격에 고막이 얼얼해졌지만 팔다리는 나도 모르게 리듬 타고 있었다.
'내 해방은 네 방정식에 들어맞지 않아(MY Emancipation Don't Fit Your Equation)'란 가사가 인상적인 '로스트 원즈(Lost Ones)'에선 아티스트의 진중함과 철학을 목도했다. 무더운 날씨에 두꺼운 의상에도 고난도 랩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모습에 관객석에서 '퀸'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모로코 재자블랑카에서의 로린 힐과 와이클리프 장
염동교
와이클리프의 등장
푸지스의 명반 <더 스코어(The Score)>가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와이클리프 장과 로린 힐 앞에 <더 스코어(The Score)> 신화가 되살아났다. 불멸의 밥 말리 고전 '노 워먼, 노 크라이(No Woman, No Cry)'가 레게의 색채를 상기시켰고, '레디 오어 낫(Ready Or Not)'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폭발적인 콜 앤드 리스펀스, 대미를 장식한 '푸-지-라(Fu-Gee-La)'의 중독적인 "울랄라"는 1990년대 혼성 힙합의 상징을 2020년대 한복판에 소환했다.
"프린스처럼 들리게 기타 볼륨을 높여줘!"라고 외친 와이클리프 장은 기타줄을 이빨로 물어뜯고, 기타를 등 뒤로 매고 치며 "나 아직 쌩쌩하다고!"를 외쳤다. 또 하나의 알앤비 전설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입 맞춘 '911'로 그래미 후보에 오르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솔로 경력을 다진 그는 '관타나메라(Guantanamera)'에 맞춰 펄쩍 점프하고 현란한 브레이크댄스를 추며 원초적 즐거움을 표출했다.
패밀리 타임
▲재자블랑카에서의 로린 힐과 아들 자이언 말리염동교
로린 등장 전 40~50분가량 장내를 달궜던 자메이카 출신 덥(레게에 환각적 전자 음향을 입힌 음악 스타일) 디제이와 다채로운 게스트 출연은 느슨하고 개방적인 펑크(Funk)와 레게 파티를 지향했으며, 로린의 "잠깐 멈춰(Hold On!)"로 연주를 끊었다가 재개하는 방식에는 즉흥성과 개방감이 흘렀다.
밥 말리의 아들 로한 말리와 로린 힐 사이에서 태어난 와이지 말리와 자이언 말리는 레게 고유의 느슨하고도 환각적인 소리샘을 풀어헤쳤다. 무대 한편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제가 지금 잘하고 있나" 관망하는 로린에게서 퀸도 어쩔 수 없는 어머니임을 확인했다. 조금 긴장한 듯한 자이언과 달리 와이지는 자신의 최신 히트송 '프레이즈 자 인 더 문라이트(Praise Jah in the Moonlight)'를 맛깔나게 소화해 라이징 스타의 이미지를 굳혔다.
유재하나 너바나와 마찬가지로 로린 힐과 푸지스에게 늘 아쉬운 건 과작이었다. 혹시나 모를 로린 힐의 두 번째 독집에 대한 희망은 여전하지만, 이번 카사블랑카 콘서트와 후속 청취를 통해 한정된 트랙 수 안에 녹아든 이채로운 질료에 놀랐다. 로버타 플랙과 티나 마리 같은 뮤지션을 인용해 1970~80년대 알앤비 색채를 드러내고, 밥 말리를 리메이크해 레게 질감을 도입했으며, 동시대 뉴잭스윙과 대비되는 내밀한 랩으로 하이브리드적 음악색을 구축했다.
메시지는 또 어떠한가. 그룹명 푸지스부터 난민을 의미하는 단어 '레푸지스 Refugees'에서 따왔고, 곡에 흑인 디아스포라와 민권을 세심히 담았다. 여기에 레게가 꿈꾸는 화합과 사랑을 더해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한 인류임을 천명했다. 푸지스에서 독립한 로린은 <더 미스에듀케이션 오브 로린 힐(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을 통해 남성 중심의 대중음악 산업에서 흑인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표출하며 자신만의 힙합 페미니즘을 주창했다. 세상과 사회, 인류애를 담은 푸지스와 로린 힐의 음악사적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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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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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에 폭풍 랩, 고막 얼얼했지만 나도 모르게 리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