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2일, '헤비메탈의 대부'이자 '어둠의 왕자(Prince of Darkness)'로 불렸던 록의 전설 오지 오스번(Ozzy Osbourne)이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무대와 음악은 여전히 전 세계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오지 오스번은 영국 버밍엄 출신으로 1968년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결성해 헤비메탈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의 개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솔로 활동 당시 발표한 '크레이지 트레인 Crazy Train', '마마 아임 커밍 홈 Mama, I'm Coming Home' 등 수많은 헤비메탈 명곡은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심어주었고 지금까지도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어둠의 왕자
그는 평생 록에 대한 열정과 팬들의 환호를 외면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대는 그의 삶이었고, 관객의 함성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다. 특히 세상을 떠나기 불과 보름 전인 2025년 7월 6일, 고향 영국 버밍엄 빌라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백 투 더 비기닝(Back to the Beginning)' 공연은 그의 마지막 인사이자 전 세계 록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무대가 됐다.
여러 건강 문제로 거동이 불편했던 그는 보석이 박힌 해골 장식의 검은 왕좌에 앉아 무대에 올랐다. 대부분의 공연을 앉은 채 소화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은 세월과 병마마저 품어낸 한 시대의 전설이 마지막으로 왕좌에 오른 듯한 장면이었다. 한때 '어둠의 왕자(Prince of Darkness)'로 불렸던 그는 그날만큼은 수만 명의 팬들 앞에서 진정한 '록의 황제'로 즉위한 듯했다. 그의 육신은 쇠약해졌지만, 음악과 영혼만큼은 여전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날 공연에는 4만여 명의 팬들이 운집했고, 블랙 사바스 원년 멤버들은 20년 만에 재결합해 '아이론 맨 Iron Man'과 '파라노이드 Paranoid'를 함께 연주했다. 메탈리카, 건즈 앤드 로지스, 슬레이어 등 세계적인 헤비메탈 밴드들도 한자리에 모여 헤비메탈 역사에 바치는 헌정 축제로 만들었다.
심지어 록 음악 애호가로 잘 알려진 배우 잭 블랙도 이날 무대에 올라 오지 오즈번의 명곡 'Mr. Crowley'를 함께 부르며 헌정 공연에 동참했다. 무엇보다 공연 내내 오즈번은 팬들을 향해 "더 크게! 더 크게!(Louder! Louder!)"를 외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들과 호흡했다.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은 결과적으로 록의 전설에 바치는 마지막 인사가 됐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것이 그의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팬들은 그와 다시 만날 날을 믿었고, 오즈번 역시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로 관객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날의 인사는 한 시대를 풍미한 록의 전설이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였다.
이 공연은 그의 아내 샤론 오즈번이 직접 기획했다. 건강 악화로 투어를 취소하면서 팬들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던 오즈번의 오랜 아쉬움을 풀어주기 위해 마련된 무대였다. 공연 수익금은 파킨슨병 연구와 아동병원 등에 기부되며 마지막까지 그의 뜻을 이어갔다. 그리고 불과 16일 뒤인 7월 22일, 오지 오즈번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 딸 켈리 오즈번은 "세상은 가장 위대한 록스타를 잃었지만, 나는 가장 좋은 친구를 잃었다"며 깊은 상실감을 전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이후 이전보다 눈에 띄게 야윈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외신들은 가까운 지인들의 말을 인용해 켈리가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한동안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누구보다 열성적인 아버지"
이 소식을 접하곤 문득 고(故) 신해철이 떠올랐었다. 그는 필자와의 술자리에서 영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며 오지 오즈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무대에서는 박쥐의 머리를 뜯으며 그렇게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펼치던 사람이 알고 보면 자녀 교육에는 누구보다 열성적인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로 치면 이른바 '8학군'을 찾아 자녀들을 교육할 정도로 교육열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며 말 해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당시에는 의외라는 생각에 웃어넘겼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오지 오즈번의 또 다른 얼굴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일화였는지도 모른다. 팬들에게는 시대를 바꾼 록의 전설이었고, 가족에게는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아버지였다.
그래서 딸 켈리 오즈번이 "세상은 가장 위대한 록스타를 잃었지만, 나는 가장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말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켈리는 "세상이 기억하는 록스타 이전에 내게는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한 아빠였다"고 회상했다.
오지 오즈번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그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만 해도 전 세계는 추모의 물결로 가득했다. 음악계와 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했고, '록의 전설'을 향한 애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그의 1주기를 기리는 소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잊힌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삶에 치여 잠시 오즈번에 대한 기억의 잠시 밀려났을 뿐, 그의 음악은 우리의 마음에 여전히 살아 있다. 적어도 내 가슴속에는, 그리고 한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보냈던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여전히 오지 오즈번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거친 기타 리프와 폭발적인 샤우팅에는 한 시대를 바꾼 음악가의 열정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들을 때마다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불러낸다.
전설의 음악은 시간을 이긴다. 그리고 전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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