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죽음을 파헤치는 정신과 의사, 그 이유는?

[넘버링 무비 547] 영화 <파리의 사생활>

 영화 <파리의 사생활> 스틸컷
영화 <파리의 사생활> 스틸컷티캐스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해방된 기분이에요. 담배에서 해방됐고, 선생님에게서도요. 끝이에요."

파리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릴리안(조디 포스터 분)은 9년 동안 상담해 온 환자 폴라(비르지니 에피라 분)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오랜 시간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고 믿었던 그에게 폴라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다.

그날 이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릴리안은 안과 의사인 전 남편 가브리엘(다니엘 오떼유 분)을 찾아가지만 별다른 신체적인 원인은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평소라면 신뢰하지 않았을 최면 치료에까지 몸을 맡긴 그는 그곳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폴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 릴리안은 그렇게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한 환자의 삶과 죽음을 뒤쫓는 사적인 수사에 나선다.

릴리안은 정신과 의사로 오랜 시간 환자들의 말을 들어왔다. 대화를 통해 현재의 상태를 분석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모든 상담 내용은 빠짐없이 녹음했고, 저장된 내용은 환자별로 정리해 왔다. 환자의 무의식과 행동 또한 오랜 시간 그렇게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환자는 그런 그의 방식이 조금도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8년간 받은 상담으로도 끊지 못한 담배를 단 20여 분의 최면 치료 한 번으로 끊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이는 이 짧은 신 하나는 영화 <파리의 사생활>의 진짜 목적을 여는 페이지이자 이후 벌어질 일련의 사건을 투영해 내는 장면이다. '무엇이 타인의 목소리를 정확히 듣는 방식인가?'에 대한 물음이 영화 내부에 감춰져 있다.

02.
오랜 기간 환자였던 폴라의 죽음은 이 질문을 관객 앞으로 끌어다 놓는다. 약을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라 알려오는 딸 발레리(루아나 바야미 분)와 달리 릴리안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다. 그에게는 폴라가 자살을 선택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상담자로서의 믿음이 있다. 환자가 자신의 판단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이 사실이 될 경우,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상담과 판단은 거짓이 되는 셈이니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지점의 확신이 폴라를 향한 신뢰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영화의 동력이다. 환자를 위한 의심인 동시에 자신의 전문성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 이제 릴리안의 사적인 수사는 폴라의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폴라의 장례식을 다녀온 이후 릴리안의 몸에서는 이상한 반응이 하나 시작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 그는 자신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단순히 신체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타인으로부터는 억압된 감정을 읽어내고자 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눈물이라는 증거를 확인하고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셈이다. 전 남편 가브리엘은 의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한다. 릴리안의 주장과 달리, 눈물은 신체가 아닌 감정으로부터 발현되는 증상이다.

이 과정은 직전의 문장을 다시 한번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지만, 단순한 결과 도출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눈물은 아직 언어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실을 신체가 대리 발설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그 이상의 층위에서, 릴리안이 9년의 상담에도 불구하고 폴라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자 그의 죽음에 자신이 일부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의미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직업적 권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인물의 태도에 반한 신체적 애도다. 이제 자신의 공간에서 언제나 환자를 바라보던 인물은 관객으로부터 관찰되는 대상의 자리로 옮겨온다. 처음으로 자신의 무의식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릴리안으로 인해 영화의 내러티브 역시 합리적 추론의 영역을 조금씩 이탈하는 것이다.

 영화 <파리의 사생활> 스틸컷
영화 <파리의 사생활> 스틸컷티캐스트

03.
"죽음이라고 말했지만, 살인일 수도 있어요."

릴리안이 비과학적 요법으로 무시했던 최면술사를 직접 찾아가는 장면은 그 출발점이 된다. 눈물의 원인도 찾지 못하고 폴라의 죽음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자, 그는 자신이 경멸했던 방법을 선택한다. 최면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나치 점령기의 연주회장. 릴리안을 둘러싼 현실의 인물들이 과거로 전이되고, 이들은 모두 그가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인 사랑과 배신, 죽음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이야기로 다시 그려진다.

이 최면 시퀀스가 실제 전생의 기억인지, 최면이 효과적이었는지는 그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과정이 릴리안의 심리 안에 가장 견디기 쉬운 서사,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만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이 또한 자신이 폴라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닌 누군가 그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더 쉽게 믿도록 만드는, 무의식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각본에 가깝다.

이런 믿음 아래에서 개인적인 수사가 진행될수록 릴리안은 타인을 위한 정신과 의사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일종의 탐정이 되기 시작한다. 익명으로 걸려 오는 전화와 차량에 이루어지는 물리적 테러, 진료실 무단 칩입과 같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며 그 의심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폴라의 남편 시몽(마티유 아말릭 분)이 그의 친척이 남긴 재산을 노리고 두 사람 모두를 살해했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기 확신에 매몰된 한 사람의 절박한 어리석음으로 바꿔 나간다.

04.
한편, 릴리안의 가족인 전 남편 가브리엘과 아들 줄리안(벵상 라코스테 분)은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그의 내면과 동기를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먼저 줄리안과의 관계에 있어 엄마 릴리안은 일방적인 사람으로 읽힌다. 두 사람의 모습이 처음 한 프레임 속에 놓이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아들의 집을 찾은 릴리안은 자신의 용건만 해결한 뒤 어린 손자의 얼굴도 한번 보지 않고 떠나고자 한다. 최면에서 아들이 자신을 탄압하는 민병대원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현실의 실제 관계로 대입하는 것 역시 그렇다. 아들의 말이나 지금까지의 관계성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상징성으로 타인을 재단한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해석을 실제 상대보다 더 신뢰하는 모습이다.

전 남편인 가브리엘은 반대의 위치에 있다. 그는 릴리안의 사적인 수사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그 추리를 돕고자 하는 인물이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신뢰가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혹은 여전히 사랑하는 대상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동안 그 곁에 남아 있고자 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술에 취해 전생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반박하지 않고, 시몽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집을 무단으로 수색하는 일에도 기꺼이 동참한다. 이는 오랜 시간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도 제대로 듣지 못하던 릴리안과 다른 모습이다. 가브리엘이 보여주는 태도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릴리안이 새롭게 배워야 할 경청의 방식과 닮아 있다. 기록하고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를 공감하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 말이다.

 영화 <파리의 사생활> 스틸컷
영화 <파리의 사생활> 스틸컷티캐스트

05.
"환자들이 다 진실만 말할 것 같아요?"

수사의 끝에서 릴리안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폴라의 남편인 시몽은 상상했던 살인자가 아니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폴라의 죽음을 타살로 규정하려 했던 것은 이 모든 사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였음이 드러난다. 물론 의사라고 해서 환자의 모든 행동과 비극을 예측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른 가능성은 배제한 채 자신의 상담에만 매달렸을 환자가 품고 있던 위험과 불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릴리안은 진료실을 다시 정리하고 환자를 맞이한다.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는 상담 내용을 녹음하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영화 <파리의 사생활>이 비판하고자 했던 지점, 문제가 되는 것은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해했다고 여기는 태도를 그 역시 고쳐 나가고자 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저장되어 있으니 언제든 다시 불러내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정작 눈앞의 사람을 지워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릴리안은 지금 이 시간 속의 목소리를 붙잡고자 한다.
영화 파리의사생활 조디포스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