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입국심사장서 벌어진 의외의 사건, 이 말을 곱씹었다

[극장가는 길] 연극 <입국심사>

연재 '극장가는 길'은 어둠이 번지는 저녁, 극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객석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며 교차하는 숨소리, 조명기 점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세계 변화의 순간을 길어내고 이를 기록한다. 나는 지역의 연극과 축제의 현장을 묵묵히 걷고 보면서 그 무대의 잔상과 스쳐간 감정과에 대해 적으며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나누려 한다.[기자말]
초연 공연을 관람한다는 설렘을 가득 품고 장우산 하나 챙겨 열차를 타고 상경한다.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밤새 쏟아지던 폭우도 한풀 꺾였다.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극단 '즉각반응'이 선보인 신작 <입국심사>(하수민 작·연출)의 첫 무대를 그렇게 마주했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하수민과 '즉각반응'의 <입국심사>는 이전 작품과의 연속선상에서 하나의 굵은 시대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단지 작가의 이국 공항 입국심사장에서의 불쾌한 경험을 극화한 작품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이 연극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동시대적 문제의식 속에서 국경과 공항, 심사실이 어떤 정치적 장치로 기능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하수민 연출의 <육쌍둥이> <새들의 무덤> <엔드 월>로 이어온 '한국현대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입국심사>는 거대한 자본국가의 시스템과 사회구족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속박되고 옥죄어지는지, 그리고 사소한 개인의 삶이 사회 시스템과 결부되며 드러내는 폭력적 단면을 응시한다.

수평선의 의미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조훈성

극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후면의 거대한 금속성 백월이다. 상부에서 하부로, 황금빛에서 깊은 청색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이 수평의 화면은 하늘과 바다, 석양, 빛과 어둠의 경계를 한 장에 압축해 놓은 듯하다. 이 이미지는 작품 내내 '수평선'의 은유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국경이나 경계, 혹은 임계치로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드는 추상적 무대 배경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수평선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의 중첩은 그 상징적 의미를 탐색하게 만들며, 이는 작품의 정서적 공감과 주제 의식을 동시에 환기한다. 그래서 그 수평선은 위로가 될 수도, 미지로 남을 수도, 혹은 그 너머로 밀려난 이들의 자리를 은폐하는 스크린이 될 수도 있다.

<입국심사>의 시공간은 익히 알고 있는 공항을 배경으로 삼는다. 다른 세계, 영역의 통과의 장소지만, 극중 입국심사실은 통과할 수 없는 제한구역이자 동시에 통과가 유예되는 역설적인 영역이다.

극중 재상(장재호 분)은 서류상 '정상적인' 여행자다. 그러나 입국심사관의 작은 의심하나만으로 그는 별실로 격리된다. 그곳에서 자신의 생애 전반을 스스로 변명하듯 진술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심문에 가까운 심사 질문은 직업, 가족관계, 병력, 재정 상태, 과거의 범죄 이력은 물론, 심지어 성적 지향까지 낱낱이 밝혀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차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공항은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완전히 드러나는 장치로 우리가 익히 경험한 출입국 공간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 장소로 전환된다.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이진하

이 이질적 공간에서 '예외상태'에 놓인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객은 심사관이 아니라 함께 입국 수속을 밟는 이들과 같은 위치에 놓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말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한 '위험인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감벤의 '예외상태' 개념을 빌리자면, 현대의 주권 권력은 비상사태를 이유로 법질서를 정지시키고, 그 정지 상태 자체를 하나의 규범으로 상설화하며, 정상 상태에서도 그 예외를 지속적으로 작동시킨다. 그는 예외상태가 점점 더 빈번하게 선포되고 확대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난다고 경고한다.

극 중 공항의 입국심사실은 바로 이러한 예외상태가 일상으로 제도화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평범한 일반인 '재상'은 더 이상 권리를 지닌 시민이 아니라, 언제든지 추방될 수 있는, 그저 심사 대상인 잠재적 위험의 '몸'으로 바뀐다.

심사 과정은 '자국 보호'와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처럼 입국심사실은 법의 이름을 빌리지만 법의 외부에 있는 공간, 다시 말해 권력의 투명성이 요구되지 않는 비가시적 영역으로 연극은 이 예외의 공간을 조명한다. 이로써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인권 박탈이 용인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구조적 폭력에서 주관적 폭력으로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이진하

<입국심사>는 '폭력'을 논하면서 흔히 우리가 뉴스 화면으로 보는 물리적 폭력(전쟁, 테러, 폭동, 범죄)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객관적·구조적 폭력을 가시화 한다.

구조적 폭력은 불평등한 제도와 규칙 속에서, 아무도 직접 때리지 않지만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 상태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초반부의 질문 세례는 이 구조적 폭력이 얼마나 매뉴얼화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심사관의 질문은 한 개인을 규격화된 항목으로 분절해 점검하는 관료적 언어에 불과하지만, 그 언어는 개인의 존엄과 서사를 서서히 침식된다.

무대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재상의 죽은 아들이 앞서 버킷리스트 영상을 통해 보여지나, 실제 무대에서는 재상, 경찰, 통역사. 여기에 CCTV로 상황을 지켜보는 또 다른 경찰까지 포함하면 네 인물의 구도다. 이들의 신분 설정은 흥미롭다. 경찰은 아시아계 입양자, 재상을 돕는 통역사 여인은 이민자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국가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에 선 주변인들이다.

이러한 배치는 국경을 감시하는 자와 그 국경을 통과하려는 자 사이의 구분선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또한 하수민 작가가 밝히고 있는 리서치 사례에서 다른 입국심사실의 사망 사건 역시 쉽게 봐서도 안 된다. 입국 과정에서 일어난 과실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끝내 국가가 사과하지 않는 사례는 바로 이 '애도'의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낸다.

작품은 재상의 두려움과 트라우마 속에 그 애도 가능성에 대한 것을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미 전작인 <새들의 무덤>과 <엔드 월>에서 이러한 '애도'의 접근의 층위가 쌓여있는 상태에서, '애도할 가치'가 있는 '어떠한 삶'에 대한 인정 투쟁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즉, 애도 되어야 할 삶이 애도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황, 입국심사대는 바로 이러한 애도 가능성이 구획되어지는 고도의 정치적 장치가 된다.

어느 국적, 어느 피부색, 어느 계급의 죽음은 그저 질문지 또는 뉴스의 산재 숫자로 소비될 뿐, 입국심사대에서는 애도할 얼굴을 가질 수 없다는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재상이 말을 통역하는 여인이 중요한 인물이 된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언어를 통역해 중개하는 기능인에 국한되었지만, 점차 재상의 내력과 가족사에 감응하면서 정서적 연대로 변화하는 인물이 되서다. 즉 애도 불가능성이 가능성으로 전환되면서 극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희망적 극적 결말의 단초를 마련한다.

괜찮을 거라 말해요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이진하

무대의 백월은 장면에 따라 색채와 명도를 달리하며, 때로는 실시간 영상 투사의 스크린으로 전환된다. 입국심사실에서의 취조 촬영 카메라는 배우의 움직임을 팔로우 샷을 추적하고, 그 클로즈업이 투사되면서 극적긴장감으로 고조시킨다. 관객을 인물의 표정을 근접거리에서 면밀하게 '바라보는 자'이자 '감시 화면을 공유하는 자'의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러한 이중의 시선 구조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감시 체제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또 이 이중의 무대 배경막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을 형상화해낸다. 재상이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이 수평선은, 아들 아성이 생전에 꿈꾸었던 버킷리스트, '세상에서 가장 맑고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던지는 것'의 완성을 상징한다. 이러한 감동적인 '치유'가 작품이 구축한 비판적 에너지를 급격히 소거해버리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다.

수평선이 재상 개인에게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약속의 완성일 수 있으나, 앞서 국경, 입국심사대에서 배제된 수많은 타자들의 삶을 일거에 신뢰와 포용의 지평으로 투사하는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수평선은 그 현실을 떠안은 채로 어디까지가 우리이고, 어디부터가 타자인가를 다시 묻게 되는 여운을 남긴다. 경계가 아니라 만남의 공간이라고 수평선을 생각하면서도 재상의 말처럼, "(수평선을) 제대로 본 적 없는 것 같다"는 대사를 몇 번이고 곱씹게 된다.

초연 무대에서 세 배우의 연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단단히 지탱한다. 재상 역을 맡은 '장재호'는 불합리한 심사에 분노하면서도 죽은 아들을 위한 애도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차별과 억압을 분노를 삼키는 인물의 미세한 표정과 떨림을 잘 보여준다.

심사 경찰 역의 '이나리'는 공무집행자의 중립적 톤에서, 폭력의 실행자로, 다시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로의 이동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통역사 역의 '이정미'는 매뉴얼을 충실히 수행하는 통역사에서, 재상의 내력과 사연에 감응하는 공모자로 옮겨가는 정서적 변화를 섬세하게 구현한다.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작·연출_하수민
드라마터그_이성곤
출연_장재호, 이정미, 이나리
무대디자인_남경식
즉각반응 하수민 입국심사 예외상태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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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