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
이진하
<입국심사>는 '폭력'을 논하면서 흔히 우리가 뉴스 화면으로 보는 물리적 폭력(전쟁, 테러, 폭동, 범죄)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객관적·구조적 폭력을 가시화 한다.
구조적 폭력은 불평등한 제도와 규칙 속에서, 아무도 직접 때리지 않지만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 상태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초반부의 질문 세례는 이 구조적 폭력이 얼마나 매뉴얼화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심사관의 질문은 한 개인을 규격화된 항목으로 분절해 점검하는 관료적 언어에 불과하지만, 그 언어는 개인의 존엄과 서사를 서서히 침식된다.
무대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재상의 죽은 아들이 앞서 버킷리스트 영상을 통해 보여지나, 실제 무대에서는 재상, 경찰, 통역사. 여기에 CCTV로 상황을 지켜보는 또 다른 경찰까지 포함하면 네 인물의 구도다. 이들의 신분 설정은 흥미롭다. 경찰은 아시아계 입양자, 재상을 돕는 통역사 여인은 이민자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국가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에 선 주변인들이다.
이러한 배치는 국경을 감시하는 자와 그 국경을 통과하려는 자 사이의 구분선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또한 하수민 작가가 밝히고 있는 리서치 사례에서 다른 입국심사실의 사망 사건 역시 쉽게 봐서도 안 된다. 입국 과정에서 일어난 과실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끝내 국가가 사과하지 않는 사례는 바로 이 '애도'의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낸다.
작품은 재상의 두려움과 트라우마 속에 그 애도 가능성에 대한 것을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미 전작인 <새들의 무덤>과 <엔드 월>에서 이러한 '애도'의 접근의 층위가 쌓여있는 상태에서, '애도할 가치'가 있는 '어떠한 삶'에 대한 인정 투쟁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즉, 애도 되어야 할 삶이 애도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황, 입국심사대는 바로 이러한 애도 가능성이 구획되어지는 고도의 정치적 장치가 된다.
어느 국적, 어느 피부색, 어느 계급의 죽음은 그저 질문지 또는 뉴스의 산재 숫자로 소비될 뿐, 입국심사대에서는 애도할 얼굴을 가질 수 없다는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재상이 말을 통역하는 여인이 중요한 인물이 된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언어를 통역해 중개하는 기능인에 국한되었지만, 점차 재상의 내력과 가족사에 감응하면서 정서적 연대로 변화하는 인물이 되서다. 즉 애도 불가능성이 가능성으로 전환되면서 극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희망적 극적 결말의 단초를 마련한다.
괜찮을 거라 말해요
▲극단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공연이미지이진하
무대의 백월은 장면에 따라 색채와 명도를 달리하며, 때로는 실시간 영상 투사의 스크린으로 전환된다. 입국심사실에서의 취조 촬영 카메라는 배우의 움직임을 팔로우 샷을 추적하고, 그 클로즈업이 투사되면서 극적긴장감으로 고조시킨다. 관객을 인물의 표정을 근접거리에서 면밀하게 '바라보는 자'이자 '감시 화면을 공유하는 자'의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러한 이중의 시선 구조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감시 체제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또 이 이중의 무대 배경막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을 형상화해낸다. 재상이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이 수평선은, 아들 아성이 생전에 꿈꾸었던 버킷리스트, '세상에서 가장 맑고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던지는 것'의 완성을 상징한다. 이러한 감동적인 '치유'가 작품이 구축한 비판적 에너지를 급격히 소거해버리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다.
수평선이 재상 개인에게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약속의 완성일 수 있으나, 앞서 국경, 입국심사대에서 배제된 수많은 타자들의 삶을 일거에 신뢰와 포용의 지평으로 투사하는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수평선은 그 현실을 떠안은 채로 어디까지가 우리이고, 어디부터가 타자인가를 다시 묻게 되는 여운을 남긴다. 경계가 아니라 만남의 공간이라고 수평선을 생각하면서도 재상의 말처럼, "(수평선을) 제대로 본 적 없는 것 같다"는 대사를 몇 번이고 곱씹게 된다.
초연 무대에서 세 배우의 연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단단히 지탱한다. 재상 역을 맡은 '장재호'는 불합리한 심사에 분노하면서도 죽은 아들을 위한 애도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차별과 억압을 분노를 삼키는 인물의 미세한 표정과 떨림을 잘 보여준다.
심사 경찰 역의 '이나리'는 공무집행자의 중립적 톤에서, 폭력의 실행자로, 다시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로의 이동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통역사 역의 '이정미'는 매뉴얼을 충실히 수행하는 통역사에서, 재상의 내력과 사연에 감응하는 공모자로 옮겨가는 정서적 변화를 섬세하게 구현한다.
즉각반응의 <입국심사>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작·연출_하수민
드라마터그_이성곤
출연_장재호, 이정미, 이나리
무대디자인_남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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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