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한국이 되길"... 지구 반대편 노병이 던진 묵직한 울림

[TV 리뷰] MBC에브리원 '위대한 가이드 3'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만나다

단순한 여행 예능인 줄 알았으나, 여정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육중한 부채감이자 선배 방송인으로서의 깊은 반성이었다. MBC에브리원 예능 프로그램 '위대한 가이드 3'가 에티오피아 투어를 이어가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 방송에서 박명수, 김대호, 최다니엘, 이무진으로 구성된 가이드 팀은 남부 오모강 유역으로 찾아가 반나족 등 현지 원주민들을 만나며 에티오피아의 원초적인 자연과 삶의 양식을 경험한 뒤,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와 여정을 이어갔다.

대개 도시 투어라 하면 화려한 명소나 맛집 탐방으로 채워지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디스아바바에 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 김대호의 제안으로, 가이드 팀은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 공원'을 찾았다. 출연진들은 공원 내에 높이 세워진 참전기념탑 앞으로 다가가 묵념을 올리며, 70여 년 전 낯선 땅에서 피 흘린 영웅들의 넋을 기렸다. 이어 현지 교민의 따뜻한 안내와 도움 덕분에, 공원 현장에서 백전노병인 테스파예 아스마마우님과 메코논 데레세님 두 분을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 용사들 아디스아바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위대한 가이드 출연진들이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 경의를 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 용사들아디스아바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위대한 가이드 출연진들이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 경의를 표하고 있다MBC플러스

화면을 채운 것은 노병들이 던지는 나직하지만 강렬한 메시지였다. "한국도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줬다"라며 도리어 감사를 표하는 메코논 데레세, 그리고 "내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의 한국이었으면 좋겠다"라며 눈시울을 붉힌 채 떨리는 손으로 거수경례를 올리는 테스파예 아스마마우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30년 전 선배 방송인이 놓쳤던 현장의 진실

사실 필자는 1996년에 에티오피아 남부 오모강 유역의 반나족 등 원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한국 방송가에 해외 로케이션 붐이 일면서 오지의 원주민들을 찾아가 이색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큰 유행을 탔기 때문이다.

이번 제작진이 앞선 회차들에서 보여준 오모강 원주민 방문 동선은 30년 전 필자의 경험과 포개졌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30년 전의 필자는 그저 오지 원주민을 소개하는 방송 트렌드에만 집착하느라, 그곳에 우리를 위해 피 흘린 참전용사들이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어떤 핍박을 받으며 숨죽여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촬영을 위해 직접 찾았던 현장에서조차 그 비극적인 진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남아있다.

반면 이번 후배 제작진들은 달랐다. 선배 세대가 놓쳤던 참전용사들의 비극적인 역사와 현실을 미리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수도 아디스아바바 도시 투어 일정 중에 망설임 없이 참전용사 기념 공원으로 달려가 기념탑에 참배하고 노병들을 만났다. 오랜 세월 가려져 있던 노병들의 진실을 마주하고 최선의 예우를 다하는 후배들의 성숙한 제작 태도를 화면으로 보면서, 고마움과 동시에 선배로서의 미안함과 묵직한 회한이 교차했다.

아무 이해관계 없이 달려온 나라, 전쟁 직후 피어난 '보화원'

오늘날 우리에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혹은 커피의 고향으로 먼저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70여 년 전 에티오피아는,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나라였다.

한국전 참전 에티오피아 부대 '강뉴부대' 에티오피아 황실친위대였던 '강뉴부대'는 21일간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한국전에 참전하였으며 그들은 전쟁내내 죽음을 불사하여 엄청난 전적을 거두었다.
한국전 참전 에티오피아 부대 '강뉴부대'에티오피아 황실친위대였던 '강뉴부대'는 21일간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한국전에 참전하였으며 그들은 전쟁내내 죽음을 불사하여 엄청난 전적을 거두었다.MBC플러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결단했다. 과거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 침략을 당했을 때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큰 아픔을 겪었던 그는 "침략당한 이웃이 있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오직 인류애와 국제 정의를 위해 가장 아끼던 최정예 황실 친위대를 파병했다. 이 부대의 이름이 바로 '초전박살'을 뜻하는 강뉴 부대다.

강뉴 부대는 21일 동안 바다를 건너와 총 6037명이 참전해 화천, 철원 등 강원도 산악 지대에서 목숨 바쳐 싸웠다. 대소 전투를 포함해 253전 253승이라는 기적 같은 무패 신화를 썼으며, 단 한 명의 포로도 남기지 않은 채 전사자의 시신까지 수습해 냈다.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들의 또 다른 헌신 '보화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휴전 후 바로 귀국하지 않고 한국의 재건사업에 참여하였으며 그 와중에 십시일반 월급을 모아 전쟁고아들을 위한 보육원 '보화원'을 세웠다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들의 또 다른 헌신 '보화원'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휴전 후 바로 귀국하지 않고 한국의 재건사업에 참여하였으며 그 와중에 십시일반 월급을 모아 전쟁고아들을 위한 보육원 '보화원'을 세웠다MBC플러스

특히 용맹함 뒤에 숨겨진 이들의 위대한 온정은 방송을 통해 더욱 묵직한 감동을 안겼다. 강뉴 부대원들은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1956년까지 한반도에 남아 전후 복구를 도왔다. 특히 이 주둔 기간 동안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봉급을 모아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직접 세웠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한국의 어린 고아들을 거두어 사랑으로 돌본 것이다. 피 흘린 전쟁터 직후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보여준 이들의 숭고한 인류애는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유산이다.

잊혀가는 통일의 염원, 지구 반대편 노병이 일깨운 경종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간 영웅들의 삶은 잔인하리만큼 불행했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은 이들을 반역자로 몰아 훈장과 재산을 몰수했고, 이들은 외곽 정착지로 쫓겨나 신분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다행히 1991년 사회주의 정권 붕괴 이후 명예가 회복되었고, 우리 정부와 민간 NGO도 영예금 지급과 주거 개선, 후손 장학 사업 등을 통해 보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의 비극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험난한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의 비극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험난한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MBC플러스

무엇보다 이번 방송에서 필자를 가장 무겁게 짓누른 것은 노병이 건넨 통일에 대한 열망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이 너무나 희박해지고 옅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지구 반대편의 이방인 노병이 "죽기 전에 하나의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간절히 통일을 말하는 모습을 보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분들은 청춘을 바쳐, 목숨을 걸고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를 흘린 당사자들이다. 자신들이 흘린 피와 희생의 가치가 완전히 완성되는 길이 바로 '한반도의 통일'이기에, 세월이 흘러도 그 염원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계신 것이리라. 당사자인 우리가 정작 잊어가고 있던 그 절박한 염원을, 멀리 떨어진 노병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던 셈이다.

이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국가일수록, 과거 우리가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았던 그 위대한 도움을 참전용사와 그 나라에 인류애적인 지원으로 되갚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보여줄 수 있는 품격 있는 보은이자, 인류 공통의 의리다.

이 무거운 여정 뒤에 이어지는 이번 주 7화 방송에서는 한층 더 깊어진 에티오피아의 매력이 펼쳐진다. 7월 21일 오늘 밤 9시 30분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되는 위대한 가이드 시즌3 7화 에서는 아프리카의 활화산 에르타 알레로 떠나기 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아프리카 최대 규모 시장인 메르카토를 방문하는 등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여행 여정이 소개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
위대한가이드3 김대호 이무진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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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