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피언스 모로코 콘서트
염동교
2015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잊기 힘들다. 그룹의 구심점 키스 플린트 사망 전 프로디지의 빅비트 세례를 담뿍 받았고, ETF 페스티벌의 주인장 서태지의 퍼포머로서의 위상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마지막 정규작인 2024년도 <콰이어트 나이트(Queit Night)> 발매할 즈음이라 '크리스 말로윈(Christmalo.win)'같은 당시 신곡을 들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한때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악틱 몽키스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다가온 영국 록밴드 쿡스가 보석 같은 '정크 옵 더 하트(Junk of the Heart)'를 선물했다.
무엇보다 전갈 형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캔과 노이 등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크라우트록 일람에 빠져들기 전 "저먼 록=스콜피언스" 등식이 성립할 만큼 무게감이 컸던 이들이 2015 펜타포트에 출연했던 것. 군 전역 후 첫 여름 축제라 체력도 쌩쌩해 곱절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당시 예순일곱이던 프론트퍼슨 클라우스 마이네의 목소리는 어찌 예전과 똑같으며 기타리스트 루돌프 솅커의 몸은 저리 탄탄한지 내내 감탄했다.
비교적 문화 인프라가 튼실한 모로코의 경제 수도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제19회 재자블랑카. 2026년 7월 2일부터 11일까지 3개의 스테이지에서 50팀 이상이 출연하는 이 대형 음악 축제의 둘째 날 대표 출연자로 스콜피언스가 강림했다. 이역만리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근 16년 만에 이들과 재회할 줄이야.
30분 지연에 청중의 야유가 속출했지만 "월드컵 승리를 축하합니다"란 마이네의 한마디에 모로코 관중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2026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캐나다와의 경기로 페스티벌 첫 무대가 지연될 만큼 모로코의 축구 사랑은 강렬했는데, 다행히 캐나다를 3대 0으로 꺾은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덕에 쾌활한 분위기에서 축제가 지속됐다.
냉전 종식,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한 곡
▲스콜피언스 모로코 콘서트
염동교
1984년 정규 9집 히트작 < 러브 앳 퍼스트 스팅(Love at First Sting) >에 실린 오프닝 곡 '커밍 홈(Coming Home)'에서 서글픔이 감돌았다. 쌩쌩했던 2015년도 따지고 보면 11년 전 아닌가. 성대는 생각보다 빨리 노쇠화한다. 그럼에도 마이네는 관록과 여유로 100분 쇼를 끌고 나갔는데, 현주소를 인지한 채 힘을 쓸 때와 뺄 때를 정확하게 나눴다.
기악은 육중했다. 마이네까지 기타를 든 채 네 구성원이 나란히 서서 유기체 같은 동작을 선보인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와 리드 기타리스트 마티아스 잡스의 토크 박스가 꿈틀댄 '더 주(The Zoo)', 모터헤드에서 활약했던 스웨덴 출신 미키 디의 드럼이 천둥 같았던 '스팀록 피버(Steamrock Fever)는 하드락의 교본이었다.
*토크 박스: 연주자의 음성을 악기 소리로 바꾸어주는 음향 장치
완급조절. 애절한 락발라드를 다수 보유한 스콜피언스에게 공연 분위기를 자유로이 전환할 무기다. 1990년 빌보드 싱글차트 44위로 미국시장에서도 선전했던 '센드 미 언 앤젤(Send Me an an Angel)에 이은 '윈드 오브 체인지(Wind of Change)'가 백미였는데 냉전 종식과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이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모로코 관객이 모두 따라 불렀다.
▲스콜피언스 모로코 콘서트염동교
주다스 프리스트의 '비포 더 돈(Before the Dawn)'과 딥 퍼플의 '솔져 오브 포춘(Soldier of Fortune)처럼 락발라드는 헤비메탈 밴드의 국내 인지도를 판가름했다. 이 명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콜피언스 스틸 러빙 유(Still Loving You)'가 정규 셋리스트 끝자락에 있었다. 비지스의 동명이곡만큼 국내에서 사랑받는 '할리데이(Holiday)'와 자극적인 앨범 아트와 더불어 음악적 절정기를 가리킨 1979년 정규 6집 < 러브드라이브(Lovedrive) > 속 파워발라드 '얼웨이즈 섬웨어(Always Somewhere)'같은 대표곡들이 공연 목록에서 빠진 게 못내 서운했다.
여태껏 이 노래를 언급 안 한다고? 스콜피언스 팬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락 유 라이크 어 허리케인(Rock You Like a Hurricane)'가 앙코르로 연주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협연 버전인 '허리케인 2000(Hurricane 2000)'도 유명한 이 곡을 통해 스콜피언스는 다시금 세계적으로 알려진 공룡 밴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2022년 정규 19집 < 락 빌리버(Rock Believer) >로 창작도 멈추지 않는 스콜피언스는 저먼 록의 자존심과 더불어 영국의 롤링 스톤스, 호주의 에이씨디씨처럼 후배에게 귀감이 되는 장수 밴드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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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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