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각) 미국 애틀란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월드컵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의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2-1로 승리했다. 경기 후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가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불혹을 바라보는 39세라면, 프로 축구선수에게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나이때까지 선수생활을 잘 이어가는 사례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은퇴가 가까운 노장들로서 흔히 '전성기는 지났다'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축구의 신'에게는 예외다. 세계 최고의 팀과 선수들이 모여 경쟁하는 월드컵 무대에서, 39세의 나이에도 젊은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압도하는 축구계의 '불로불사' 리오넬 메시의 존재 때문이다.
메시는 소속팀 아르헨티나를 2026년 북중미월드컵 결승에 다시 한번 올려놓으며 지난 2022년 카타르 대회에 이어 월드컵 2연패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아르헨티나는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에서 잉글랜드에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메시는 19세였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앳된 얼굴로 처음 월드컵 무대에 등장했다. 이후 총 6번의 본선무대를 빠짐없이 개근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하며 첫 골든볼을 수상했다. 2022년 카타르대회에서는 7골을 몰아치면서 4전 5기 만에 프랑스를 꺾고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생애 두 번째 골든볼까지 품에 안았다.
사실 많은 이들이 카타르월드컵을 메시의 '라스트 댄스'로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메시는 당시 이미 35세였고 이미 월드컵과 코파아메리카 등 출전할 수 있는 모든 대회를 정복하면서 선수로서 더 이룰 것이 없는 GOAT(역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시는 4년 뒤 북중미월드컵에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장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수염이 덥수룩하고 주름도 늘어난 전형적인 아저씨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축구에서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흔히 이 나이대의 베테랑이라면 기량보다는 후배들을 받쳐주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지만, 메시는 여전히 아르헨티나의 대체불가한 에이스이자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다.
메시는 이번 대회에서도 다시 한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7경기에서 쌓아올린 공격포인트만 무려 8골 4도움이다. 득점은 킬리안 음바페(프랑스)와 함께 공동 선두이고, 도움 부문에서도 선두 마이클 올리세(프랑스, 5개)를 단 1개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메시가 3번째 골든볼(최우수선수)을 예약했으며, 결승전 활약에 따라 득점왕과 도움왕까지 모두 싹쓸이할 수 있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메시는 매경기마다 이미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역대 최다 공격포인트(33개) 기록을 늘려가고 있다. 메시는 현재 월드컵에서만 21골 12도움을 기록중이다. 카타르 대회부터 이어온 월드컵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은 준결승 잉글래드전까지 무려 11경기 연속 연장했다.
이번 대회 직전까지 13골 8도움을 기록했던 메시는 종전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 16골)가 보유하고 있던 월드컵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메시에 이어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20골)가 한 골차로 통산 득점 기록을 추격하고 있다. 월드컵 최다도움도 이번 대회까지 아르헨티나 대선배인 고 디에고 마라도나(8개)와 공동 1위였으나, 이제는 격차를 4개나 벌리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메시의 나이를 잊은 듯한 맹활약은, 역대 최고의 재능과 자기관리, 그리고 전술적인 조화가 뒷받침된 결과다. 사실 메시의 신체능력과 활동량은 전성기보다는 확연히 느려진 게 사실이다. 메시의 플레이를 보면 수비가담이나 전압방악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공이 오지 않았을 때는 그라운드를 산보하듯 어슬렁거리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영국 BBC는 메시가 이번 대회 활동량을 분석하며 준결승까지 이동 거리의 절반에 이르는 약 47%를 뛰지 않고 '걸어다니며' 플레이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이런 메시의 플레이스타일을 보며 '병장축구', '산책축구'리는 조롱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메시는 알고보면 20대 때부터 비슷한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해왔다. 메시가 몸담았던 클럽과 대표팀의 감독들은, 선수의 왜소한 피지컬 한계와 체력 부담을 고려하여 전술적으로 궃은 일은 팀동료에게 분산시키고 메시가 최대한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전술적 시스템을 수립했다.
메시는 자신이 공을 잡고 있지 않았을 때도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을 확인하며 수비의 약점이나 침투할 수 있는 빈공간을 파악한다. 공수전환 시에는 전광석화같은 라인브레이킹과 날카로운 슈팅으로 한순간에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해낸다. 팀 동료들도 이러한 메시의 능력을 잘 알고 있기에 에이스의 역할을 존중하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또한 메시를 더욱 위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득점만이 아니라 언제든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메시는 상대의 수비가 거세거나 볼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 하프라인 부근까지 내려와 공을 이어받은 뒤 공격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패스력을 갖췄다. 메시가 상대의 집중견제에 시달려 직접 득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끊임없이 상대 수비를 흔들며 경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다.
메시의 이런 장점이 잘 발휘된 대표적인 경기가 지난 잉글랜드전이었다. 메시는 전반전까지는 중앙에서 플레이했지만 잉글랜드의 치열한 압박에 막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했고, 메시가 꽁꽁 묶인 아르헨티나는 전반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10분 앤서니 고든의 선제골로 잉글랜드가 먼저 리드를 잡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감독은 수비수를 추가로 투입하며 일찍 라인을 내리고 리드를 지키는 선택을 내렸다. 이는 오히려 양팀의 팽팽하던 공수 균형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 쪽으로 경기 주도권이 넘어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메시는 이때부터 중앙에서 벗어나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패스'로 경기를 지배하는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의 경기운영을 펼쳤다. 후반의 메시는 이날 슛보다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집중했다. 주로 오른쪽 측면에서 수비수를 흔들며 돌파, 패스, 크로스로 다양한 변주로 상대를 혼란시켰다. 메시를 의식하다보니 잉글랜드 수비는 침투하는 다른 선수들에 대한 방비가 느슨해지면서 지속적으로 슈팅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잉글랜드전에서 메시는 도움 2개를 비롯하여, 빅찬스 창출 4회, 드리블 성공 9회, 크로스 시도 9회를 기록했다. 이는 잉글랜드 선수단 전체가 이날 기록한 빅찬스와 드리블 성공 횟수를 모두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사실상 메시가 잉글랜드 문전 근처에서 공을 잡을 때마다 위협적인 장면이 만들어졌다. 왜 불혹의 나이에도 메시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장면이었다.
이는 라이벌로 꼽히던 호날두(포르투갈)가 이번 북중미월드컵에서 부진한 플레이로 포르투갈 탈락의 원흉이 된 장면과 비교된다. 호날두는 나이를 먹고 노쇠화된 이후로는 '받아먹는 득점'에만 특화되어 자신에게 공이 연결되지 않았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선수로 전락한 반면, 반면 메시는 신체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거나 동료들을 활용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통하여 나이를 먹어서도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이다. BBC는 '젊은 시절의 메시가 속도와 드리블로 축구를 지배했다면, 지금의 메시는 공간을 읽는 능력과 완벽한 판단력으로 새로운 방식의 지배를 이어가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시는 이제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위한 마지막 한 관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결승 상대는 유럽을 대표하는 또다른 강호 스페인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두고 많은 이들은 메시의 월드컵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경력에 있어서 정말로 '라스트 댄스'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축구의 신'이 또 한 번 월드컵의 정상에서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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