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에서 생존 투쟁, 카메라가 그려낸 난민의 삶

[영화 리뷰]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청년 술레이만은 파리에서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며 생계를 이어 간다. 그는 이른바 난민으로 불리는 미등록 임시 이주민이다. 프랑스에서 합법적인 거주권을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서류와 설득력 있는 사연을 갖추고, 1대1 면접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바로 그 심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일이 하나둘 꼬이기 시작한다.

심사에 합격하려면 완벽해 보이는 '가짜 이야기'를 꾸며 내고, 그에 맞는 서류까지 '위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브로커에게 거액을 건네야 한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위험천만한 파리의 도로를 자전거로 질주한다. 하지만 미등록 신분인 탓에 타인의 배달 계정을 빌려 써야 하고, 계정 주인과 배달 플랫폼에도 각각 수수료를 내야 한다.

배달 일 자체도 쉽지 않지만, 하루하루 몸을 누일 곳을 찾는 것조차 버겁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배달 업무와 배달 앱 계정, 브로커까지 연이어 문제를 일으킨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틀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럼에도 술레이만은 오직 '망명 심사'만을 바라보며 모든 위험을 감수한다. 과연 그는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의 한 장면.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의 한 장면.디스테이션

화려한 파리 뒤에 숨겨진 미등록 이주민의 삶

기니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1958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이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만큼 타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탈출 이후의 삶도 결코 쉽지 않다. 아프리카 타국에서는 박해를 받고, 프랑스에 도착해서는 무관심과 냉혹한 시스템 속에서 끝없는 생존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기니 출신 미등록 이주민 노동자 술레이만의 48시간을 따라간다. 그의 이틀을 집요하게 비추면서,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화려한 이면까지 함께 보여 준다. 관광객에게는 낭만의 도시일지 몰라도, 그에게 파리는 생존을 위해 끝없이 달려야 하는 도시일 뿐이다.

술레이만은 고향 기니에서 더는 살아갈 수 없었기에 프랑스로 왔을 것이다. 어디든 기니보다는 나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왜 프랑스에 왔지?" 이곳에서 그는 시민도, 노동자도, 온전한 개인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가깝다.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제대로 일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프랑스에 정착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에 일을 해야 하고, 또 브로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거짓말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의 한 장면.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의 한 장면.디스테이션

생존을 위한 거짓말

술레이만은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배달 계정을 빌려 일한다. 자신의 이름도, 자신의 얼굴도 사용할 수 없다. 가끔 신분 확인이 들어오면 들킬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미등록 이주민인 이상 합법적으로 돈을 벌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망명 심사에서 자신을 민주군 연합의 안전 간사 출신이라고 소개해야 한다. 브로커는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해야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한다. 술레이만은 그 말을 믿고 반복해서 외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연기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정치적 박해를 받은 적이 없다. 정치 활동을 한 적도 없다. 그가 조국을 떠난 이유는 훨씬 단순하다. 먹고살 수 없었고, 잠잘 곳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실만으로는 새로운 삶을 허락 받을 수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의 현실을 지우고, 타인이 만들어 준 거짓 이야기를 자신의 역사처럼 말해야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아프게 건드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생존을 위한 현실적 거짓말과 망명을 위한 제도적 거짓말 사이에서 술레이만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잃어 가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신분보다 더 잔인한 것은, 자신의 이름과 삶마저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이다.

영화는 극사실주의적인 시선으로 그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가며 묻는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지워야 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포스터.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포스터.디스테이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어느파리택배기사의48시간 미등록이주민 아프리카기니 거짓말 망명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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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