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시 돌아오세요" 귀신이 전하는 '노동자' 이야기

[리뷰] 영화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신에게는 늘 사연이 있다. 이 사연이란 대체로 귀신이 인간이었을 시절에 겪은,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화나거나 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죽고 나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사건이나 계기를 말한다. 귀신은 이 사연 때문에 살아 있지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아무튼 살아 있을 적에 겪은 일이 귀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귀신의 사연이란 곧 인간의 이야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발에 깃든 원혼, 가발 만드는 여성 노동자와 만나다

왕보 감독의 2023년 작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 또한 격동하는 근대를 거치며 가슴 아프게 죽은 사연 때문에 머리카락에 깃들게 된 귀신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독특한 점은 산 사람이 주인공인 보통의 귀신 영화와는 다르게 귀신이 영화의 서술자라는 점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또한 귀신이다. 인간이 귀신의 사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직접 자신이 왜 귀신이 되었는지를 밝히고 귀신이 된 이후에 겪은 일도 묘사한다. 귀신이 된 이후에 이승에서 겪은 일 또한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감독 왕보 WANG BO의 2023년 단편영화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 스틸컷.
영화감독 왕보 WANG BO의 2023년 단편영화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 스틸컷.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주인공 귀신은 원래 일본 규슈 지방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납치를 당해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만주까지 이르렀다가 그곳에서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이의 영혼이다. 그가 매장될 때, 누군가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머리카락 업자에게 넘겼고, 그의 영혼이 머리카락에 깃들게 됐다.

이후 귀신은 머리카락을 따라 창고에서 가발 공장으로, 가발 공장에서 고객에게, 그리고 또다시 공장으로, 상점으로 이동한다. 가발 귀신은 이 과정에서 자기가 만난 한 인간의 사연을 전해준다. 파업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홍콩의 섬유 공장을 피해, 배터리 공장의 냄새와 습도를 피해, 그나마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가발 공장을 택한 인간 노동자의 사연이다.

어쩌면 그녀는 1960년대 중국 본토의 혼란과 가난을 피해 홍콩으로 넘어왔을지도 모른다. 홍콩에 와서도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 겨우 가발 공장에 정착한 여성 노동자였다. 미국이 중국과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에서 온 '아시아산 모발' 수입을 금지하자, 중국과 가까운 홍콩에 있던 가발 공장은 한국으로 이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발 귀신과 여성 노동자도 서로 헤어지게 된다. 25년 뒤, 둘은 미국 LA 한복판 한인 타운에서 솟구치던 불길 속에서 다시 재회한다. 가발 귀신은 한국인 이민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오게 됐고, 여성 노동자는 2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두고 가기엔 너무 많은 추억이 있지(Too many memories to leave behind)"라는 여성의 한마디는 가발 귀신이 이동한 만큼 여성 노동자 또한 공장이 문 닫은 뒤 일자리를 찾아서 또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살아왔음을 짐작게 한다.

'부유하는 노동'에 관한 은유적 서사

영화 말미에는 '폰티아낙'이라는 귀신이 등장해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폰티아낙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지만,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설화에 등장하는 여귀의 이름이기도 하다.

폰티아낙은 평소처럼 바나나 나무에서 자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엄청나게 많은 머리카락과 함께 화물선에 있었고, 홍콩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폰티아낙은 홍콩은 너무 복잡해서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혹시 돌아가는 배편이 있는지 물었다. 폰티아낙의 인터뷰가 꼭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옮겨다닐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는 이동한다. 그것을 선택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주어진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을 수도 있다. 태어난 나라의 사정 때문에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세계 이곳저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내전 중인 미얀마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 태국, 한국 등 세계 곳곳으로 이주한다. 자국 내에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제 미얀마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국의 공장에는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 온 미얀마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태국 어업의 상당 부분 또한 미얀마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이유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다. 농촌 지역에서 도시로 향하기도 하고,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외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가발 귀신이 보고 듣고 겪어 온 사연처럼,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노동은 계속 이동한다.

영화는 폰티아낙이 덩리쥔의 노래 '언제 다시 돌아오세요(When will you return)'를 부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여기저기로 이주한 사람들은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또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쏠 님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자입니다.
이주노동 제국주의 동아시아 가발공장 여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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