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나의 영원한 공룡 박사님

<쥬라기 공원>의 로망을 완성한 명배우 샘 닐을 추모하며

 2001년 7월 26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쥬라기 공원 3> 기자회견에서 배우 샘 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13일 <쥬라기 공원>의 주연 배우 샘 닐이 호주에서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유가족이 밝혔다.
2001년 7월 26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쥬라기 공원 3> 기자회견에서 배우 샘 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13일 <쥬라기 공원>의 주연 배우 샘 닐이 호주에서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유가족이 밝혔다.AFP 연합뉴스

어린 시절의 나는 공룡을 참 좋아했다. 공룡을 따라 하다가 유치원 선생님께 혼난 적도 많다. 대단히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많은 어린아이가 공룡을 좋아하지 않는가.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왜 굳이 공룡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크고 강력한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까.

공룡에 대한 사랑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식지 않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헤어 스타일을 닮은 크리올로포사우루스, 아르헨티나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아르티노사우루스... 수백 종의 공룡을 외우고, 최신 학설을 겉핥기식으로 찾아 읽었다. 언젠가 고생물학자가 되리란 꿈을 꾸었다.

그런 꿈을 꾸었던 친구들은 전 세계에 널려 었다. 이 친구들의 꿈을 상당 부분 책임진 것은 영화 <쥬라기 공원>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은 영화사에 반영구적인 충격을 남겨 놓았다.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트로닉스를 적절히 혼합한 이 영화는 이전까지의 괴수 영화를 아득한 과거의 유물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가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990년대 후반의 어느 날, TV에서 '주말의 명화'로 더빙된 <쥬라기 공원>을 처음으로 보았다. 영화 속에 펼쳐진 공룡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은 꿈을 꾸었다. 공룡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조금 머리가 크고 나니, 수억 년 전 모기의 피 속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쥬라기 공원을 경영하는 게임을 즐겼다. 아빠의 손을 잡고 '쥬라기 공원 투어'라는 전시회에 갔다. 혼자 아무도 읽지 않을 <쥬라기 공원> 속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것이 내 로망이었다.

로망의 한가운데에는 <쥬라기 공원>과 <쥬라기 공원 3>의 주인공 앨런 그랜트 박사가 있었다. 명배우 샘 닐이 연기한 그랜트 박사는 나의 꿈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영화의 도입부, 벨로시랩터의 화석을 발굴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나의 장래 희망을 '고생물학자'로 결정지었다. 거대한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눈앞에 나타나자 선글라스를 벗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 저거 공룡이야?"(<쥬라기 공원>에서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모습을 보고 경탄하며)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앨런 그랜트 박사를 연기했던 샘 닐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앨런 그랜트 박사를 연기했던 샘 닐영화 <쥬라기 공원> 스틸컷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그랜트 박사의 입체성에도 매력을 느꼈다. 영화 초반부에는 지나가는 아이에게 벨로시랩터 발톱으로 겁을 줄 정도로 아이를 싫어했지만, 꼬마 남매가 위기에 빠지자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건다. 매력적인 '츤데레'의 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샘 닐은 그런 그랜트 박사의 독특한 면모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이후 <바이센테니얼 맨> <이벤트 호라이즌> 등 다른 작품에서 그의 얼굴을 만나는 것도 반가웠다. 이따금씩 그의 인스타그램을 검색하며 '그랜트 박사님은 여전히 잘 지내시는구나' 하고 안심하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때만큼 공룡에 열광하지 않는다. 고생물학자와는 아예 상관없는 일을 하는 30대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공룡 박사를 꿈꾸던 아이가 남아 있었다. 2022년, 샘 닐은 21년 만에 그랜트 박사 역을 다시 맡았다. 그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역인 '말콤 박사' 제프 골드브럼, '새틀러 박사' 로라 던과 함께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에 출연했다.

고민 없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 자체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도 손꼽힐 만큼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굳이 이전 시리즈의 박사들을 불러낼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들이 과거의 주역들을 내세우며 추억에 호소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랜트 박사가 여전히 화석을 캐고 있는 모습, 중절모를 쓰고 모험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이 순간부터 비평과 논리는 무의미해진다. "우리 박사님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시는구나!"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음을 말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7월 13일, 샘 닐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날의 영웅과 작별하는 일에 익숙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작별하지 않을 장면들은 많다. 학자로서 쥬라기 공원의 개장을 반대하며 열변을 토하다가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공룡 트리케라톱스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던 '덕후' 그랜트 박사의 모습을 특히 좋아한다. 그 장면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쥬라기 공원 키즈'의 생애 주기에 영원히 새겨져 있을 테다.

안녕히, 인생 첫 아이돌. 영원한 공룡 박사님.
샘닐 그랜트박사 쥬라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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