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느러미> 스틸컷
㈜에무필름즈
어쩌다 미래 한국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2026년 한국 관객에게 <지느러미> 속 풍경은 상상하기도 싫을 지옥도다. 국내 관객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반드시 한국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 대입해도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한 범위로 디스토피아 사회를 구현하고자 의도한다. 작품 속 차별과 배제의 상징인 오메가 집단은 다양하게 대입 가능한 존재로 기능한다. 이는 현재 세계 각국이 처한 난국이 공통의 배경 아래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감독은 한국 사회의 근미래 디스토피아 배경을 위해 남북통일에 대한 현세대의 불안을 십분 활용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당연시하던 통일의 절대적 가치를 더는 중시하지 않는다. 분단이 장기화하며 남북을 서로 다른 국가로 인식하고, 급속한 통일이 사회 혼란과 함께 그렇지 않아도 줄어드는 일자리와 기회를 더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가득하다. 영화 속 미래 사회상은 바로 그런 부정적 전망의 극단화라 볼 수 있다. 도시 풍경도 현실 남한보다는 북한에 가깝다.
영화는 재개발로 철거가 예정된 지역과 과거 동구 사회주의권 집단주거 아파트의 이미지를 결합해 우울하고 숨이 턱 막히는 세계관을 화면에 가득 펼친다. 조지 오웰의 <1984> 속 유토피아로 포장되었으나, 실제로는 극도의 감시사회로 전락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근미래 한국판인 셈이다. 제한된 예산과 자원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 환경에서 이 정도로 화면 속에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권위주의 독재 체제로 형상화한 통일 한국은 예부터 지배자가 민중을 통제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 '갈라치기'를 실행한다. 실제로 오메가가 겪는 비인권적 처우에도 불구하고 엄격히 분리된 도시의 사람들에겐 그들이 과한 특혜를 누리며 환경 전염병을 퍼뜨리는 원흉으로 지목된다. 반 오메가 시위대는 그들을 해충 취급하며 박멸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사라진다면 대체 해양 폐기물은 누가 수거할까?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없는 문제다.
정작 오메가의 실체는 제대로 알 수 없다. 오메가 전담 공무원이 된 '수진'이 받는 교육조차 객관적, 체계적이라기보단 (분명 제작진의 의도대로) 극우 반공교육의 미래 버전처럼 묘사된다. 사실상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겪는 처지나 영화 속 오메가의 처지나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들이 없다면 국내 3D 일자리는 존립하기 힘들다. 상식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진실을 알리기보단 침묵할 뿐이다. 정치적 득실에 따른 혐오 선동이 빈자리를 채운다.
불의한 체제는 언제나 희생제물을 원한다
▲<지느러미> 스틸컷
㈜에무필름즈
탈출한 오메가는 죽은 동료의 유품을 간직한 채 누군가를 찾아 도시를 헤맨다. 그가 도착한 장소는 도시 외곽의 실내낚시터다. 쇠락한 세계에서 과거 바다가 살아있던 시절 낚시의 추억을 더듬는 소수가 늘 죽치고 있는 곳이다. 여기엔 지난 시대의 사진과 철 지난 음악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반복된다. 그가 찾는 이는 여기에 머무는 듯하다. 하지만 필경 도시에 은둔한 오메가일 상대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기도 하다. 수진도 임무 수행을 위해 근방에 도달한다.
도시 곳곳엔 엄격한 격리와 추적에도 불구하고 스며든 오메가가 적지 않다. 비합법적으로 오메가의 가장 큰 신체 특징, 수중 활동을 위해 발달한 지느러미를 감추기 위한 의족 제작소가 존재할 정도다. 실리콘으로 맞춤형 제작도 하고 피부 이식 시술도 성행한다. 그렇게 대비를 갖추면 여간해선 들키지 않는다. 이 역시 현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고스란히 대입되는 측면이다. 사회는 오메가를 동정하는 이와 배제하는 이들의 대립으로 한층 혼란으로 치닫는다.
어둡고 칙칙한 도시의 전경, 쫓고 쫓기는 자의 추격전은 디스토피아 SF 고전 <블레이드 러너> 속의 그것과도 흡사한 모양새다. 오메가를 인조인간 '레플리컨트'로, 담당 공무원을 요원으로 교체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평범한 인류가 하기 힘든 일을 떠맡아 희생하는 오메가와 레플리컨트이지만,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는커녕, 자신의 고향에 돌아올 수도 없다. 인간이 갖지 않은 능력을 갖춘 그들은 격리하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다. 실체를 아는 이들은 통제수단을 고심한다.
반면에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평범한 시민은 자신들이 처한 암담한 삶을 오메가 탓으로 돌린다. 오메가가 일자리를 빼앗고 부족한 식수와 자원을 낭비하기에 지금 사는 게 척박하단 논리다. 어렴풋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시스템의 오류와 기득권의 독점 대신에 당장 손쉽게 눈에 뵈는 희생양에 책임을 돌리는 태도다. 중세 마녀사냥이나 유대인 박해, 오늘날 이민자와 무슬림, 성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미래로 고스란히 이월된 꼴이다.
혐오가 초래한 청년세대의 비극
▲<지느러미> 포스터㈜에무필름즈
오메가를 쫓던 수진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가 그랬듯) 마침내 오메가가 애타게 찾던 이와 접촉한다. 막상 눈을 마주친 둘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모르고 만났다면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그런 상대다. 하지만 병든 엄마를 부양해야 하는 수진은 공무원으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일말의 망설임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버려야 할 사소한 감정에 불과하다. 체제의 대행자로서 수진에게 선택지란 없다.
물론 수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주입받은 교육이 그가 로봇처럼 역할을 다하도록 제 몫을 해낼 테다.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희구하던 아름다움의 편린을 목격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훗날 돌아보며 후회할지언정, 긴급한 상황에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간을 길들인 훈련의 결실은, 수진을 자동응답기처럼 반응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렇게 관객은 가슴 졸이며 예정된 결과로 폭주하는 전개에 대해 '제발 아니길' 기원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SF 장르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지느러미>가 선보인 미래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다. 누군가는 '가상생물학'의 대가 두걸 딕슨이 선보인 <맨 에프터 맨>에 등장하는 산업용 개조 인류의 운명을 떠올리며 인간의 비인간성이 불러올 암담한 미래를 상상할 테다. 일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에서 넘치게 묘사되는 기술 만능과 환경파괴 속 윤리적 위기도 자연스레 연상된다. 하지만 범위를 국내로 좁히면 이 영화가 구축한 한국형 디스토피아는 꽤나 진귀한 존재다.
SF 장르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력을 펼치기보단, 오히려 과거 금서와 언론 검열을 회피하고자 '가상'이란 방패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시절 풍자 혹은 사회비판은 유구한 장르의 전통으로 기능하며 사회적 반향을 획득했고, 대안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지느러미> 역시 그 흐름과 통하는 작업이다. 21세기 세계의 화두, 환경위기와 소수자 차별이 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대두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형상화한 '우화'는 어떤 사실주의 드라마보다 정치적이다.
<작품정보>
지느러미
The Fin
2025 한국 SF, 스릴러
2026.07.22. 개봉 84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박세영
출연 연예지, 김푸름, 고우
제공/제작 시소픽쳐스 & 에센셜 필름 & 프리띠 띵스 필름
배급 ㈜에무필름즈
78회 로카르노영화제 '오늘의 영화 감독' 초청(월드 프리미어)
51회 서울독립영화제 열혈스태프상
14회 무주산골영화제 CAPRA 크리에이티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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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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