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축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리센느 현상'

"저 친구들이 꼭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깃든 것

온 세상이 리센느다. 리센느가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중소기획사의 기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역주행 신화라고 설명한다. 고향 거제도의 풍경과 리더 원이의 자연스러운 사투리에 일본에서 K팝 스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미나미의 천연덕스러운 '갸루' 역할극이 더해지는 순간 '떡상'이 시작됐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인 제나, 리브, 메이가 보여준 자연스럽고 싱그러운 모습과 더불어 숨길 수 없는 긴장과 떨림까지. 꾸밈없는 다섯 멤버들의 좌충우돌과 해맑은 일상이 만들어 낸 진정성의 승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모두 맞는 말이다.

리센느 리센느 <프리티걸>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리센느리센느 <프리티걸>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더뮤즈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지금 리센느를 향한 대중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축복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리센느의 음악을 듣고 무대를 보는 사람들의 흐뭇한 표정. 그들이 출연하는 유튜브 영상 콘텐츠마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마음. 멜론 음원 차트를 올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스트리밍하는 사람들의 열정 속에는 한 아이돌 걸그룹을 향한 단순한 호감 이상의 특별한 감정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대 문학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성인이 된 주인공이 고향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내준 홍차와 마들렌의 냄새에 이끌려 유년 시절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현재 삶을 성찰하고 자아를 회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리센느(RESCENE) 팀명은 'Scene(장면)'과 'Scent(향기)'를 결합한 단어로, 향기로 다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리센느는 자신의 그룹명처럼 우리가 그간 잃어버린 응원과 축복이라는 순수한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아이돌 시장에 등장한 낯선 힘의 문화적 작용

"리센느는 어떻게 성공하게 됐는가"와 "우리는 왜 리센느를 성공시키려 하는가". 이 두 가지 궁금증은 비슷한 의미와 맥락에서 나온 질문인 듯 싶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방향의 관심과 다른 결의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가 성공하는 것을 바라보는 태도와 다른 이를 성공시키려는 마음이 완전하게 같은 종류일 수는 없다.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성공은 그저 부러운 결과지만, 내가 애정하는 이들을 성공시키려는 마음은 하나의 절실한 태도이자 바람이기 때문이다. 순전한 축복과 이타적 응원. 이번 리센느 현상을 통해 아이돌 문화에서는 거의 처음 선뵈는 낯선 힘의 문화적 작용들이 일어나게 됐다.

K팝 아이돌 산업과 시장은 이미 자본의 위계가 확고하게 기능하는 서열이 정립된 세계이다. 힘이 약한 작은 회사에서 배출한 아이돌이 인기를 얻고 차트에 진입하기란 정말 하늘에 별 따기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는커녕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사라지거나 해체되는 팀도 부지기수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 사람들 중 1%가 기획사 연습생이 되고, 그 연습생 중 1%가 데뷔조가 되며, 데뷔한 아이돌 중 1%만이 성공한다는 공식이 자리 잡은 치열한 전장이 바로 K팝 아이돌판이기 때문이다.

작은 기획사 출신을 뜻하는 '중소돌'도 아닌 고작 직원이 3-4명 뿐인 회사라 '영세돌' 소리를 들었던 리센느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영세돌' 출신답게 리센느 역시 고난과 역경이 없지 않았다. 초등학교 운동장 흙바닥이라도 마다않고 불러주면 공연을 했고, 어쩌다 지역 행사 무대에 올라도 아무도 못 알아봐 썰렁한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데뷔 후 지난 2년 동안 힘 빠지는 경험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 리센느는 어려움이 닥쳐올수록 더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서로를 지탱해주며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지냈다. 리센느는 대중의 관심이 드디어 자신들에게 향했을 때조차 그간 겪은 설움과 고생을 미디어에 과장되게 전시하지 않았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항상 밝고 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활기차게 무대를 즐겨온 모습을 보여줬다.

대중은 그런 리센느에게서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고, 이들이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 마음들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며 퍼져 나간다. 콘텐츠 댓글창에 달린 "이번에 리센느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응원에도 그 마음이 담겨 있고.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이번에 나온 리센느 노래 꼭 한 번 들어봐"라고 권하는 수줍은 제안에도 그 마음이 묻어 있다. 평일 새벽과 주말 밤을 가리지 않고 리센느의 음원을 반복 재생하며 마치 자기 일처럼 실시간 멜론 차트를 확인하는 사람들의 긴장된 손짓과 눈빛 속에서도 이타적인 팬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진심을 담은 응원과 생활에 깃든 축복

흥미로운 것은 그 마음의 결이 흔히 말하는 아이돌을 향한 기존의 팬심과는 조금 다르다는 데 있다. 지금 리센느를 향한 대중의 관심과 열기는 아이돌 걸그룹의 팬으로서 좋아한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사람들은 리센느 성공 서사를 완성하는 데 있어 기꺼이 조력자가 되겠다는 열망들을 감추지 않는다. 그 마음은 엔테테인먼트적 소비라기 보다 무언가 간절하고 진심을 담은 응원에 가깝고, 문화적 열광이라기 보다는 생활에 깃든 축복에 가깝다.

리센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이상할 만큼 '나'보다 '저 친구들'이 주체로 더 자주 등장한다. "이 친구들은 꼭 잘됐으면 좋겠어" "저 친구들이 성공해서 꿈을 이루길 바라".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를 혹은 나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 무언가를 이렇게 절실하게 응원한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이는 매우 흔치 않은 경험이다.

 리센느
리센느리센느 원이 유튜브 채널

우리는 지금까지 타인의 성공을 응원하고 축복하는 방법보다 타인과 경쟁하는 법을 먼저 배워왔다. 언제부턴가 성공은 함께 기뻐하는 성취가 아니라 비교를 촉발하는 구분의 의미가 됐다. 누군가의 합격은 다른 이의 실패를 전제해야 하고, 어떤 이의 성취는 다른 사람의 좌절이 되어야만 하는 혹독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냉혹한 질서를 학습했는지 몰라도 타인의 기쁨을 자신의 보람으로 받아들이는 공감 능력을 조금씩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리센느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소박함과 진정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꾸밈 없는 일상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고, 무대 위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천상 아이돌의 모습에 사람들은 깊이 매료됐다. 사실 그보다는 지난 2년 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굳세게 길을 헤쳐나간 '중소 아이돌'의 고단한 여정을 '파묘' 하면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선하고 순한 그들의 씩씩함과 절박함에 감동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길러준 고향 마을에 돌아가 삼촌과 이모를 덥석 껴안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아이돌 멤버를 보는 경우란 흔치 않다. 연습한 춤과 노래를 무대 위에서 1분만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며 제작진에게 통사정을 하는 절실함도 사뭇 감동적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지켜보며 대중은 기꺼이 리센느 현상에 마음껏 빠져들게 된다.

기꺼이 후견인이 되겠다는 마음

 리센느 'Pretty Girl' 뮤직비디오의 주요 장면
리센느 'Pretty Girl' 뮤직비디오의 주요 장면더뮤즈엔터테인먼트



엄청나게 커져 버린 K팝 시장에서 인기 아이돌은 기획사가 만들어낸 철저하게 기획된 상품이었다. 오랜 시간 팬은 그저 그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 불과했다. 리센느는 소비자와 상품의 관계를 후견인과 축복하는 대상으로 뒤바꿨다. 리센느가 아이돌 시장의 문법을 조금 다르게 바꾼 셈이다. 사람들은 리센느를 이미 완성된 스타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노력과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보고 싶어한다.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성장할 지 기대하며 한 아이돌 팀을 함께 지켜보기로 한다.

리센느를 둘러싼 이러한 대중의 마음가짐을 '후견인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후견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앞에서 일방적으로 끌어당기거나 뒤에서 강제로 미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끝내 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뒤에서 조용히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사람이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 주고, 흔들릴 때 괜찮다고 말해 주며,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다. 저 멀리 목표를 함께 바라보며 격려하고 다독여 주는 존재이다.

현재 리센느를 둘러싼 대중의 정서는 후견인으로서의 응원과 축복의 감정에 가깝다. 그 힘은 일반적인 팬심보다 훨씬 더 세고, 세속적으로 탐하는 마음보다 훨씬 깊다. 이런 마음이 리센느를 둘러싸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베 몰이 공세에도 끄떡 없었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저 친구들이 꼭 잘 됐으면 좋겠다."

 리센느
리센느더뮤즈엔터테인먼트

이 짧은 문장 안에는 한 아이돌을 향한 애정의 마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간절하게 노력한 사람이 끝내 인정받는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진심이 타산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나의 진실한 응원과 축복이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함께 담겨 있다.

사람들은 리센느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혹은 다시 찾고 싶었던 그 귀한 마음을 꺼내 조심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리센느 현상은 우리에게도 축복과 응원의 마음과 감정이 가슴 속에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 사건이다. 그래서 리센느를 좋아하는 행위는 그저 한 아이돌의 성공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오래전 자신에게 건네졌던 믿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일일 수도 있다.

따뜻한 선의가 통할 수 있고, 진심으로 대하면 여전히 서로 알아챌 수 있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는 리센느 현상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됐다. 리센느의 성공은 누군가와 경쟁하고 상대를 이겨야만 완성되는 서사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응원하고 축복할수록 더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다는 성공의 방정식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언젠가 리센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한 위상의 K팝 아이돌이 되어 글로벌한 큰 무대에 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들의 음악과 춤을 보여주고 더 큰 박수를 받게 될 때. 그렇게 된 후에도 리센느를 향했던 사람들의 응원과 축복이 여전히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와 의미로 남길 바란다. 인간의 선의가 여전히 유효하고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사를 리센느가 계속 써내려 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리센느 응원 축복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대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