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호포항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찾아갔던 여행자가 나홍진의 <호프>에서 만난 것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쉘돈(Shaldon)이라는 바닷가 마을 15년 전 데본 여행 때 직접 찍은 사진
쉘돈(Shaldon)이라는 바닷가 마을15년 전 데본 여행 때 직접 찍은 사진최수안

애거서 크리스티 때문이었다. 15년 전 영국에 살 때, 그녀가 태어난 토키(Torquay)가 있는 데본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내친김에 콘월까지 갔는데, 그동안 알던 잉글랜드와는 전혀 다른 항구 도시들의 풍경에 완전히 매료됐다. 숙소는 데본의 항구 중심지에서 차로 10분쯤 들어가는 홀컴(Holcombe)이라는 작은 마을로 잡았다. 아담한 집, 주인장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성스럽게 직접 키운 닭의 달걀로 차려주는 영국식 아침. 영국 여행의 로망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었다.

그런데 홀컴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머물던 집으로 들어가는 숲길도, 농장들도 시간이 멈춘 마을 같았다. 근처 쉘돈(Shaldon)이라는 바닷가 마을에 갔더니 물이 빠진 갯벌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너른 해안에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휴양지 데본에서 겨우 10분 떨어졌을 뿐인데, 거기엔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엽서 같은 풍경 한가운데서 나는 어쩐지 무슨 일이라도 곧 일어날 것 같은 그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며칠을 보냈다.

익숙하고 아름다운 것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감각. 프로이트는 이것을 '운하임리히(unheimlich)'라 불렀다. 하임리히, 즉 집처럼 편안한 것이 어느 틈에 뒤집혀 낯설어질 때 우리가 느끼는 불안.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단어로는 '언캐니'다. 언캐니는 괴물의 얼굴에서 오지 않는다. 가장 익숙했던 것이 더 이상 읽히지 않을 때 온다.

낯선 느낌의 정체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5일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를 미리 보고 나서 내가 갔던 영국 남부 해안 마을의 정적과 기억이 되살아났다. <호프>의 무대는 가상의 어촌 호포항이다.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사냥이 취미인 한량 성기(조인성)가 사는 이 외딴 바닷가 마을에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물론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다. 알 수 없는 것에 일단 아는 것의 이름을 붙이고 보는 이 첫 장면의 오인이야말로, 영화 전체의 예고편이다. 영화는 SF이면서 크리처물이고, 동시에 숨 가쁜 추격극이다. 그러나 세 시간 가까이 관객의 숨통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이 영화의 진짜 낯선 느낌은 외계인들의 생김새에 있지 않다. '서로를 끝내 알 수 없다'는 사실, 거기에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묘한 것은 소리다. 외계의 존재들은 분명히 말을 한다. 저희들끼리 무언가를 주고받고, 어떤 소리는 명백히 인간을 향해 있다. 그런데 번역 자막이 없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고 있다는 것만 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극장에서 자막이란 얼마나 익숙한 장치인가. 외국어가 나오면 자막이 뜬다는 것은 관객과 영화 사이의 오래된 약속이다. <호프>는 그 약속을 태연하게 깨뜨린다. 그 순간 관객은 안전한 객석에서 끌려 나와 호포항 주민들 옆에 세워진다. 그들이 모르는 만큼만 우리도 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거는 일종의 공포이기도 하다.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인간과 외계의 존재는 서로의 행동을 읽지 못한다. 신호를 보내면 오독하고, 오독은 다음 오독을 부르며, 그렇게 양쪽 모두 파국을 향해 걸어간다.

이 '알 수 없음'을 연기로 감당하는 것은 배우들이다. 황정민의 범석은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인간적인 공포 사이에서 내내 흔들리는 인물이다. 죽여야 할 존재에게 문득 연민이 스치는 순간, 그 복잡한 감정이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지나간다. 배우들은 보이지 않는 상대를 상상하며 시선의 방향과 공포의 강도를 스스로 설계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포개지는 연기다. 알 수 없는 것 앞에 선 인간을, 그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연기한 것이다.

성기 역할을 맡은 조인성은 그 반대편에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거친 추격 액션을 온몸으로 받아내는데, 말을 타고 숲 속을 내달리는 장면의 영상미와 액션은 압권이다. 그리고 먹는 장면들. 숲에서는 주먹밥을 먹고, 아수라장 한가운데서는 감자를 베어 문다. 배우는 이 먹는 연기를 허기가 아니라 "살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해석했다는데, 과연 스크린에서도 그렇게 보인다.

알 수 없는 것이 덮쳐올 때 인간이 붙드는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먹는 일, 달리는 일 같은 가장 동물적인 의지라는 것. 두 배우는 그 진실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마을이 하나 쯤은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외계인들의 대화가 자막으로 뜬다. 소음이었던 그들의 소리가 마침내 언어가 되는 순간, 나는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한 설계를 깨달았다. 번역은 도착한다. 그러나 너무 늦게 도착한다.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야 우리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이해가 불가능했던 게 아니다. 다만 아무도 그때 듣지 않았을 뿐이다.

극장을 나온 뒤에도 이 뒤늦은 자막이 오래 남았다. 알 수 없어서 무서웠던 영화가, 알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슬픈 영화로 바뀌는 것이다.

극장을 나오며 추리소설의 여왕 크리스티를 생각했다. 추리소설은 결국 모든 것이 설명되는 장르다. 아무리 기괴한 사건도 마지막 장에서 탐정이 진상을 말해준다. 세계는 다시 이해 가능한 곳이 된다. 내가 크리스티의 고향까지 찾아간 것도 어쩌면 그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프>에도 마지막 장의 해명은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의 탐정이 늦지 않게 도착해 다음 죽음을 막는다면, <호프>의 진상은 모든 죽음이 끝난 뒤에야 도착한다. 설명이 있는데도 구원이 없는 이야기. 그것이 이 영화가 추리 소설의 오랜 위안을 배반하는 방식이다.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국에서 그런 마을을 여러 번 더 만난 적이 있다. 그중 한 곳은 지금도 떠올리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네스호의 괴물이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짙고 검은 나무들과 계곡, 안개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 그 영화 같았던, 마법 같았던 풍경은 아직도 내 글의 소재이고 기억이다.

나홍진 감독도 십여 년 전 미국 여행 중 '호프'라는 이름의 마을에 갔다가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마을의 생경함. 그 감각이 이 영화의 씨앗이 됐다.

누구에게나 그런 마을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분명 아름다운데 어딘가 서늘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무언가 있는 것 같은. <호프>는 그 마을을 스크린 위에 통째로 지어 올린 영화다. 나는 쉘돈의 그 빈 갯벌을, 하일랜드의 빈 들판을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극장 의자에 앉은 채로.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누군가 계속 말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호포항에는 지금 소문이 돌고 있다.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가서 확인하시라. 호랑이가 아닐수록 더. 나는 먼저 다녀왔고, 보다시피 아직 호포항에서 못 돌아왔다.

영화 <호프>  포스터
영화 <호프> 포스터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호프 나홍진감독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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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에서 세계의 도시들과 도시문화를 공부했다. 영국에서 10여 년을 지내며 문학과 예술, 여행을 따라 도시를 걸었고 골목과 도시의 일상을 관찰한다. 강화도에서 유럽 헤리티지 채소와 나무들을 기르며 글을 쓰고 문학을 번역한다.